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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도 죄인도 바보도 되지 마라
성인도 죄인도 바보도 되지 마라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9.02.05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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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학자가 되기 위한 암묵적 지혜]④

‘대학원생, 박사후연구원, 신임교수들이 대학이라는 학문세계에 들어와서 성공적으로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하기 위해 알아야할 교훈 101가지’
최근 들어 대학간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 탓에 ‘연구’ 중심의 대학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가시적인 연구 성과에 매달리다 보니 연구·교육·봉사라는 교수의 책무에 균열 조짐마저 우려된다. 대학이라는 공간에 입문한 학자로서 연구와 교육의 접점을 찾는데 마땅한 지침서는 없을까.
로버트 스턴버그 예일대 교수(심리학)가 펴낸 신간『스턴버그가 들려주는 성공하는 학자가 되기 위한 암묵적 지혜』(신종호 역, 학지사, 2009)는 심리학 분야 27년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미국 대학의 분위기와 환경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만 학자의 자기개선 방법면에서는 주목할 만하다.
<교수신문>은 스턴버그 교수가 추천하는 ‘101가지 교훈’ 가운데 20가지를 선정, 발췌·요약해 2월2일부터 매일 연재한다. / 편집자 주


#1. 대학원생, 학부생들로부터 도움이나 조언을 요청하는 편지를 종종 받는다. 편지의 대부분은 제출이 촉박한 수업 과제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고, 빠른 답장을 원한다고 써 있다.

#2. 부모들이 자신 혹은 자녀들의 개인적인 문제로 도움을 요청한다. 당신은 심리상담 전문가 관련 자격증이 없지만 이메일이나 전화로 아주 자세하게 대답해 주었다.

당신은 위와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 경우에 따라 어떤 결과를 경험했는가? 스턴버그 교수는 “누군가에게 ‘성인(saint)’으로 남고 싶은 마음부터 고쳐 먹으라”고 충고한다.

먼저 장면 1의 상황이다. 연구 분야에 관한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하는 일은 해당 전공의 교육자 혹은 연구자로서 기본적인 역할과 책무이기도 하다. 다만 서로 난처한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스턴버그 교수의 말을 빌리면, 성인과 바보의 범주를 일찍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주로 5~10개 정도의 질문으로 구성되는 과제 관련 요청 메일은 많은 경우 교수자가 쓴 여러 출판물 가운데 하나만 읽어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도서관에서 해당 논문을 찾아 읽지 않고 논문의 저자에게서 답변을 듣겠다는 것은 피교육자의 ‘나쁜 버릇’이다. 이 때문에 스턴버그 교수는 관련 논문 한두 건을 추천해 주는 약식의 답장을 보낸다. 하지만 스턴버그 교수는 “답장을 받은 사람들은 추천 논문을 읽기는커녕 조금 더 상세하고 많은 분량의 답장을 써 줄 다른 전문가를 찾아서 메일을 다시 보낼 것”이라고 말한다.

“과제를 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과제를 해 주는 것은 나의 책임도, 당신의 책임도 아니다. 물론 내가 그들을 돕는다고 해서 진정 ‘성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긴 분량의 답장들이야말로 자기 자신을 ‘성인’의 범주보다는 ‘바보’의 범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두 번째 사례의 경우, 스턴버그 교수는 대략적인 대답을 하면서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제안한다. 유관 자격증이 없는 상태로 전문 분야의 조언을 하면 윤리적·법적까지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질문을 통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들여다봐야 한다. 만약 질문자가 전문적인 상담을 필요로 한다면, 비전문가로서 전문가의 영역을 넘나드는 찔러 보기식 상담은 위험천만[危險千萬]이다.

이메일을 통한 질문과 답변 시 쌍방 소통이 어긋날 때가 종종 있다. 말하자면 끝없는 편지교환의 굴레에 빠져 들 수 있다. 답변자는 이러한 이메일이 한 번 정도 오가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상대방은 연속적인 이메일 교환으로 이해한다. 답변자의 호의(?)가 질문자에게 때때로 암묵적 합의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턴버그 교수는 “성인처럼 보이는 것과 실제 성인은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

스턴버그 교수가 강조하는 성인과 바보의 경계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도무지 ‘도움 요청’을 언제 그만둬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을 만나거나 사연이 너무 애처로워서 도움을 뿌리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손을 떼라!”

스턴버그 교수는 단호하다. 자신이 어떤 사람들에게 ‘도움의 공급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면, 자신의 일과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일, 둘 다에 투자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내피와 외피가 동일하다고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컨대 스턴버그 교수는 예일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고용됐지만, 예일대는 스턴버그 교수에 대한 평가를 명목상 고용내용(강의)을 위주로 평가하지 않는다. 연구중심 대학답게(?) 주 평가 항목은 연구 실적이다. 외피는 강의를 중시하지만 내피는 연구를 중시하고 있다.

“무엇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실제 암묵지(진짜 가치 있는 것)인가 알고 싶다면,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지 말고, 진정으로 그들이 보상받고 있는 것을 찾도록 노력해라. 그리고 지금의 보상 체계가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봐라. 그렇지 않다면 또 다른 환경을 찾는 데 경주[傾注]해라. 이를 통해 당신은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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