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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禁止’ 조치에도 왕조 정통성을 위협하는 책들 쏟아져
[북리뷰] ‘禁止’ 조치에도 왕조 정통성을 위협하는 책들 쏟아져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8.12.31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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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출판주식회사』이재정 지음│안티쿠스│2008│330쪽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주영하 외 지음│휴머니스트│2008│240쪽

권력의 등쌀을 누가 당해내랴.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수정하겠노라는 정부의 입김이 마침내 먹혀드는 판국이다. 교과서 집필진과 학계의 반발은 거세지만, 실제로 책을 찍어내는 출판사들은 목줄이 달린 문제이니 어쩔 수 없이 교과서를 수정하겠노라고 정부에 약조를 한 상태다. 정부는 합법의 테두리에서 나름대로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자임할지 모르나, 세간의 시선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백번 양보해서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치자.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상기할 점은, 책에 대한 권력의 입김과 간섭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멀리는 진나라의 분서갱유에서 가까이는 국방부의 불온도서 지정파문 등, 책은 늘 권력이 장악을 못해 안달해하는 매체였다. 왜일까. 다들 알겠지만, 책은 사람의 정신에 관여하는 핵심 매체이기 때문이다.
말이야 한 번 내뱉으면 사라지는 것이지만, 활자로 떡 하니 인쇄가 된 책의 위력이란 엄청난 것이다.그렇다면 과거 조선시대에 정치권력은  책에 대해어떤 식으로 간섭과 통제를 행사하고자 했을까. 최근 책과 권력의 관계를 역사적이고 실증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책들이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조선출판주식회사』 는 책 제목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조선은 왜 인력과 물력을 동원하여 출판을 독점했을까?’라는 부제의 이 책에서 저자는 조선의 통치 체제에서 책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우선 “태종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독서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조선을 통치하기 위한 기본 방침으로 문치주의를 택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라고 정리한다. 무력과 형벌을 대신해 문자로 정치를 한다는 발상이 일단은 그럴싸해 보인다. 그런데 조선은 바로 이 문치주의 이념 실현의 수단으로 책에 주목을 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그래서 국왕이 몸소 책 편찬을 주관하고, 교정을 보며, 王朝가 몸소 책의 보관과 관리, 발행 방식 심지어 보급과 유통에까지 철저하게 관여했다는 것이다. 이는 족보 위조 사건을 계기로 급기야 개인의 활자 주조 금지 조치까지 이어진다.

“활자를 주조하여 책을 인쇄하는 일은 국가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며, 민간에서 함부로 사사로이 출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물론 국가의 이런 억압은 온전히 관철되진 못했다.

저자가 ‘이단의 책을 불사르다’라는 장에서 묘사하듯끊임없이 왕조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책들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저자는, 조선 후기에 서학서가 유행했고, 이에 대한 가혹한 금지 조치가 잇따랐지만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천주교를 믿는 세력은 점점 늘어나 중인과 하층민에까지 확산”됐다고 말한다.
우리 시대에 견준다면, 국방부의 불온도서나 법원의 음란도서들이 꽤나 가혹한(?)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계속 수요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 역시 지식의 담지체이자 일종의 권력이었던 책을 조선이라는 시대를 통해 조망하고 있다. ‘삼강행실도를 통한 지식의 전파와 관습의 형성’이라는 부제가 말하듯이 이 책은 삼강행실도를 중심으로 조선의 출판 정책을 파헤친다. 삼강행실도는 부모와 자식, 임금과 신하, 부부 사이의 도리를 규정한 대표적인 이데올로기적 저작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저자들은 삼강행실도의 내용이 아니라, 누가 그 책을 어떤 목적에서 제작, 배포, 전달하고, 어떤 효과가 있었으며, 결국 어떤 지식과 관습의 형성에 기여했는지를 면밀히 고찰하고 있다. 삼강행실도는 부친 살해의 사건을 보고 국가 질서 확립을 고민하던 세종이 편찬했다.

세종은 특히 책의 가독성을 염려해 판화를 통해 그림을 활용하려 했고, 지방의 儒士들을 활용해 강습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성종은 언해본과 축약본을 만들어 더욱 독자들의 부담을 덜고자 애를 썼고, 중종 때는 풍속의 불미스러움을 이유로 2천 940질이라는 지금의 기준으로도 적지 않은 물량이 배포됐다. 가히 백성의 정신과 행동거지를 염려한 국왕의 마음씀씀이가 지극정성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조선의 백성들은 국왕의 이런 염려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흥미로운 대목이 엿보인다. 국왕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대부분이 문맹인 백성들은 삼강행실도와 같은 책을 볼만큼 똑똑하지 못했다.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 저자 중의 한 명인 윤진영 박사는 삼강행실도의 “보급 단계에서는 처음 의도대로 백성들에게까지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주된 독자는 식자층이었다”고 지적한다. 아무리 그림이 곁들여 있더라도, 방대한 양에다가 한자로 써졌으니 가독성이 높을 리가 없다. 더구나 일반 백성의 경우에는 책을 읽을 만한 여유가 충분하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차츰 몇 가지 방안이 시도됐는데, △삼강행실도의 반포와 함께 백성들에게 교육을 병행하는 것 △언행본의 출판 △분량의 축소 등이다.

이러한 “삼강행실도의 간행과 개찬은 백성을 위한 의도에서 실행되었지만 실제로 그 명분은 실현되지 못했다.” “결국 삼강행실도는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계층에게만 보급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렇게 조선 백성의 지독한 문맹 때문에 삼강행실도를 비롯해 책의 보급이 의도대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또 삼강에 나타난 지나치게 가혹하고 엄격한 도덕도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거부감을 불러 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곧 “삼강의 도리를 지키는 삶이 인간적 도의의 차원이 아니라 자학의 경지에서 강요되었다는 점은 교화서가 유통되고 그 이념이 확산될수록 암암리에 비판됐던 것 같다”는 것이다.

여기서 판소리 문학에 주목할 수 있다. 저자의 한 사람인 이정원 박사는 “판소리 문학이 조선 후기 발랄한 민중의식의 소산인 점을 고려하면, 봉건적 생활윤리를 강제하는 교화서에 대한 서민층의 입장이 서사화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지적한다. 곧 “『삼강행실도』를 필두로 한 교화서들이 제시하는 지식과 관습은 한편으로는 윤리도덕이라는 공준의 외피를 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학의 과정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모방과 배척의 긴장관계 속에서 판소리 문학에 수용됐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근거로 춘향전을 비롯해 많은 작품들의 경우, 그 버전이 다양했다는 점을 든다. 

이 두 권의 책은 ‘책’매체와 조선이라는 국가 권력 그리고 백성의 수용 양상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책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도를 지나친 것 같은 요즘, 일독할 가치가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사료에 대한 충실성과 객관적 서술이 강조돼, 좀 더 생생하게 책을 둘러싼 긴장 관계를 묘사하지 못한 대목이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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