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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라크戰에서 실패한 이유
미국이 이라크戰에서 실패한 이유
  • 이학수 해군사관학교·전사학
  • 승인 2009.02.23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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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패러다임』루퍼트스미스 지음┃황보영조 옮김│까치글방│2008│488쪽

저자는 40년을 군에서 복무했던 현역 장군 출신이다. 그는 다양한 경험과 연구를 통해 현대의 전쟁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그는 전쟁 패러다임이 산업 전쟁에서 민간 전쟁으로 변동됐으며, 전쟁의 목적도 바뀌었다고 본다.
국가 간의 전면전보다는 국지전이나 대테러전 등의 소식이 자주 들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우선 전쟁이 어떤 시공간의 제약도 없이, 국가/비국가의 구분을 떠나서 벌어짐을 의미한다. 아울러 단순히 군사적 무기의 우위만으로는 승리에 이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라크의 예가 보여주듯이,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우위는 물론이고, 언론 장악 등 기민한 대처가 없다면, 우위를 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현장의 군 지휘관은 물론이고, 정치인들에게도 인식될 필요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과연 현재의 군 수뇌부와 정치관료들이 이러한 전환을 체감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저자는 고백한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전쟁의 양상은 바뀌었다. 과거 행상에서는 군함들끼리, 창공에서는 항공기들끼리, 지상에서는 전차들끼리 전투를 했다. 해전에서 한 국가가 패하면 그것으로 전쟁은 끝나고 패자는 승자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던 것이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미국-이라크 전쟁, 코소보 전쟁 등에서는 전쟁의 양상이 현저하게 달라졌다.

이것이 현대전의 모습인가.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나. 그렇다면 앞으로 전쟁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새로운 틀이 필요했고, 몇 몇 전쟁사 전문가들이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루퍼트 스미스이며 그 외에도 막스 부트(전쟁이 만든 신세계)와 존 스토신저(전쟁의 탄생)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2001년 10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과 전쟁을 하면서 초기에 또 국지전에서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었다. 수백 대의 첨단 항공기와 300여명의 특수부대원과 100여명의 CIA 요원을 투입시켜 49일 만에 카불을 점령해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던 것이다. 소위 말하는 ‘항구적 자유작전’에서 미군 사망자 수는 겨우 12명이었다. 소련이 10년동안 10만 명의 병력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1만 5천 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채 아프가니스탄에서 퇴각한 것에 비하면 경이적인 성과였다고 자랑할 만했다. 하지만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지 약 7년이 지난 지금 미군 사망자수는 늘어만 갔고 엄청난 비용이 투입됐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국토의 4분 3을 탈레반 정권이 장악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전쟁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미군은 2003년 3월 20일에 공격을 개시해 3주 만에 바그다드에 도착해 이라크 군중들이 프리도스 광장에서 사담 후세인의 동상을 끌어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라크 자유작전’을 개시했을 때 미국은 다국적군 35만 명을 작전지역에 투입했다. 걸프 전쟁에 비해 소수의 병력을 동원하고서도 바그다드를 쉽게 함락시킬 수 있었던 것은 미군이 첨단 무기와 정밀 유도무기들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위성으로 유도되는 합동정밀직격폭탄(JDAM)은 이라크 기지 시설을 정확히 파괴했다. 또 미군 진영으로 은밀하게 접근하던 이라크 군은 열 영상 조준기를 사용하는 미군 전차와 장갑차량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미군 폭격기들은 걸프 전쟁 때 파괴돼 아직 복구가 되지 못한 이라크 대공망을 마음껏 유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군은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각종 무기를 동원해 엄청난 수의 이라크 군인들을 포로로 잡았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승리가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미군이 진정한 승리를 얻으려면 정치문화를 바꿔야 했고, 경제를 회복하고 질서를 바로 세워야 했다. 하지만 미군들은 이를 위한 훈령을 받지 않았고, 이를 위한 능력도 갖추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은 임무를 완수할 수 없었다. 사실 이라크에서처럼 점령상태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여건을 마련한다는 것은 군사적으로는 어렵다.

점령상태에서는 군사력이 전략적 주도권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일단 구체적인 목표물을 점령하거나 파괴하고 영토를 차지하고 나면 군인들의 임무는 다한 것으로 알고 있던 점령군인들이 어떻게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실시하고 경제를 복구하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미국의 정치인들과 군 지휘관들이 전쟁 패러다임이 변화한 것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런 해석은 동시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나아가 보스니아에서 전투에 승리했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하지 못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기도 한 것이다.

전쟁의 패러다임이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제공해주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첫째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을 절대적인 승리를 목적으로 한 국가간분쟁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우리에게 산업전쟁시기의 구식 전쟁 패러다임에 매몰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날의 전쟁은 차라리 분쟁이거나 아니면 ‘민간전쟁’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새로운 전쟁의 패러다임은 한 국가가 대치하고 있는 대상이 다른 국가 행위자이든 비국가 행위자이든 상관없이 대립과 분쟁이 교차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또 단순히 대결이나 전투를 통해 분쟁을 종식시킬 수도 없다고 본다.
저자는 새로운 ‘민간전쟁’의 특징들을 6개 정도로 정리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바로 이 저서의 핵심 내용이다. 우선 싸우는 목적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양차 세계대전만 해도 전쟁의 뚜렷한 전략 목표가 있었지만, 지금은 분쟁에 개입하는 것은 영토를 탈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외교와 경제적 동인, 정치적 압력, 기타 조치를 위한 개념적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부대와 부대가 싸우는 것도 아니고 전쟁터가 있는 것도 아니며, 주민들을 인질로 하거나 주민들의 지지를 받는 게릴라나 적들과 싸우게 된다. 분쟁을 야기하는 적대세력은 대부분 비국가이며 현대의 분쟁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서방국가들이나 친미 계열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무기들과 장비들은 대부분 산업전쟁 시대에 제조됐는데 소련군 격퇴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현재 분쟁을 야기하는 적들은 보다 가벼운 무기로 무장하거나 소련군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존재들이다. 걸프전에 투입됐던 첨단 전차와 항공기는 독일의 평원에 진입한 소련의 공격을 대비해 설계된 것이기 때문에 적절한 모래 필터가 아예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적을 격퇴하기에 맞게 적절히 그리고 끊임없이 무기들과 장비들은 개조하고 조직들도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두 번째 새로운 분쟁해결을 위해서는 군사적인 우위이외에도 다른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즉 테러공격이나 치고 빠지는 기습과 유사한 전쟁에서 궁극적으로 싸워 이기려면 외국 문화에 대한 인식, 외국 언어에 대한 지식, 정보 조작, 민간 분야에 대한 이해, 정보 수집 등을 위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산업전투에 맞게 편성된 구식 군대를 새로운 형태의 군대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단순한 교양 지식의 습득과 관련되기보다 일국의 군대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지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저자는 언론 매체의 기능에 대해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 매체는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현대의 분쟁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매체는 정치와 군대의 기존 권력 체계와 마찬가지로 분쟁이 민간전쟁임을 깨닫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여전히 산업전쟁의 개념에 사로잡혀 있다. 텔레비전 화면에 난민들의 비참한 모습들이 비치게 되자 이들을 위한 활동을 펼치라는 무언의 압력이 증가했다.  저자는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중간에 서서 유엔이 직면한 딜레마와 유엔 평화유지군이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한 것은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인데, 자신의 포함한 많은 군 고위 지휘관들과 정치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실토하고 있다. 

이학수 해군사관학교·전사학

필자는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비시신드롬』, 『대중독재』등의 저역서가 있고, 「프랑스 현대사」외에 군사 전략 관련 논문이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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