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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참을 수 없는 대학의 가벼움
[學而思] 참을 수 없는 대학의 가벼움
  • 김승석 울산대·경제학
  • 승인 2009.03.30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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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으니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강산만 변한 것이 아니라 세계도 변했고 한국사회도 변했으니 대학이 변화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변화의 속도와 내용이 사회만큼 빠르고 풍성하지는 않지만 대학 역시 지난 20년간 많이 변해온 것 같다. 대학 재정이 취약하다는 객관적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 휘말렸듯이 대학이 市場化되고 物神化가 되는 과정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1987년 6월 항쟁의 분위기 속에서 대학사회에서도 교수들의 자발적인 민주화 움직임이 시작됐다. 자율의 바람이 분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서 오늘의 CEO 총장이 등장하게 된다. CEO 총장들은 대학의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이름하에 마치 기업을 경영하듯 대학을 운영했다.

교직원과 졸업생, 그리고 재벌에게 발전기금을 모금하는 한편, 비용이 적게 드는 대형 강의와 인터넷 강의를 늘렸다. 많은 대학들이 졸업학점을 130학점으로 축소하기도 했다. 이러한 장사꾼 총장이 수도권에서 유행하니까 지방의 소규모 대학에서는 전직 고위 관료를 총장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이들의 인맥을 이용해 로비를 하고 그를 통해 대학의 발전을 꾀하려는 궁여지책이리라.

 

그러나 이들이 추구했던 대학발전은 건물신축과 같은 외형적 확대에 있었지 대학교육의 내실화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거의 모든 대학은 대학평가에 목을 매게 되는데, 거기에 영어 강좌 개설이란 요상한 항목이 있다. 전공을 영어로 강의해야 평가가 잘 나오니 너도 나도 모든 대학에서 영어 강좌를 늘리기 시작했다. 서울대도 예외는 아니어서 담당교수들은 학생들의 영어실력도 늘지 않고 전공에 대한 이해수준도 떨어진다고 불평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누구를 위한 강의인지 모를 영어 강좌는 늘어만 가고 있다. 올해 개교할 울산의 어느 대학은 모든 수업을 영어로만 진행할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선언하고 있다.

또 어느 대학에선 신임교수를 채용하는데 국문과 교수마저 영어로 강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교수충원을 못한다는 웃지 못할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정부가 대학 지원에 있어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하면서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의, 그리고 수도권 대학과 지역대학의 격차가 점차 심화되고 있다.

동시에 각 대학 역시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학부 간, 학과 간의 빈부격차를 심화시킨다. 수백억씩 투자하며 로스쿨 설립에 올인했던 대학들이 횡재(?)한 대학들과 쫄딱 망하기 직전의 대학으로 나뉘어지는 것은 대학이 이미 카지노화 돼가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횡재했다고 믿었던 대학들도 최근에 와서는 남는 게 없다는 불평이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노름의 속성이니까. 예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수도권 집중이 심화된 상태에서 전국 대학을 경쟁시키고 평가한 결과가 낳은 비극이다.
대학행정에서 입시는 가장 중요한 업무이고 따라서 공정하고 투명해야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금기의 영역이다.

입시 부정을 폭로했다고 20년간 해직된 교수들이 있는가 하면, 입시에 출제된수학문제의 답안에 오류가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 교수를 해임시켜 석궁사건의 주인공으로 만든 비정한 대학도 있었다.
최근에는 외국어 고등학교 출신의 수험생들에게 특혜를 준 대국민사기극(!)을 벌이고도 전형과정의 공개를 거부하는 파렴치한 대학도 나왔다.

이것은 이른바 ‘3불 정책’의 찬반과 관계이기 전에 공신력의 문제이다.
이런 수준의 대학들이 어떻게 기여입학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인가.

대학이 사회정의와 양심의 마지막 보루이어야 하고, 이것이 무너지면 사회적 신뢰가 끝없이 추락한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인 넋두리일까.
오늘날 우리 대학들에서 영어보다는 국어 읽기 쓰기 말하기가 더 강조돼야 하고, 다양한 외국어의 교육을 통해 더욱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국제화에 역행하는 국수주의적 신념일까.

인터넷 강의와 대형 강의를 기피하고 교육의 본질은 얼굴을 맞대어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비효율적인 궤변이기만 할까. 
개혁 개방이후 중국 인민들이 교육자들을 ‘안경을 쓴 뱀’이라고 부르게 된 연유를 한번쯤 곰곰이 살펴봐야 할 것이다.

요즈음 “가을 등불아래 책을 덮고 옛일을 생각하니,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구나(秋燈俺券懷千古 難作人間識字人)”라고 한탄했던 매천 황현 선생의 絶命詩를 실감하게 된다.

김승석 울산대·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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