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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통계숫자로는 ‘빈곤의 현실’ 제대로 연구할 수 없어 ”
“이론과 통계숫자로는 ‘빈곤의 현실’ 제대로 연구할 수 없어 ”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9.04.20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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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경 이화여대 교수, 빈곤 문제 연구 전환 촉구

노동여성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눔과 돌아봄(reflection)’으로 연구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순경 이화여대 교수(여성학과)는 지난 14일 이화여대LG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국제학술회의 ‘지구화시대의 빈곤과 여성노동’에 「관계의 결핍으로서의 빈곤과 학문으로서의 나눔」을 발표하면서 대학과 학계가 ‘나눔과 돌아봄’에 눈을 돌릴 것을 촉구했다.

그동안 연구자들은 국가와 시장이 노동여성 빈곤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해 왔는데 이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조 교수는 “지난 20년간의 경험으로 통해 볼 때 국가와 시장은 일하는 여성들의 빈곤을 해결하는 주체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국가와 시장의 한계를 성찰해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그는 고용 불안정, 노동 빈곤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으로서 ‘새로운 지역 공동체’ 설립을 주문했다. 이를 위해 “학계가 시장 영역 밖에서의 일자리의 창출, 공동체적 나눔을 통해 자원의 결핍과 사회적 배제를 해소해 나가는 방안을 연구하는 데 관심을 돌려야 한다”는 게 조 교수의 기본 발상이다.

조 교수의 발제에 따르면, 빈곤은 친밀한 관계의 결핍에서 발생하는 한편, 이 빈곤의 이미지는 대도시를 비롯한 삶의 현장에서 제거됨으로써 마치 지구상에서 빈곤이 사라져 가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렇게 빈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학문 영역에서도 이들 문제를 지속적이고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어렵게 됐다. 또한 무한경쟁을 전제로 한 대학의 세계화 바람은 연구자들로 하여금 ‘전문화’의 덫에 빠지게 만들어 학술논문 형식에 매몰되게 하고 있다. 기존의 연구방법에서 벗어난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조 교수의 해법은 무엇일까. 학계 특히 여성학과 여성주의 연구자들이 가려져서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빈곤의 현실을, 추상적인 이론이나 통계수치가 아닌 ‘삶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내줄 것을 제안했다. 조 교수가 제시한 이 방식은 “개인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학술 논문 형식의 틀을 벗어나는 글”, “기존 패러다임 밖에서 작업하기”로 요약된다. 방글라데시 그라민 뱅크를 창설한 유누스 교수의 실천 사례에 주목한 결과다.

‘나눔과 돌아봄’을 위한 앎 교육은 대학 커리큘럼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봉사 정도로 취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조 교수의 양심고백에 가까운 이번 발제가 대학과 학계에 어떤 기폭제가 될지 주목된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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