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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세상살이에 어찌 기쁨이 슬픔을 이길 수 있으랴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세상살이에 어찌 기쁨이 슬픔을 이길 수 있으랴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09.05.25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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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밑에 가시 드는 줄은 알아도 염통 밑에 쉬 쓰는 줄 모른다”고 한다. 너무 근시안적 인간이 되지 말라는 말일 터. 잠깐, 독자들도 자기 열손가락을 눈앞에 주~~욱 펴고 손가락을(이름을 불러보면서) 들여다보자. 맞다. 가운데손가락이 제일 길다.

그렇다면 당신의 집게손가락과 약손가락은 어느 것이 더 긴가. 글을 쓰는 이 사람은 약손가락이 집게보다 길지만 어떤 이는 분명 집게손가락이 약손보다 더 길 터이다. 손가락 길이 하나부터 이렇게 다르니…, 남이 나와 같기를 바라지 말라.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 둘이가 왜 자기들 이름은 안 불러주느냐고 투덜거린다. 열손가락 다 귀한 법.손톱은 당신의 건강거울. 두 손을 그대로 두고, 한 손톱을 다른 손톱 끝으로 꽉 눌러보면 곧 하얗게 변할 것이다. 손톱 밑에 퍼져있는 모세혈관에 피가 흐르지 못하는 탓이다. 다시, 눌렀던 손톱을 떼어보면 순식간에 분홍색으로 바뀐다. 건강한 사람의 손톱은 매끈하고 부드럽고 반들거리며 발그레한 것이 더없이 곱다. 이러한 손발톱에 지저분한 곰팡이(무좀균)까지 공격해 온다.

자식들을 손톱발톱이 젖혀지도록 벌여 먹인다는 말이 있다. 일을 하지 않고 놀다보면 손톱이 빨리 긴다.
그러나 손일을 많이 하는 사람은 닳아빠져버리니 깎을 손톱이 없다. 언제나 몽당손톱인 걸. 그런데 손발톱은 왜 있는 것일까. 딱딱한 사각형의 손톱판(爪甲) 끝이 떠받치고 버텨주어 물건을 잡거나 쥐는데 도움을 주는데 그것이 젖혀지면 너무 아프다. 손톱이 좀 나있어야 손등에 박힌 가시도 뽑고…, 손톱은 힘 약한 사람에게는 중요한 방어와 공격무기가 된다.

손톱은 정녕 멋대가리로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손톱깎이(nail clipper)는 위대한 발명품 중의 하나다. “밤에 손톱 깎으면 엄마 죽는다.”고 나무랐던 그때 그 시절에 손톱깎이가 어디 있었나. 어둑한 등잔 밑에서 고작 한물 간 가위로 손발톱을 깎다보면 생살을 베기 십상이다. 이런 말이 있다. “손톱이 길면 몸이 게으르고, 머리(털)가 길면 마음이 게으르다”고. 지금 생각하니 고등학교 선생 때 몹쓸 짓을 참 많이도 했다. 고3 아이들이(벌써 50대 중·후반에 듦) 손톱이나 머리 깎을 여가가 없다. 그래도 조회에 들어가 ‘손톱이 길면 몸이 게으르고…’를 노래하듯 흥얼거리면서 제일 잘 자란다는 가운데 손가락 손톱 하나만 딱 맨 끝을 잘라버린다.

시시콜콜, 악질선생 참 미안하다, 자네들, 그래서 서양 사람들도 'teachers are killers'라 하는 것이리라.
케라틴(keratin) 단백질이 굳어진 반투명한 손톱에는 신경이 없으며, 잘 썩지 않고 불에 태우면 심한 노린내가 난다. 그런데 손톱의 아래, 뿌리 쪽(조근·爪根, 조모·爪母)의 일부는 흰색이다.

초승달 모양으로 보이는 하얀 부분 말이다. 그것을 속손톱, 손톱반달, 爪半月로 부르고, 영어론 ‘lunula(반달)’다. 겉으로 나와 보이는 것이 반달은커녕 ‘초승달’로 보이지만 그것을 덮고 있는 살을 파서 벗겨(아야, 아프다!)버리면 반달꼴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속손톱 자리가 뽀얗게 보이는 것일까. 다 자란 손톱은 손톱(두께는 남자는 0.6mm, 여자는 0.5mm임) 밑바닥에 흐르는 피가 비쳐 분홍인데 속손톱은 자란손톱에 비해 두께가 3배나 돼 피가 비쳐 보이지 않아 흰 거란다. 그랬구나, 앎의 기쁨이라니! 파충류, 조류, 포유류의 대부분(개, 고양이 까지)은 갈고리발톱(claw)을 가지고 있으며, 오직 영장류만이 손발톱(nail)이 있다. 역시 그렇군, 자연을 엿보는 재미라니.손톱 길어나는 속도는 하루에 약 0.1㎜이고, 발톱보다 빠르다. 그리고 자람의 빠르기는 나이(늙으면 느림), 성(남자가 빠름), 계절(여름에 빠르고 겨울에 더딤), 운동(운동 많이 하면 빠름), 영양(잘 먹으면 빠름), 유전적인 소질들이 결정하는데, 평균하여 손톱 하나가 완전히 돋아나는 데는 3~6개월, 발톱은 12~18개월이 걸린다. 그리고 사람이 죽은 다음에도 손발톱이나 머리카락이 긴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 못 된 말이다. 落命 뒤에 그것들이 두루 물이 빠지면서 굳어져 길어진 것처럼 보일뿐이다.
암튼 “손톱은 슬플 때마다 돋고 발톱은 기쁠 때마다 돋는다”고 한다. 어찌 세상살이에 기쁨이 슬픔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렇고 말고, 되게 슬퍼야 영혼이 맑게 淨化된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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