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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국민의 정부 ‘교체된 장관’과 ‘뒤바뀐 정책’
[해설] 국민의 정부 ‘교체된 장관’과 ‘뒤바뀐 정책’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2.02.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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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20 18:01:16
“장관에 따라 시각이 다를 수 있는데 집행과정에서 어떻게 변할지 걱정이다.” 이는 지난 1999년 5월, 김대중 정부 들어 처음으로 교육부 장관이 교체될 당시 한 교육부 관료의 걱정이었다. 그러나 채 3년도 지나지 않아 그 뒤로도 교육부 장관은 6번이 교체됐고, 결론적으로 이해찬 장관은 국민의 정부에서 최장수한(1년2개월) 교육부 수장으로 기록됐다.

이해찬 - 김덕중 - 문용린 - 송자 - 이돈희 - 한완상 - 이상주(사진 왼쪽부터) 평균 재임기간 8개월. “교육부 장관만큼은 자주 바꾸지 않겠다”며 ‘교육대통령’을 강조했던 김대중정부는 반대로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가장 많은 교체 기록은 세웠다. 물론 장관이 7번 바뀌었다고 해서 7인 7색의 교육정책이 도입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말의 ‘개혁안’들은 업무파악에 급급한 장관들의 손때를 타면서 껍데기만 남게 되고 그 결과 교육현장을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교육계의 우려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해찬 장관이 마련한 ‘교육발전 5개년 계획’. “2003년까지 5년 동안 113조원을 투자해 교육체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겠다”고 공언한 교육부는 ‘계획안’을 교육개혁의 ‘교과서’로 삼아 ‘일관성’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장관이 바뀌면서 현재 이 계획안은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후임장관의 성향에 따라 지속적으로 채택된 사안도 있으나 내용은 빠지고 형식만 취하다 보니 교육계의 반발만을 부추겼다.

내용은 ‘쏙’ 빠지고 껍데기만 남아

당시 교육부는 대학에 대해 △국립대 민영화 △정원 자율화 △교수계약임용제 △국·공립대 실험실습기자재 100% 확충 △대학이사회를 구성 국립대 예·결산권 이양 △ 평교수가 참여하는 교무위원회 △사립대 공익이사제 등을 실시하겠다고 계획했다. 계획안대로라면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하고 교수들에게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대신, 재정지원으로 경쟁기반을 조성하고, 자체적인 자정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현재 국립대 민영화와 교수계약제만이 ‘국립대학 발전계획’과 ‘교육공무원법 개정’으로 시행됐을 뿐, 정작 필요한 재정지원과 ‘평교수 참여 교무위원회’, ‘공익이사’ 등의 자정장치는 오간 데 없다.

교수들의 극심한 반발속에 시행된 ‘두뇌한국(BK)21 사업’은 장관이 바뀌면서 ‘실책’으로 귀결된 대표적 사례다.

김덕중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BK21사업 추진계획을 중단시키고 재검토를 지시했다. 당시 재검토 이유는 대학의 의견을 수렴하라는 것이었지만 김 장관 퇴임이후 감사에서 밝혀진 결과는 ‘우리식구 챙기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했다. 자신이 재직했던 대학의 관계자를 심사위원에 포함시키고, 선정위원들에 의해 결정된 심사 결과를 장관이 재검토시켜, 재직했던 대학이 선정되도록 했다. 그 결과 교육부 직원 4명이 인사조치를 받았지만, 애초부터 급작스럽게 추진된 BK21사업이 가져온 부작용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곳은 없다. 결국 이후 취임한 이돈희 장관은 BK21사업의 기본이 된 ‘연구중심대학·교육중심대학의 분리’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 했다.

하루만에 뒤바뀐 백년대계

수장이 자주 교체되다 보니 장관의 관심사에 따라 교육정책이 오락가락 하는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문용린 장관은 교육정책의 문제점을 정부의 통제로부터 찾았다. 문 장관은 “수도권 소재 대학의 정원을 자율에 맞기는 등 대학의 자율권을 100%보장할 것”이라며 ‘자율화’를 최대 과제로 잡았다. 취임이후 교육부 각 부서들에 자율화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하는 등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문 장관이 반년만에 물러난 이후 이 자율화 계획서 역시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문 장관이 자율화와 함께 초·중등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최근에 물러난 한완상 부총리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이 대학 서열화에 있다고 진단하고 학벌타파에 목소리를 높였다. 학벌 타파를 위해 각계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장기적인 정책마련에 나서는가 하면, 각종 토론회, 인터뷰를 통해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한 부총리가 물러나고 이상주 부총리가 취임하자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국회 교육위원장실에서는 “교육부총리, 교육부차관, 국회교육위원장 등 행정부 입법부의 교육라인을 서울대 교육학과 선후배 동문들이 모두 장악해 교육계의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했다”며 ‘서울사대 교육학과 건국이래 최대 경사’라며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이규택(한나라당) 위원장실의 이 보도자료는 한 부총리가 1년 동안 쌓은 노력을 교체 하루만에 구겨놓았다.

지난달 취임한 이상주 신임 교육부총리는 “개혁과제를 새로 내놓기보다 이미 나와 있는 것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장관의 성향에 따라 누더기가 된 교육정책들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두고 볼 일이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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