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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도쿄대의 교양강좌 부교재를 다시 읽으며
10년 전 도쿄대의 교양강좌 부교재를 다시 읽으며
  • 이봉재 서평위원/서울산업대·과학철학
  • 승인 2008.12.1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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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책에 대해서 조금 진지한 사람, 책으로부터 뭔가를 배우게 되는 순간을 고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가장 잊지 못할 시간 중 하나는 오래된 좋은 책이지만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제대로 읽히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이다.

『지의 윤리』는 내게 그런 책 중의 하나다.  『지의 윤리』(고바야시 야스오·후나비키 다케오 엮음, 도서출판 경당, 1997)는 1994~1996년까지 3년간 일본 도쿄대 교수들이 문과 신입생 필수강좌의 부교재로 개발한 책으로서, 1권 『지의 기법』, 2권 『지의 논리』에 이어지는 세 번째 책이다. 국내에서는 1997년 세 권이 동시에 번역 소개됐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특별히 주목받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주목할 내용이 없다면야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무 문제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는 절대 그렇지 않으니 우리가 함께 이야기해볼 만한 꺼리가 된다.

책의 기획 의도는 명료하다. 대학의 신입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에 대한 관점 교정이라는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지식을 교과서에 정리돼 ‘누워’있는 어떤 것으로 배웠다면, 대학에서는 그러한 지식을 생산하고 개선해가는 활동의 관점 즉 ‘행위로서의 지식’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유념해야할 것은 그런 것으로서의 지식이란 윤리의 차원과 절대 무관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왜냐. 만약 지식을 완성돼 있는 정적 실체로서가 아니라 모르던 것을 알아가는 행위로 받아들인다면, 그때의 지식은 필연적으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무엇, 알려지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아직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이른바 ‘他者’를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타자에 대한 우리의 자세, 그것이야말로 윤리적인 문제의 전형이며, 따라서 행위로서의 지식에 대한 해설은 『지의 기법』, 『지의 논리』에서 멈추지 못하고 『지의 윤리』에 이르게 된다.
『지의 윤리』에서 윤리의 문제는 ‘언어’의 문제이자 ‘각성’의 문제가 된다. 지식이란 간단히 말해서 ‘보편성의 언어게임’이다. 대상들, 사물들의 개별성이 사상되며 대신 보편적 속성들로 재해석되고, 그들 간의 관계가 법칙으로 정립되는 특별한 언어게임이다.

보편성의 언어게임을 구축함으로써 지식은 특정한 시공간, 개별자에 국한되지 않는 유용한 통찰을 제공해준다. 문제는 이러한 언어게임이 그 게임 밖의 ‘특수한’ 존재에 대해 위압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지식의 관점에서 지식의 언어게임 밖에 있는 존재는 말하자면 언어가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들은 언어가 없기 때문에 지식에 대해 항변할 수가 없다.

이를 선명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의학 분야다. 많은 환자들이 의사를 두려워하고 경외하지만, 그리해 의사에게 자신의 진짜 소망을 말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 억압된 존재들에게 언어를 빌려주는 것,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지의 윤리』가 강조하는 윤리적 자세다. 귀 기울이기 위해서는 먼저 놀라야 한다. 놀라고 주목해야 한다.

각성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보편성의 게임 가장자리에 서있는 희미한 개별자들을 세심히 주목하지 않고서는, 지식의 보편적 주장이 그들에게 갑작스런 고통일수도 있다는 놀라운 체험 없이는 윤리를 향해 한걸음도 전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윤리학보다 지식사회학이 더욱 효과적인 윤리적 수단이다. 지식의 어떤 보편성이 사실상 어떤 지적 편협성의 위장일 수 있음을 밝혀주는 것이 지식사회학이기 때문이다. 돌발적인 미적 충격 또한 윤리적 의미를 갖게 된다.

모든 이들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대상으로부터 추함을 감지하는 것, 모두들 참혹하다고 말하는 장면 앞에서 갑자기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종의 ‘아둔함’ 역시 윤리적 각성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시점, 대학교육개혁은 우리나라의 국가적 과제다.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추진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강의실 고급화하기, 국제학술지에 논문 싣기, 저명 외국학자 초청하기, 교수 상대평가하기, 학생들 외국 보내기, 학생들에게 영어 가르치기 등이 그런 것들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필요한데, 그 와중에 정작 근본적인 물음들은 더욱 모호해지는 느낌이다.

이런 것들을 일사분란하게 추진해야만 하는 그 대학이란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가. 지금 시점, 우리대학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대학다운 것, 지적인 것, 그리고 윤리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섬세하게 탐색하는, 도쿄대의 10년 전 교양강좌 부교재를 다시 보면서 우리가 이런 주제들을 이 정도의 깊이로 다뤘던 적이 있는지 생각해본다.

이봉재 서평위원/서울산업대·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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