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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흉계 담은 호기심의 전쟁터에 선 ‘역사쓰기’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흉계 담은 호기심의 전쟁터에 선 ‘역사쓰기’
  • 구갑우 서평위원 북한대학원대·정치학
  • 승인 2009.05.1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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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책을 선물해 주는 사람과 기관이 있다. 책을 받을 때마다, 함께 술을 마시는 것만큼이나 즐겁다. 덕분에 최근에는, 동아시아 근대와 기독교에 관한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친구들이 나의 취향을 읽고, 생각의 흐름에 개입하거나 생각을 공유하려는 의도에, 나는 기꺼이 반응한다. 그들은, 나에게 ‘나쁜’ 책을 주지 않는다. 혹시 실수를 했다 싶으면 바로 연락을 한다. 그들은 항상 ‘고상한’ 양식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숭고한’ 우리의 묵계를 깼다. 전두환 정부부터 김대중 정부까지 한국정치의 와중에 있던 박철언의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5공, 6공, 3김 시대의 정치 비사』(2005)를 건넨 것이다. 추상놀음을 좋아하는 나에게 기록물을 보라고 권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5·6공화국에 대한 선입관 때문에 조금은 투덜거리며, 책을 한 쪽에 밀어 놓았다. 그러다 본업 가운데 하나인 남북관계사 공부를 위해 다른 책을 뒤지다 문득 5·6공화국에서 이른바 북방정책을 기획했던 인물이 바로 그였구나 생각이 들어, 그 책을 보기 시작했다. 잘 읽혔다.

그리고 놀랐다. 남들은 다 아는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북한에서 열리던 날, 그는 평양의 능라도 경기장 주석단에 앉아 김일성·김정일과 함께, 남한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가 파견한 임수경이 입장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 후 판문점을 통해 남한에 돌아 온 임수경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지만, 박철언은 1991년까지 남북의 비밀회담에 참여했다. 또 하나. 그는 책에서, 시종일관 “친미 일변도의 시각과 극우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인물들과 맞서고 있었다. 그들의 “끝없는 견제” 속에서, 그는 책에 ‘따르면’, 남북의 “화해와 공존” 그리고 “한민족 공동 번영의 시대”를 열려 했다.

나는 박철언의 『바른 역사』와 함께, 노태우정부 시절 남북고위급회담 대표 가운데 한 명이었고 김대중정부 햇볕정책의 이론가였던 임동원의 『피스메이커: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20년』(2008)와 시민사회의 통일운동가 민경우의 『민경우가 쓴 통일운동사: 1972-2005』(2006)를 읽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놀랐다.

박철언은 42차례에 걸친 남북 비밀회담을 통해 “주변 강대국과 국내 극우 보수 세력의 집요한 견제로 인해 정상 회담을 성사시키지는 못했”지만 남북의 평화공존과 불가침과 교류협력을 주 내용으로 하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모태를 마련했다고 주장하지만, 공식회담의 대표로 남북기본합의서의 채택에 기여했던  임동원의 책에는 박철언이 없다.

민경우는, 기본합의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보수세력 내부의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에 주목하면서, 1989년 문익환·임수경의 방북과 1991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결성과정에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북한에서 간행되는 책자에는, 박철언·임동원은 없고, 문익환·임수경은 있다.

다시금, 하나의 역사가 있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역사‘들’이 경쟁하고 있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남북관계사에는 세 층위-비밀대화, 공식대화, 불법대화-가 공존하고 있었다. 각 층위의 행위자들은 각자 저마다의 통일을 진술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어느 층위와 어느 행위자에 무게를 두면서 남북관계의 역사를 써야 하는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역사를 쓸 수 있다면, 행복한 연구자가 될 수 있을까. 그 호기심에는 현재를 정당화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흉계’가 담겨 있지 않을까. 역사쓰기는, 흉계를 담은 호기심들의 전쟁터로 들어가는 일이지 싶다.

구갑우 서평위원 북한대학원대·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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