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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 문체로 서양미술 투시 … 인상비평에 머문 것 아쉬워
매혹적 문체로 서양미술 투시 … 인상비평에 머문 것 아쉬워
  •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 승인 2009.04.20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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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밖 미술비평_ ① 김 현

한국미술의 발전 궤적에서 자주 간과되는 부분 하나를 꼽으라면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미술밖’ 대가들의 미술비평이다. 장르로서 엄격히 자리잡은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미술밖 미술비평’은 한국미술, 나아가 세계적 명작의 아우라를 한껏 응시하면서, 무엇보다 세련된 문체의 글쓰기를 통해 전문 미술평론가들이 미쳐 읽어내지 못한 심미적 시선을 환기해냈다는 점에서눈여겨볼 만하다. <교수신문>은 그간 자신의 영역 안으로 미술을 흡입해서 새로운 풍경을 창출해온 비평가들, 작가, 학자들의 미술비평을 복기하면서, 이들의성과, 미술작품을 읽어내는 시선의 심급을 진단하고자 한다. 김우창·김윤식·김현·김화영과 같은 당대의 비평가들, 박정자·박홍규·서경식·이가림과 같은 눈밝은 학자들, 작가 박완서 등을 논의해 나가면서 우리시대 미술밖 미술비평의 심미적 시선을 조감하고자 한다.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이 미술에 관해 쓴 몇 편의 글들은 우리 미술계에서 각별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우선 그가 1985년에 발표한 「미술비평의 반성」이 그렇다. 여기서 김현은 “그림에 대한 글들을 읽을 때에 나에게 고통스러운 것은, 내가 자꾸만 작문 교사의 위치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라는 충격적인(!) 발언과 더불어 당시 우리 미술비평의 글쓰기 방식을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이 우리 미술계에 미친 충격과 그 충격의 여파는 매우 컸다. 하지만 이 애정 어린 비판이 이후 한국미술비평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또 그가 번역, 소개한 미셸 푸코의 미술담론은 또 어떤가. 가령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민음사, 1995)는 지금 미술대학이 있는 대학교 도서관에 가장 닳고 허름한 모양새로 꽂혀 있다. 또한 그가 1990년 초에 월간미술에 기고한 「푸코의 미술비평」은 지금도 푸코와 더불어 미술을 독해하려는 이에게는 반드시 읽어야 할 글로 자리매김 돼 있다.

이 글들이 1990년대 우리 미술계를 휩쓴 푸코 열풍, 더 나아가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에 큰 영향을 미쳤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정작 김현이 미술 작품에 관해 본격적으로(?) 쓴 글들은 한국 미술계에 크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이는 무엇보다 김현 자신이 미술에 대한 글쓰기에 매우 소극적이었으며, 그 때문에 그가 미술에 관해 쓴 글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에 기인한다. 또 그가 미술에 관해 쓴 글들이 대부분 단장 형태의 짧은 글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더불어 이 글들이 한국 미술이 아니라 주로 서구 근대 미술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하지만 이 글들은 김현 자신의 예술관을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당시 우리 사회 지식인 일반의 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반영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김현이 미술에 대해 쓴 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프랑스 수학기에 쓴 여행기 『김현 예술기행』(열화당, 1976)에 게재한 일련의 글들이다. 여기에는 가우디, 피카소, 고야, 브뤼겔, 고흐, 드가, 앙리 루소, 자코메티, 로댕, 그리고 만화에 대한 글이 포함돼 있다. 이 글들을 지배하는 기본 정서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감탄, 감동이다. 김현 자신의 회고를 빌리면 그는 낯선 도시들에서 “나를 습격하여 나의 목덜미를 잡아끌고 그의 세계 속으로 들어오라고 소리치는 많은 예술가를 만났고”, 그 만남에 “감탄하고 감동했다.” 이러한 감탄과 감동은 그에게 이 작품들에 대해, 또는 감동하는 자신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낳았다. 과연 이 글들에는 미술 작품에 압도당하고, 충격 받는 순간, 그리고 그로부터 아파하고 고통받는 체험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이러한 체험은 그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것의 기능이 현실적인 것의 기능을 강화하고 보완시킨다는 것”(가우디)을 깨닫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이란 고통하는 자의 소리이며 고문하는 자의 소리”(고야)라는 오래 전부터의 생각을 확인시켜 주었고, “삶, 그것 때문에 고통하지 않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그것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려 하는, 그래서 거기에서 의외성을 발견하기 위해 처참하게 노력하는”(드가) 자신의 초상을 발견케 한다.

구체적 작품분석이나 독해는 부족

특히 저항적인 예술작품과 제도화된 번듯한 미술관의 괴리를 체험하고 번민하는 김현의 모습(자코메티)은 오늘날 대안공간이나 공공미술 같은 새로운 예술 공간을 모색함으로써 그 괴리를 극복하고자 하는 한국 미술계의 시도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이 구체적인 작품 분석과 맞물리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다. 평론가 김현의 매력이란 작품에 대한 자신의 주관적 체험을 섬세하고 통찰력 있는 작품 독해를 통해 보편적인 것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지 않은가! 미술에 대한 글쓰기에서 그가 품 분석 대신 의지하는 것은 미술가 개인의 전기적 사실, 또는 발레리나 사르트르, 말라르메 등의 글이다(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있어서의 드가는 발레리의 「드가·춤·데상」이라는 에세이에 나오는 드가이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기실 김현의 글에서 작품에 대한 전혀 새로운 독해나 해석을 발견하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그는 도처에서 자신이 전문 비평가가 아닌 아마추어이며 그 때문에 미술 작품을 미학적인 차원에서 이해할만한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발레리나 사르트르, 그리고 푸코 역시 전문적인 미술 비평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작품과의 치열한 만남과 분석에 입각한 이들의 글쓰기는 전문 비평가나미술사가들이 도달하지 못했던 통찰과 경지에 이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 현대 지성사의 높은 봉우리로 자타가 인정하는 김현이 미술에 대한 쓴글들이 단순한 인상 비평에 머물고 있는 점은 역시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다.  『김현 예술기행』에 실린 관련 글들에서 보이는 또 다른 특징은 고전에 대한 감탄, 감동과 짝을 이루는 동시대 미술에 대한 혐오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고흐를 보고나서 느낀 최초의 감정은 현대미술이라는 이름 밑에서 가짜 미친 짓을 하는 수많은 화가들에 대한 증오였다.” (고흐) 또 다른 글에서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특수 장치를 한 모나리자를 감시원이 내내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리고 그 앞에서 장터에서처럼 북적거리고 있는 일본 관광객을 보았을 때의 구역질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드가) 이러한 발언은 글이 집필된 시기가 1970년대 중반임을 감안하더라도 그가 지나치게 한 쪽에 치우쳐져 있다는 인상을 준다. ‘김현 쯤 된다면’ 좀 더 객관적인 자리에 서기 위해 노력하면서 왜 그들이 “가짜 미친 짓”에 열중하며 왜 그들이 “장터에서처럼 북적거려야 했는지” 말해 줬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러한 실망은 「만화도 예술인가」라는 글에서 어느 정도 만회된다. 여기서 김현은 동시대 프랑스 만화, 또는 라캉이나 데리다의 글에서 보이는 엄청난 ‘단어 학살’에 경악한다.

그리고 자문한다. “그것은 정말 기벽에 지나지 않을까. 그것은 못된 버릇에 불과한 것일까. 이러한 자문과 더불어 그는 과거 자신이 폄훼했던 만화라는 장르에서 그가 찬양해마지 않는 어떤 부정의 힘, 습관적인 것, 일시적인 것을 부인하는데서 오는 어떤 정신의 힘을 어렴풋하게나마 자각한다.
이러한 자각은 글 말미에 “만화는 대중 예술이 아니라 대중들의 예술”이라는 선언적 발언으로 이어진다.

미술적 체험 담아낸 美文의 독보성


하지만 이후 김현은 이러한 자각이나 인식을 자신의 글에서 더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달리 말해 이후 김현은 미술이나 대중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글쓰기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후 외곽으로 물러나 「미술비평의 반성」이나 「푸코의 미술비평」같은 글을 썼다.

하지만 이후 김현은 이러한 자각이나 인식을 자신의 글에서 더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달리 말해 이후 김현은 미술이나 대중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글쓰기에 나서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후 외곽으로 물러나 「미술비평의 반성」이나 「푸코의 미술비평」같은 글을 썼다.

“엄숙하고 정직하게만 생각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돌아보는 그의 반성의 깊이, 또 「만화도 예술인가」에서 그가 보여준 동시대 대중문화의 기벽과 치기어린 성향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오늘의 ‘전문적이지만 고립된’ 우리 미술계의 상황을 돌아볼 때 이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김현 예술기행』에 실린 그의 미술 단장들은 그 자체 아름답다. 미술 밖에서, 아니 미술 내부를 포함하더라도 미술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절절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묘사한 글은 한국 현대 지식인 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나의 김현 비판은 투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홍지석 객원기자·미술평론가 kunst75@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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