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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들, 인류 문명 활동에 경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들, 인류 문명 활동에 경고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9.05.25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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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슈_ 꿀벌 군집붕괴현상(CCD)의 비밀

“지구상에서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예전 같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말이 요즘 따라 심상치 않게 다가오고 있다. 이른바 CCD(Colony Collapse Disorder)라 통용되는 꿀벌의 군집붕괴현상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이 정확하다면 인류라는 집단이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꿀벌이 인류의 생존을 좌지우지 하는 생물로 등장한 것은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위치 때문이다. 식물은 수분 방법에 따라 곤충에 의해 수분하는 충매화, 바람에 의해 수분을 하는 풍매화, 물에 의한 수매화, 새가 수분을 매개하는 조매화로 나뉜다. 특히 충매화는 곤충이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에 전달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재생산도 이뤄지지 못한다.

먹이사슬에서 결정적 위치 차지


여기서 인류의 먹거리에 해당하는 작물의 3분의 1은 충매화이다. 그리고 이 충매화 중 80%가 꿀벌의 수분에 의존한다. 대략 27%의 작물은 꿀벌이 없다면 생존할 수가 없는 셈이다. 문제는 작물의 멸종만이 아니다. 먹이사슬에 영향을 끼쳐 초식동물, 육식동물에게도 결국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먹이사슬의 종점에 있는 인간이 받을 타격은 불을 보듯 분명한 상황이다. 꿀벌의 사라짐을 인류의 멸망에 연결시킨 아인슈타인의 지적이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닌 것이다. 비록 인류 멸망까지 가지 않더라도 꿀벌의 부족은 식량난과 농산물 가격 상승을 야기한다. 이런 이유로 국제환경단체인 어스워치는 플랑크톤, 박쥐, 곰팡이, 영장류와 더불어 대체가 불가능한 생물 5종의 하나로 꿀벌을 선정하기도 했다. 경기대 꿀벌질병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윤병수 경기대 교수(생물학)는 “특히 꿀벌은 가축이면서 화분 매개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언급해, 그 독특한 위상을 강조했다.


이렇게 우려스러운 군집붕괴현상은 2006과 2007년부터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 등지에서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근 일본도 예외가 아닌데 나가노현과 그 인근에서 1천만 마리의 꿀벌이 사라져 과일 농가에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사실 벌통이 비어버리는 일은 매년 봄이면 일정하게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이는 겨울을 나는 과정에서 식량이 부족하다든가 하는 이유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 CCD는 지극히 많은 수의 일벌이 시체조차 남기지 않은 채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는 것에 그 특징이 있다. 벌통 둥지에는 먹이가 있고, 심지어 애벌레까지 있음에도 일벌들이 그야말로 군집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는 통상적으로 기생충이나 바이러스의 공세가 있을 때 애벌레나 여왕벌도 함께 전멸하는 것과는 다른 CCD 고유의 현상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군집붕괴현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아일랜드에서 있었던 950, 992, 1443년의 사건, 미국에서 과거에도 종종 CCD가 있었다는 점, 특히 1995년에도 펜실베니아주에서 양봉업자들이 반 이상의 꿀벌을 잃은 사례 등이 그렇다. 그러나 최근의 현상은 CCD가 발생한 이후로 매년 30%의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양상이 다르다. 일회적이지가 않고, 매년 사라지는 꿀벌의 수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난 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사라진  꿀벌의 수는 240만 마리인데, 이는 CCD이전과 비교할 때 총 꿀벌의 3분의 2가 사라진 수치이다. 참고로 한국의 전체 꿀벌 수는 200만으로 추정되는데, 미국과 영토 및 양봉 산업의 거대한 규모를 감안할 때, CCD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이 대목에서 문제는 극도로 심각한 국면에 접어든다. 정확한 원인이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체로 과학자들이 추정하는 원인으로는 △기생충의 일종인 꿀벌 응애 △ 농약 및 화학 물질(기억력 감퇴, 체력 저하) △전자파(방향감각 상실) △유전적 병목현상(야생종의 꿀벌이 사라지고 양봉 꿀벌이 늘어나 유전 변이도가 낮아지는 현상) △유전자 조작 식물 △양봉업의 변화 △기후변화 △이스라엘 급성마비성바이러스(IAPV)등이 지적됐다.


이중에서 윤병수 교수에 의하면 현재 가장 원인은 IAPV이다. 이는 CCD가 관찰되지 않은 호주와 비교 연구 결과 등을 통해 밝혀진 것인데, 2007년 12월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바탕하고 있다. 그러나 윤 교수는 IAPV만으로 이번 사태를 설명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보다 복합적인 과정과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IAPV만으로는 CCD를 야기하기 힘드니, 농약이나 화학물질 혹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원인에 의해 꿀벌의 체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IAPV에 꿀벌이 감염됐다고 봐야한다는 것이다. 또 꿀벌 응애가 흡혈을 하면서 IAPV가 전파됐을 수도 있다고 윤 교수는 추정했다.


물론 윤 교수는 “그러나 이는 유력한 정황일 뿐 확정적이지는 않다. 서로 엇갈리는 증거가 나오고 있어 아직 CCD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는 언급을 잊지 않았다. 윤 교수의 지적을 뒷받침하듯 많은 이들은 IAPV를 주범으로 보기는 충분하지 못하며, 전체적인 인과관계가 명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한다. 한국곤충학회(회장 윤치영·대전대)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오석 경북대 교수(생물학)는 “밝혀진 바는 없지만 어떤 원인에 의해 기존 환경이 교란돼 생긴 현상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향후 CCD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까.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 IAPV는 치료약이 없고, 예방법도 일반적인 면역 증강법에 불과한 형편이다. 꿀벌 응애는 양봉업자들이 계속해서 싸우는 대상이며, 농약 등 화학물질을 당장에 사용 금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일부에서 원인으로 지적하는 전자파 역시 쉽게 차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 사태가 호전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미지수인 상황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에도 CCD가 발생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하지만, 아직 확증된 사례는 없다.

막연한 상상보다 과학적 대응이 중요


이번 사태는 꿀벌이라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의 핵심 근간이 파괴돼 인류의 생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광우병, 신종플루 등과 마찬가지로 이 사태를 두고도 일각에서는 인류 문명 활동에 혐의를 두기도 한다.


권 교수는 “실제로 꿀벌만이 아니라 벌목 전체 그리고 해충을 제외한 곤충 전반적으로 개체수가 감소하는 경향이 최근 관찰되고 있다. 생태계의 균형이 파괴되고, 환경의 변화 속도에 비해 곤충의 내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이 사태를 두고 과도하게 인간의 문명 활동에 회의적 시선을 보내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지적도 많다. “다각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원인을 정확히 인지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윤 교수의 말처럼, 막연한 비관론은 사태의 진전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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