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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캠퍼스 환경과 착시현상
[대학정론] 캠퍼스 환경과 착시현상
  • 박길룡 논설위원 /국민대·건축학
  • 승인 2009.05.25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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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몸-환경은 하나의 뜻이기에, 몸의 건강이 환경을 조건으로 하고, 마음은 몸이라는 시스템을 그릇으로 한다. 그러니까 마음은 몸과 다르지 않고 몸은 환경과 구조 관계에 있다. 나쁜 마음은 나쁜 몸에서 나고, 좋은 환경이 좋은 마음을 만든다. 그래서 어떤 문화 환경에서 청년기를 보내는가는 그의 정서와 문화를 결정짓는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다음의 우리 사회문화가 된다. 이러한 환경결정론은 맹모시대부터 잘 알려져 왔지만, 기업문화, 가정문화, 도시문화가 다 마찬가지이다.

캠퍼스는 대학마다 깊은 전통을 통해 구축해온 기억의 공간이고, 그 소속원들의 정서와 지식을 키우는 모태이기도 하다. 이 모태는 자연과 건축과 오픈스페이스와 시설이라는 물리적 구조로 구축된다. 여기에 대학의 지식과 감성이 담겨 어떤 大學性으로 표현된다.

캠퍼스의 건축이 대학의 문화가 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대학이 잘 알고 있다. 과학자의 집단인 KIST는 김수근의 본부관(1969년)을 보존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지금도 당당한 캠퍼스의 상징이 되고 있다. 고려대는 하나로 광장(1999년)을 지하의 문화공간으로 개축했다. 국제현상공모에서 추린 이화대학교의 이화 캠퍼스센터 ECC(건축가 도미니끄 뻬로,2008년)는 시민도 좋아하는 문화 장소이며, 승효상과 민현식의 설계에 의한 대전대의 캠퍼스 건축문화는 대한민국 최고이다. 한국전통예술대(2002년)는 마스터플랜에서 건축까지 한 작가에 의해 진행돼 그 공간문화가 뚜렷하다. 국민대도 마스터플랜을 보전하며 캠퍼스 전체의 공간감을 시각구조화 하는 데 성공했다. 울산대 건축대학관(2009년)도 실험적인 디자인을 받아들였다. 

대학의 건축도 단지 쓰기 위해 짓는 것은 아니며, 자기 현시를 합목적성에 둘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화 착시가 벌어지는데, 대학건축에 권위주의의 욕망이 작동한다.한양대와 경희대의 본관은 서양풍의 신고전주의를 조형한다. 19세기 서양의 양식이 20세기 한국의 대학 본관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아마 지성의 장소라는 뜻과 고전 양식의 코드였을 것이다. 이러한 스타일을 네오 클래식이라고 해 18세기 유럽에서 한 때 유행했다. 이 양식은 말 그대로 신고전주의인데 바로크의 파도가 지나가고, 고고학의 진흥과 함께 유럽이 가진 그리스-로마의 고전 규범 미학이 다시 먼지를 털고 나온 것이다. 신고전주의는 나름대로 미학적 의미를 갖는다. 19세기 고급문화는 그리스 고전의 엄정함, 단아함 그리고 품위의 태도를 즐겼다.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1847), 독일 베를린의 알테스 뮤지엄(1828)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구한말영국인들이 덕수궁에 지어준 석조전(1910)도 이 양식이다.

대학이 고전을 취하는 것을 상아탑의 권위이며 아카데미의 상징으로 말하지만, 건축문화로 보자면 대학이 가진 동시대성의 문제이다. 한국의 대학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 봤자 해방둥이들이다. 성균관대가 성균관시절을 加逆하며, 숭실대가 평양시대를 나이로 꼽고 있지만, 서울대는 경성제국대학 시절을 나이에 넣지 않는다. 고려대는 개교 시절(보성전문)부터 나이가 들고 싶어 했다. 창업자가 막 탄생한 대학을 캠브리지처럼 노회한 나이로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본관과 도서관(1933~34년)이 고딕 성관풍으로 지어진다. 고딕으로 지어진 경희대 평화의 전당(2002년)도 착시적이다. 이 건축은 특히 부뤼셀의 구둘 성당(13~17C)을 복제했다. 구들 성당은 13~17세기의 일이고, 평화의 전당은 20세기 후반의 일이다.

전통은 그렇게 해서 연장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좀 더 인간적이고 편안한 환경을 만드는 데 생각을 썼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캠퍼스 환경에서 또 하나의 문제는 높은 인구밀도다. 한정된 대지 안에 건물들이 양적으로 밀식되며, 거의 생물학적 문제를 일으킨다. 원천적으로 대학의 재정이 문제이지만, 이미 밀도가 임계치에 도달한 대학이 많다. 밀도는 긴장을 유발하고, 심리적 압박은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지방 캠퍼스 건설이 양적 팽창의 대안이 되기도 했지만, 그것도 이제 여의치 않다. 양의 경제를 거두어들일 시대도 됐건만, 대학은 經營位置가 불안하다. 현재의 위치에서 인구 구조를 유지하더라도 가능한 대안은 그린 캠퍼스다. 이 역시 비용-수익을 따지다 보면 물 건너 이상이 되기 쉽지만, 대학은 상징적 의미로라도 녹색환경을 당위로 할 필요가 있다.

모든 대학 캠퍼스가 그린 캠퍼스를 윤리적 의무와 실질적 효용으로 삼아 경영하는 문제를 고민해볼 때가 아닐까.

박길룡 논설위원 /국민대·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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