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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사전 구축·자연언어 처리하는 전산언어학 눈여겨 봐야
전자사전 구축·자연언어 처리하는 전산언어학 눈여겨 봐야
  • 장석진 서울대 명예교수·언어학
  • 승인 2009.04.2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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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미래_ 6. 언어학

<교수신문>은 ‘학문의 미래’ 마지막 테마로 언어학를 다뤘다. 언어학이 본격적으로 날개를 펴기 시작한 20세기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대별된다. 20세기 초는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 및 블룸필드의 구조주의 언어학과 20세기 후반 촘스키의 생성문법론이 대세를 이뤘다. 촘스키의 이론은 최소주의로 변화 발전해갔고, 언어학의 질서를 재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오스틴의 화행 이론이라든지, 윌슨의 적합성 이론도 등장했고, 사회언어학, 심리언어학, 신경 언어학 등 학제적 경향의 분야도 발전했다. 특히 전산언어학의 발달은 주목할만한데, 전자 사전 구축 등에 기여를 하고 있다. 과연 언어학은 어떤 미래를 예비하고 있을까.

인간 본유의 속성인 언어의 본질, 구조, 기능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언어학이 등장한 지 100 년, 이 사이에 언어학은 일반언어학으로서 통사, 음운, 의미 등 세분된 문법 분야의 연구가 심화돼갔고, 한편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등 사회과학과 수학, 생물학, 뇌신경학, 컴퓨터공학 등 자연과학과 접촉해 다양한 학제적 학문으로 확산돼가고 있다. 언어학의 미래는 현재의 언어학의 심화와 확산으로 투사될 수 있다. 이 글에서 일반언어학과 학제언어학의 미래를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조망하고, 우리나라 언어학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제언을 덧붙인다.

20세기 언어학의 흐름
20세기 전반기의 언어학은 소쉬르의 구조주의 일반언어학과 블룸필드의 미국식 구조주의 언어학이 주류였고, 후반기의 언어학은 촘스키의 생성문법이 주도했다. 인간의 생득적 기능을 탐구해 보편문법 구축을 지향하는 통사론 중심의 생성문법은 1950년대에 변형문법으로 출발해 GB(Government and Binding) 이론을 거쳐, 최소주의(Minimalism) 이론으로 정착해 심화되고 있다.

한편, 이에 맞서 80년대에 변형과 도출을 부정하는 Bresnan의 LFG(Lexical Functional Grammar), Sag의 HPSG(Head-driven Phrase Structure Grammar), 관용(usage)과 통사-어휘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Fillmore, Lakoff, Goldberg 등의 구성문법(Construction Grammar), 구성의 인지적 의미내용을 중시하는 Langacker의 인지문법(Cognitive Grammar) 등이 문법계를 할거하고 있다. 음운론 분야에서는 생성문법의 여파로 촘스키와 Halle의 저서 SPE(The Sound Pattern of English, 1968)로 등장한 생성음운론이 자립분절음운론, 미명시음운론, 억양음운론 등을 거쳐 최적성이론(Optimality Theory, OT)으로 정착해 통계적이고 음성학기반의 OT로 확산될 조짐이다. 음성학 분야에서는 조음음성학, 청각음성학에서 운율론, 음성합성, 자동음성인식 등 실험음성학 방향의 연구로 확산되고 있다. 

의미론 분야는 70년대에 Frege, Carnap 등 논리학자들의 진리조건적, 모형이론적, 가능세계 형식의미론에서 시작해, 자연언어를 대상으로 통사부와 의미부를 대응시킨 Montague 의미론과 80년대의 Barwise와 Perry의 상황의미론을 거쳐, 역동적 의미론인 Kamp의 담화표상이론이 심화되고 있다. 화용론 분야에서는 60년대에 Grice의 대화의 협동원리와 4 종의 격률(maxim)을 근간으로 하는 함축적 추의(implicature) 연구와 그 연장으로 Sperber와 Wilson의 적합성이론(Relevance Theory)이 부상했고, 같은 시기에 언어철학자인 오스틴이 창도하고 설이 계승한 화행(speech act) 이론이 등장해 심화되고 있다.

학제언어학을 조감하면 사회언어학 분야에서는 여성어, 존대어, 비속어, 담화분석의 연구, 심리언어학 분야에서는 유아의 언어습득에 통사론 위주의 접근을 지양하고 인지신경심리학과 연결주의(connectionism)를 원용한 연구, 신경언어학 분야에서는 말더듬이, 실어증에 대한 연구가 확산되고 있다. 학제언어학에서 괄목할 분야는 전산언어학이며 형태소분석, 구문분석, 기계번역 등의 자연언어의 처리, LISP, PROLOG 등 프로그램 언어의 개발, BNC, COCA 등 말뭉치(corpus)와 WordNet, EuroNet 등 전자사전의 구축 등등 연구 영역이 다기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다.

언어학의 미래는 이처럼 일반언어학에서 분야별로 연구가 심화되고, 학제언어학 특히 전산언어학에서 연구 영역이 분화, 확산돼가는 ‘심화와 확산’의 미래로 집약될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 언어학의 현황과 미래를 조망하자.

우리나라 대학 중에 언어학과가 설치돼 있는 대학은 5개 대학인데, 서울대(1946), 한국외대(1987), 고려대(1989), 부산대(1992) 충남대(1993)이다(괄호 안은 설치연도). 학생 정원은 학년 당 20명 안팎, 전임교수는 5명 내외(서울대 9명), 언어학 박사는 300 여명(그 중 국내 박사 (서울대 84명을 포함해) 약 100명)이다. 대다수의 언어학자가 언어학과 아닌 타 학과나 연구소에서 일반언어학이나 학제언어학을 연구하고 있다. 한편, 언어학의 하위분야인 국어학에서는 국어학자들에 의한 중세/고대한국어의 어휘, 음운, 형태, 통사, 의미에 대한 통시적 연구가 돋보이며 심화돼갔다. 언어학 관련 학회로는 한국언어학회 (1975년 창립)를 비롯해 지역별로 한국현대언어학회(충청권, 1983), 대한 언어학회(호남권, 1992), 한국언어과학회(영남권, 1993), 제주언어학회(제주도, 1996), 분야 별로 생성문법학회, 언어정보학회, 음성음운학회, 담화인지학회, 사회언어학회, 한국알타이 학회 등이 학회지를 내고 연례학술대회,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한국언어학회가 주관 하는 서울국제언어학학술대회(SICOL)가 1981년부터 4~5년마다 열리고, 해외에 기반을 둔 국제한국언어학학술대회(ICKL)와 태평양아시아언어정보커뮤니케이션학술대회(PACLIC)가  각각 2년마다 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작년에 언어학계의 올림픽이라 할 세계언어학자 대회(CIL)의 18 차 학술대회가 서울(고려대)에서 6일간(7.21~26) 열려 800 여편의 논문이 발표되고 1000 여명이 참가했다.

한국 학계, 내면적인 질적 향상 필요

이렇게 우리나라 언어학계는 빠른 성장을 해왔고 왕성한 연구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외형적인 양적 성장보다 내면적인 질적 향상이다. 30여 년 전 ‘세계를 호흡하는 학회’라는 기치를 내세웠던 한국언어학계는 이제 일반언어학이나 학제언어학 연구에서 새로운 이론과 연구방법을 창출해서 밖으로 내보낼 때가 됐다. 그렇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요건이 갖추어져야겠다. 첫째, 언어학을 천직으로 삼는 ‘한국의 두뇌들’이 많이 나와야겠고 둘째, 이들이 국내외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원하는 언어학 분야의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연구비 지원을 포함한, 연구 여건이 숙성돼야겠다.

우리가 언어학 이론을 창출해 밖으로 전수할 날이 과연 올지 알 수 없으나 현재 우리나라 언어학의 현황은 많은 분야에서, 이론과 응용 양면에서, 외부 언어학 현황과 대등한 위상을 지니면서 수준 높은 논문들이 발표되고 학술지에 게재되고, 국제적 학술 교류가 활발하다. 이 추세는, 위의 두 여건을 갖추지 못한 상황 속에서도, 앞으로 지속될 것이고 그 점에서 우리나라 언어학의 전망은 밝다(졸문 『한국의 학술연구: 언어학』 총론에서).

장석진 서울대 명예교수·언어학

필자는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생성문법』등의 저서와 「화용과 문법 : 자연언어처리를 위한 화맥연구」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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