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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자들의 독주 막는 최후 보루될 수 있을까
과학 기술자들의 독주 막는 최후 보루될 수 있을까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9.04.20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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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대중화 현장을 찾아서.3] 과학·환경편

‘오늘’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혹자는 경제위기를 언급할 것이고, 혹자는 정치의 보수화를 논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통일을 말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빈부격차를 강조할 수도 있다. 분명 정치나 경제 정세에 관련된 문제는 체감도가 높고 삶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치와 경제만으로 오늘의 세계가 제기하는 숱한 문제들에 대응할 수는 없다. 설령 정치와 경제 문제에 집중을 한다고 하더라도, 추상적인 권력 투쟁이나 경제 논리만으로, 그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과학기술과 환경문제의 영향력이 시대의 향방을 결정하는 주요인으로 부상한 이유가 가장 크다. 작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미국산 소의 광우병 논란이나 실시간 네트워킹으로 결집한 촛불 시위 대중의 배후에도 과학기술과 환경 문제가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 그 예다. 뿐만 아니라 황우석 사태는 그 자체가 과학 기술과 윤리가 얽힌 사건으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바가 있다. 유전자 조작, 환경 오염, 풍요롭지만 위험해보이는 신기술의 등장 등 다양한 과학기술 관련 정세가 오늘날의 세계를 규정짓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지식대중화 현장에도 과학기술과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단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문학 대중 단체는 지식 자체의 향유에, 사회과학 대중 단체는 다소 경직된 전투적 자세로 지식과 대중을 사고하는 면이 있다. 반면에 과학기술 및 환경 관련 단체는 현 시대의 근본 화두로 부상한 과학기술과 환경을 대중과 어우러져 성찰하고자 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과학은 과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표적인 단체들을 살펴보자. 우선 시민참여연구센터가 있다. “2002년 3월 대전과학상점 준비모임에서 시작해 2004년 7월 1일 발족”한 이들은 과학기술과 사회의 문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신명호 사무국장은 단체의 설립 취지에 관해 “한 사람의 시민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과 역량은 후기 산업자본주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증대하는 대 반해 복잡하고 위험한 사회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시민사회의 역량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하에 “과학과 기술 자체가 자본과 국가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는 지점을 깨기 위해서 전문적인 과학교육을 받지 않은 일반 시민들도 자신의 삶과 연결된 많은 문제들에서 과학기술적 역량을 발휘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비판적 인식을 위한 토대를 만들고자 하는 것”을 들고 있다.

여기에는 “과학기술자의 사회화”라는 기치 아래 “기술의 전문연구자들에게 사회적인 자극과 동기를 부여하고 연구실이나 학교 밖으로 나오게 하는” 활동도 포함이 된다.

신 사무국장에 의하면 시민참여연구센터는 특히 과학기술자 집단 내부의 문제나 사회적, 윤리적 책무에 대한 제도적인 접근법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투명하지 않은 의사결정 구조에서 비롯한 정보비대칭성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이에 포함이 된다.

이를 위해 센터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시민사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연구논문, 보고서, 단행본 등을 통해서 입수되는 일차적인 과학지식을 수집하고 정리해서 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가공하는 작업’ △‘대전 유성 지역사회에서 ‘찾아가는 시민교육’을 하는 것으로, 식품, 환경보건, 에너지와 물, 안전 등 삶에 밀접하게 관련된 이슈에 대해 시민들에게 비판적인 과학지식을 직접 전달하는 것’ △‘공공부문의 연구개발체계 전반에 대한 조사연구’ 등이 그것이다.

신 사무국장에 의하면 과학기술 관련 단체를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지역 시민사회, 환경단체, 노동조합 등에서 방문하고 인근 지역의 주부”들의 참여가 높은 편이다. 특히 “주부들은 아무래도 과학교육이나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과학적 문제들에 대한 설명이나 과학지식 습득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전언이다. 센터의 이러한 활동은 상대적으로 접근이 어려운 과학 지식 및 과학 기술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문제를 시민들과 함께 제기한다는 점에서 모범이 되고 있다.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서인지, 노무현 정부 때는 과학문화재단과 대전의제21 등으로부터 과학상점 프로젝트와 지역사업 관련 단기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도 있다.

대중화라는 구호의 함정 극복이 관건


과학기술 관련 대중화 단체로는 그 외에 시민과학센터도 있다. 창립선언문에서 “과학기술운동은 이공계 출신으로만 구성되어 과학기술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과학기술자운동'이나 ‘과학기술노동운동’ 과 동일한 것으로 오해됐다. 과학기술처럼 '전문가'이데올로기가 심한 분야에서 시민참여를 북돋고 민주적인 통제를 실현해 나가기 위해선, 시민단체가 대안적 정보를 발전시키고 이를 시민과 언론에 제공하여 사회적 토론을 촉진하며 과학기술 의사결정과정에도 공익을 대표해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설립취지로 내세운다.

1997년 과학기술민주화를 위한 모임에서 시작한 시민과학센터는 그간 유전자 변형 농산물 파동이나 몇몇 대학의 실험실 폭발 사고, 유전자 조작 등 현안에 대해 성명서나 토론회 등으로 대중적 대응을 일궈왔다. 그리고 <시민과학> 등의 잡지와 단행본들을 통해 과학기술의 다양한 사회적 의미를 논구해오기도 했다. 최근에는 문지문화원 사이와 함께 시민강좌도 개설해 나노기술의 위험이나 원자력 발전의 문제 등을 다루기도 했다.

참여연대의 지원에 힘입어 폭넓은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시민과학센터의 활동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자체 프로젝트의 수행에 있다. 일례로 지난 2004년에는 전력정책 시민합의회의를 통해 원자력 중심의 전력 정책에 대한 대안을 모색했으며, 2005년부터 2008년까지는 한국의 과학자 사회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과학자 사회의 면면을 해부하고자 했다.

이들 단체는 주로 과학기술 전공자나 연구자들 중에서 80년대의 경험을 통해 사회 비판적 문제의식을 지니게 된 자들이 중심이 돼 구성이 됐다. 애초부터 사회변혁을 전면에 내세운 사회과학 관련 지식 대중화 단체보다는 정치적 색채가 약하고, 과학자 혹은 예비과학자의 자발적 활동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다른 시민단체나 외부의 지원이 없다면 자체적 생존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재정이나 조직의 자립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대학 외부에서 지식 대중화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단체가 겪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학기술이, 아무리 민주화와 대중화를 표방해도, 그 전문적 성격상 대중적 접근성을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신명호 센터 사무국장은 “지식의 대중화라는 모토에는 찬성하지만, 지식 생산의 메커니즘을 간과해서는 지식 대중화라고 하는 것도 사상누각에 불과한 표피적 구호에 그칠 것”이라고 진단한다.

“대중이 요구하는 바에 대한 민감성이란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둔감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 사무국장의 지적은, 고도의 전문 지식과 대중의 욕망 그리고 실재 물질 대상의 역학 관계는 조야한 ‘대중화’의 구호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임을 시사한다. 사회가 과학적 지식을 구성하는 면이 있지만, 과학적 대상의 실재성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착종된 현실에 대한 세심한 고민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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