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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프로젝트 지원제도, 학문윤리와 문화 압박했다”
“연구 프로젝트 지원제도, 학문윤리와 문화 압박했다”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9.06.01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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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전문직윤리연구소, ‘연구윤리와 문화’ 학술대회

“연구윤리와 관련해 지금의 기준이 명확한가. 우리 문화에 적당한가. 서구 문화와 기준만 따온 것은 아닌가.”
우리 문화에 걸맞은 ‘연구윤리’ 확립을 위한 새로운 논의가 시작됐다. 한양대 부설 전문직윤리연구소(소장 이현복 철학과)는 지난달 27일 한양종합기술연구동(HIT)에서 ‘연구윤리와 문화’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주제 발표를 맡은 김광억 서울대 교수(인류학과)는 “크게 보자면 광복 후 속성지식의 과정을 거치고 199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와 시장원리 그리고 폭발적으로 커진 연구 프로젝트 지원과 행정적 관리제도 등이 전통적인 학문 윤리와 문화를 압박하게 됐다. 이런 와중에 학자 개인의 입장에서 윤리적 문제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된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학계 내부의 윤리적 자질의 강화를 위해 학문공동체 형성, 전문 학계의 존중, 학문분과의 특성 살리기, 연구자 위주의 지원책 확립을 강조하고, 학자적 자세를 혼란시키는 학문의 행정적 관리체제, 규격화와 조급성, 경제적 수익의 중시, 학문을 소비재로 인식하는 풍조, 지식을 당장의 유용성으로 평가하려는 천박한 자본주의 등의 사회 전체 문화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교문화적 전통에서 본 창작과 표절’ 발표도 흥미롭다. 조민환 춘천교대 교수(윤리교육과)는 “임모전통이 강한 동양예술은 철저히 下學而上達식이 적용되는 예술이다. 옛날 서화가들은 臨倣 한다는 것을 단순히 형상을 그대로 베끼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고 했고, 민주식 영남대 교수(미술학부)는 “지금 왜 이토록 연구윤리가 문제시 돼야 하는가. 아마도 독창성을 중시하는 서구 근대의 전통을 바탕으로 창조성을 신봉하는 문화적 관점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미술계의 구조적 병폐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현재의 구조는 작가의 창작윤리를 논하기 이전에 ‘창작 풍토’부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경영학과)는 “한국사회에서 직업 화가는 많지만 아티스트는 적은 게 문제”라며 “작가들이 팔릴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에만 관심을 갖고 시장이 주목하는 비슷한 화풍의 작품을 쏟아 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지식인의 사회적 윤리 실천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학계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과제도 논의됐다. 연구자가 주도하는 연구윤리 확립은 가능할까. “지원은 늘리고 간섭은 하지 말라”는 것이 학계의 요구지만 실현 가능한가. 연구윤리 확산을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지만 아쉽게도 정작 연구자들은 연구윤리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상당기간 동안은 정부 주도적 연구윤리 확산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준호 경희대 교수(철학과)는 말한다. 학계가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다.

이현복 소장은 “그동안 연구윤리의 걸림돌, 유형, 문제점을 중심으로 논의해 왔지만 문화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논의는 부족했다. 연구윤리 문제를 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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