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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왜 교육문제에 침묵하는가
[문화비평] 왜 교육문제에 침묵하는가
  • 조환규 부산대·컴퓨터공학
  • 승인 2008.12.31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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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을 받았다. 내가 받은 월급은 나의 어떤 노동에 대한 대가일까 생각해본다.
내가 쓴 어쭙잖은 논문이나 책이 잘 팔려서 소속 대학, 또는 국가에 이득을 가져다 준 것에 대한 보답은 아닐 것이다. 필자가 받는 월급의 대부분은 학생들을 가르친 것에 대한 대가일 것이다.

교수들의 대화에서 교육에 대한 고민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가장 흔히 듣게 되는 고민이라면 연구과제의 당첨여부, 학내의 복잡한 정치상황, 잡다한 업무에 대한 불만이 대부분이다. 그도 그러할 것이 교수의 가장 큰 책무인 강의에 대한 평가와 보상은 매우 미미하다. 일반적인 교수평가지표 중에서도 화려한 논문이나, 대형 과제를 ‘따’오는 능력이 가장 중요시된다. 지금의 평가체제가 유지된다면 대학교육, 특히 학부교육은 절대 국제적 수준에 올라갈 수 없을 것이고 이는 필연적으로 전체 대학의 수준 저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 대학에서의 교육문제는 교수임용에서 잘 드러난다. 아직도 외국학위 교수는 국내 학위자보다 임용에서 월등하게 유리하다. 그들의 실력이 우수하지 않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화려한 유학파 교수들이 한국에 들어온지도 30년이 넘었건만 왜 그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는가 하는 것이다. 교수들은 자신들이 직접 가르친 학생의 능력을 믿지 아니하고, 또한 학생들 역시 자신을 가르친 대학에 남아 공부하기를 꺼려한다.

학생들은 한국의 대학에서 별로 감동받을 것이 없다는 것이고, 다르게 말하면 이것은 우리 교수들이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한 증거이기도 한다.
우수한 교수, 우수한 학생 뽑기에 모두 혈안이 돼 있지만 그 효과가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는 항상 의문스럽다. 이미 나타났어야 할 시점이 지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제는 WCU인가, 쩝… 본질을 외면한 이 같은 포장지 바꾸기 초식의 끝은 뻔하다. 지금의 대학에는 안과 밖이 따로 돌아가는 탈구현상만이 가득하고, 교수들은 심각한 인지부조화의 상태에 빠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제 자식만은 어떡하든지 유학 보내고 싶은 심정과 같이.

작금의 교육체제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집중하고 그들의 교육에 고민하도록 결코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 대표적인 방해꾼은 형식주의와 관료주의다. 예를 들어 많은 대학이 참여한 BK21사업의 질문/답변란이 그 이유를 쉽게 알려준다. 연구사업이 얼마나 복잡하기에 5천개의 질문이 올라와 있올까. BK21에서 실시하는 추상같은 평가체제, 예를 들어 사소한 오기재에 따른 감점은 사업단의 생존을 좌우할 만큼 치명적이기 때문에, 먼지만한 의문이 생겨도 일단 질문답변란에 올리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시원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확실한 면피의 증거자료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한 때 한국축구에는 창의력이 없다고 했는데, 필자가 오래전에 목도한 고등학교 축구부의 연습과정은 이를 잘 입증해준다. 연습게임도중 코치의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은 선수는 코치가 날리는 싸대기를 선물로 받는다. 선수 머릿속에는 시합의 승패보다도 감독 코치의 지시를 얼마나 기계적으로 따를 것인가만 있는 것이다. 같은 원리는 지금의 교육에도 그대로 작동된다. 교육당국은 지시한 정책에는 토를 달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떨까.

약 10여 년 전 밑도 끝도 없는 몰아쳐 온 학부제의 광풍을 생각해보자. 그 학부제로 뭐가 좋아졌는지 교육 당국자의 자랑을 들어 보고 싶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더니 지금은 그 ‘학부제’의 자리에 ‘공학인증’이 버티고 있다.
리스트가 러시아 황제의 초청으로 연주회를 하게 됐다. 연주 중 황제는 옆 공작부인에게 귓속말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리스트는 연주를 중지하고 피아노 뚜껑을 조용히 닫으며  걸어 나왔다. “지엄한 짜르께서 말씀을 하시는 동안 음악의 신은 침묵을 지킵니다”.

교육당국은 현장의 침묵에 안도하지 말고, 침묵의 현장을 심각하게 봐야 할 것이다. 이의를 제기하면 보복하고, 단체기합을 주고, 심지어 등 뒤에서 창을 던지는 용렬한 방식으로는 어떤 사소한 교육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음을 지난 역사가 잘 증명한다.
새해에는 역사교과서, 기여입학제, 일제고사, 대학법인화 등으로 교육계의 3차대전이 본격화 될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모두 입을 닫고 있는 이 조용한 겨울이 더욱 무섭고 불안하게 다가온다.

조환규 부산대·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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