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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탈식민주의 글쓰기를 이렇게 바라본다
나는 탈식민주의 글쓰기를 이렇게 바라본다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2.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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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평가 속 과제 제시 공통적

'탈식민주의 글쓰기’가 과연 이론인지, 주장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묻기도 한다. 또 공허한 수사와 동어반복에 머무는 것은 아닌지 지적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논의의 중요성이 사장되는 것은 아니다. 김영민 한일장신대 교수(철학) 등의 주장과 이를 둘러싼 몇몇 논쟁이 우리 지식인 사회에 불러온 영향력과 파급 효과만큼은 높게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그 논의들이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과연 논의를 지켜본 이들의 평가는 어떠한가.

먼저 김정근 부산대 교수(문헌정보학) 등의 작업은 굵직한 논의에 앞서서 가려지기 십상이다. 김 교수 등은 탈식민 글쓰기의 문제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파고들었다. 사회과학 11개 분야의 탈식민 담론에 관한 서지를 정리했던 것. 실증적인 작업을 통해 ‘주체적 사회과학’의 중요성을 일깨운 것으로 평가된다. 김 교수는 “후속작업으로 인문학 분야 탈식민 담론 서지를 모아보려고 했으나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며 최근에는 과학 분야에도 욕심이 생긴다고 전한다.

한편 같은 팀에서 연구했던 김영기 박사(문헌정보학)는 당시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당시 우리 팀의 경우는 현장에서 일하면서 공부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일과 공부가 잘 맞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늘 갖고 있었다. 작업을 하면서도 현장과 공부를 일치시키고자 노력했다.” 탈식민주의 글쓰기의 문제를 자연스레 체득하고 있었던 것. 후속작업 진행에 대해 묻자 “우리 작업은 주제나 테마, 문체를 망라해 현실에 맞는 글쓰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의식은 일종의 총론에 해당할 텐데, 더 이상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지금은 구체적인 자기 영역에서 구현해나가는 단계”라고 전한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정치학)는 이런 평가를 내리고 있다. “여성주의, 한국 현실의 비판, 탈식민주의를 결합한 독창적 사유를 보여준다. 체계화된 이론은 아니지만 그 작업은 모든 기존의 교조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한국 사회 전방면에 대한 독특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론화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논의의 중요성과 그 실천적 함의를 높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강유원 박사(철학)는 한국 사회에서의 논쟁이 되는 ‘글쓰기’ 문제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첫째, 누구나 인정하고 있듯 한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은 ‘식민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쓰기의 식민성을 따지는 것이 정치경제적 식민성과의 연결 속에서 전개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둘째, 글쓰는 이가 과연 식민성을 극복할 능력이 있느냐의 차원도 있다. 한국은 인문학적 지식을 자체 재생산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아직도 우리말을 다듬고 우리 고유의 생각을 펼쳐나가는 것이 먹고사는 것과 전혀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식민지적 글쓰기를 말해서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사람의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바꾸려면 그가 먹고사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셋째, 인문학 연구자들이 글쓰기 자체를 훈련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한국의 교육이 글쓰기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차원을 고려한 문제제기가 있어야 글쓰기 논쟁이 의미가 있다.”

학문후속세대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모색’ 편집장 권경우 씨는 “초기의 문제의식에서 변한 게 없다. 논자들 사이에서는 이 문제가 계속 얘기됐는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삶의 글쓰기’가 되지 못한 게 문제”라며 논의의 한계를 지적한다. 삶에 바탕한 글쓰기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또 그는 이런 문제가 대학원의 변화된 상황과 관련된다고 전한다. 자기 문제의식은 실종되고 유행만 쫓는 현실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결국 탈식민주의 논의의 한계는 그들의 과제로 이어진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의 장이 없다. 우리는 이 ‘장’을 확산하고자 한다. 우리는 비제도권의 영역을 두텁게 하고 확장시키려 한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제도권도 탈식민주의를 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우리말로 철학하기’의 이기상 한국외대 교수(철학)는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탈식민성 논의는 식민성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대화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또 어디로 벗어나야 하는지도 설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문제를 예리하게 설파했지만 대화의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권희철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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