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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들은 저렇게 멋진 한살이를 사는데…
저것들은 저렇게 멋진 한살이를 사는데…
  •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09.04.13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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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봄 향기를 전하는 주꾸미 철이 돌아왔다. 이맘때면 군산, 서천 등 서해안 여러 곳에서 ‘주꾸미축제’가 열린다. 요즘 잡히는 주꾸미에는 알이 꽉 차있고, 타우린과 비타민 B2, 철분이 풍부해 가장 맛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꼭꼭 씹히는 탱글탱글한 주꾸미 알은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일품이다.

우리나라에서 오징어는 동해안에, 주꾸미는 물이 얕은 서해안에 서식한다. 주꾸미의 학명은 Octopus ocellatus로 Octopus는 ‘발이 여덟’이란 뜻이고 ocellatus는 ‘눈(眼) 모양의 점(무늬)’란 의미이며, 軟體動物門, 頭足綱, 八腕目, 文魚科에 속한다.

눈과 눈 사이에 긴 사각형의 무늬가 있고 눈 아래 양쪽에 바퀴 모양의 금색 나는 동그란 무늬가 있고, 몸 빛깔은 변화가 많으나 대체로 자회색이다. 오징어나 주꾸미는 둘 다 머리에 발이 붙어있는 頭足類지만, 오징어나 甲오징어 무리는 팔이 열 개인 데 반해 문어와 낙지, 주꾸미들은 여덟 개다. 끼리끼리는 사촌인 셈이다.
“생물은 다 제 자리가 있고(萬物皆有位), 또 제 이름이 있다(萬物皆有名)”고 한다. 참 맞는 말이다. 만일에 ‘이름 없는 생물’이 있다면 횡재다. 잘 못하면 학계에 발표되지 않은 新種이기에 말이다.

그런데 앞의 글을 잘 읽어보면 헷갈리는 것이 하나 있다. 같은 것을 두 가지로 쓰고 있으니, 족과 완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오징어 다리’라고 부른다면 서양 사람들은 ‘오징어 팔’이라 쓰는 편이다. 이것 또한 문화의 차이일터. 암튼 주꾸미는 낙지보다 다리가 짧고 몸집이 아주 작아 ‘꼬마 낙지’라고 보면 된다. 대충 낙지와 비슷하나, 전체 길이가 70cm 정도 되는 낙지에 견줘 이것은 약 20cm로 작은 편이고, 다리가 겨우 몸통 길이의 약 2배 쯤 된다.

주꾸미는 수심이 옅은 연안에 서식하며 주로 밤에 활동한다. 산란기는 5∼6월이며, 죽은 고둥껍질이나 오목한 틈이 있는 곳에 오이씨 모양의 알을 낳으며, 알은 긴지름이 1cm 정도로 큰 편이다. 주꾸미는 그물로 잡거나 고둥의 빈껍데기를 이용한 전통적인 방식으로 잡는다. 빈 고둥껍데기 끝자락에 구멍을 뚫어서 길고 굵은 줄에 디룽디룽, 줄줄이 매달아서 바다에 내린다.

주꾸미는 이처럼 고둥껍데기로 유혹해 잡으니 그것이 주꾸미 잡는 낚시미늘인 셈이다. 끌어올린 껍데기에서 주꾸미를 갈고리로 끄집어내고는 다시 바다에 가라앉힌다. 주꾸미가 또 들어가도록 한 사나흘 바다에 내려놨다가 거둬 올린다. 주꾸미와 소라의 관계는 예사롭지 않은 거룩한 인연이다. 맞다, 우연이 아닌 필연의 만남. 주꾸미는 그렇게 잡는다. 머리싸움이라고나 할까. 여기서 말하는 ‘고둥’은 ‘피뿔고둥’이다. 서해안에 많이 나는 주먹만 한 피뿔고둥은 주꾸미가 몸을 숨기는 은신처일 뿐만 아니라 녀석들이 거기에다 알도 낳는다. 피뿔고둥은 입이 넓어 주꾸미가 들어앉기에 안성맞춤이다.  

피뿔고둥이 있어야 주꾸미가 산다. 주꾸미는 피뿔고둥의 제일 꼭대기 안쪽에서 시작해 아래 입구 쪽으로 죽 이어 알을 낳는다. 그 알을 55일간 어미가 지킨다! 새끼 보살피느라 勞心焦思, 애를 쓰고 속을 태운다. 빨판으로 알을 닦아주고, 물을 일부러 흘려 숨 쉴 산소를 흘려준다. 주꾸미도 애끓는 모성애가 있다. 새끼들이 제 살 곳으로 떠날 기미를 보이면 어미는 진이 다 빠져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저것들은 저렇게 멋진 한살이를 사는데….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다 간 자리도 아름답다!”는 말을 어디서 자주 만난다. 未久에 닥칠 죽음, 끝내 곱게 살다 아름답게 죽으리라.  

영리한 꾀보 주꾸미 놈의 기막힌 은신기술을 보자. 적이다! 고둥 곁에 노니다가 둥그스름하고 납작한 조개껍데기를 앙다물고 고둥 속으로 쑥 들어간다. 구사회생이다. 몸을 슬그머니 고둥 안에 집어넣고는 그 조가비로 고둥 아가리를 꽉 틀어막아버리는 주꾸미!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달려온 물고기는, 방금 봤던 주꾸미는 보이지 않고 입 뚜껑 꽉 닫은 피뿔고둥만이 덩그러니 버티고 있으니, 닭 쫓던 개가 되고 만다! 도대체 주꾸미 너는 어찌, 어디서 그런 妙術을 터득했니. 퍽이나 신통한 일이로고.  

근데 물고기는 물 없으면 죽지만 물고기가 없어도 물은 물이다. 주꾸미는 고둥 없이 못살지만 고둥은 주꾸미가 없어도 고둥껍데기일 뿐. 어째서 주꾸미는 알을 고둥 속에다 낳는 것일까. 제가 태어나서 제일 먼저 보고 숨 쉰 곳(것)이 그 고둥이었다. 어머니로 刻印된 고둥! 母川回歸요 歸巢本能이다. 주꾸미와 피뿔고둥의 만남, 그들의 성스러운 인연은 누가 맺어 준 것일까.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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