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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14] 이번 방학엔 숨 돌릴 수 있을까
[나의 미국교수 생활기 14] 이번 방학엔 숨 돌릴 수 있을까
  • 교수신문
  • 승인 2009.06.0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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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방학이다. 지난 1월 중순부터 시작된 학기가 어느덧 끝나고 8월 말까지 약 넉 달에 가까운 기나긴 방학이 시작됐다. 돌이켜 보면, 최근 몇 년 간 방학이란 걸 실감하지 못 하고 항상 여름을 보냈다.
코스웍이 끝나고 나서부터는 수업이 없으니 방학이란 게 큰 의미가 없어진 탓도 있겠지만, 종합시험 치르랴 논문 쓰랴 또 직장 찾으랴, 게다가 작년 여름에는 이곳으로 이사하고 학기 준비까지 하느라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탓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만큼은 마치 직장 생활을 뒤로 하고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 처음 맞았던 방학만큼이나 반갑다.

    이제 겨우 두 학기를 지냈을 뿐이다. 첫 학기는 한 과목, 이번 학기는 두 과목 이렇게 총 세 과목 밖에 안 가르쳤다. 일 년 간 내가 가르친 과목의 학생 수도 다 합쳐봐야 서른 명 남짓하다. 한국은 신임 교수들이 해야 할 행정 업무도 상당하다던데 여긴 신임 교수라 못 미더워서 그랬는지 딱히 해야 할 행정 업무라는 게 없었다. 늘 심각한 표정의 나를 보고 힘들겠거니 짐작한 집사람이 배려를 한 탓도 있겠지만, 공부하고 논문 쓴다고 정신없이 바빴던 학생 때조차도 신경써야 했던 집안 일과 아이 학교 일 등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런데도 방학이 정말 반갑다. 모자란 지식으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게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낀 한 해였다. 미국에서 산 지도 여러  해가 지나갔고, 미국 대학에서 학위도 받았고 또, 미국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도 없지 않았지만, 여전히 부족하기만 한 나의 영어와 문화적 차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어려움을 두 배, 세 배로 부풀리는 것 같았다.

    물론, 방학이라고 마냥 쉴 수 만은 없다. 그동안 수업 준비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핑계로 통 손을 놓고 있었던 리서치도 해야 하고, 두어 군데 학회도 참가해발표를 하고 또, 학계 동향도 좀 살펴볼 예정이다.
아직 수업을 신청한 학생 수가 충분하지 않아서 개설 여부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학원 과목을 가르칠 준비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학생 때보다도 얼굴 보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불만인 집사람과 딸아이를 위한 시간도 만들어 봐야 할 게다. 그래서, 방학이 시작된 지 겨우 며칠 동안만 집에서 무위도식을 하는 호사를 누리다가 다시 이렇게 매일 학교로 출근을 하고 있다. 방학이니 찾아올 학생도 없고 하니 갑갑한 연구실을 탈출해서 몇 해 전 수 백억원을 들여 지었다는 학교 메인 도서관의 넓직한 창가 앞에 앉아서 몇몇 참고 문헌도 읽고 지금 이 글도 쓰고 있다.

    무사히 첫 해를 보냈다는 성취감 때문일까. 그래도 가끔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내어다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여유가 맘 한구석에 생기는 것 같다.

김영수 켄터키대·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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