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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된’ 지식인의 우울한 肖像 … 논문 量보다 質평가할 시점
‘고용된’ 지식인의 우울한 肖像 … 논문 量보다 質평가할 시점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8.11.17 14: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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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호 기념 특별 좌담 : 대학과 지성의 위기, 무엇부터 해야 하나

교수신문은 창간 16주년을 맞이한 올해, 지령 500호에 이르렀다. 대학과 교수사회가 처해 있는 현실적 상황은 어떤지, 위기의 징후는 무엇인지를 살펴봤다. 환경을 탓하기보다 이런 환경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교수사회의 문제는 무엇인지를 화두로 삼았다. 지성의 위기가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는 지금, 이런 문제가 왜 나타났고 결론적으로 교수사회는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교수들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반성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좌담 참석자들은 대학이 시장 논리와 경제 논리에 깊이 치우쳐 있고 이것이 교육의 질을 고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학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데 동의했다. 지식인들이 참여 지식인의 역할에서 ‘근로자’가 되는 양상이라든지, 학생들도 공적인 관심보다 사적 이익에 몰두해 취업에만 신경 쓰는 대학의 현상을 다시 확인했다. 교수들이 자기 삶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통해 성찰이 필요하고 복잡다단한 삶의 조건을 이해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과 대학운영 방식, 더 나아가 새로운 사회운영 방식은 무엇인지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일시 ·장소 : 2008년 11월 12일 / 여의도 렉싱턴호텔
●참석자 : 김혜숙 이화여대 교수(철학), 임호일 동국대 명예교수    (독어독문학), 현택수 고려대 교수(사회학)
●사회 : 최영진 교수신문 주간(중앙대 정치학)
●진행·정리 :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최영진(이하 최) : 교수신문이 지령 500호를 맞은 지금, 교수사회는 이전보다 여러 가지로 풍요롭고 여건도 좋아졌지만 ‘삶의 질’은 우려스럽다. 아주 엄격히 강화되고 있는 근무조건이나 대학을 휩쓸고 있는 상업화, 자본에 대한 대학의 종속화가 그 예다. 나아가 지성계의 과도한 제도화로 인해 비판력을 상실하고 지성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일도 많다. 우선 교수사회의 모습부터 개괄적으로 살펴보자.

김혜숙(이하 김) : 우리나라 대학이 당면한 문제 중 특히 전지구화의 상황과 연결된 ‘시장의 힘’이라는 문제,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되는 이런 상황 하에서 대학들도 결국은 시장의 논리와 경제적 힘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다. 오늘날 대학이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형태로 가는 측면이 강화되고 대학과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의 사이가 산학협동과 같은 것을 통해 굉장히 긴밀해지고 있기 때문에 대학이라는 제도가 과연 이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 우리는 변화된 새로운 대학의 모습에 저항을 해야 할 것인지, 그 방향에 편승해 재빨리 타고 더 가야 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인 것 같다.

임호일(이하 임) : 지난 90년대 후반부터 시행된 학부제는 유사학과 통폐합을 통해 중복된 전공의 낭비를 해소하고 학생들의 선택권을 넓힌다는 명분을 내세워 거의 반강압적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교육과 연구의 질 제고와는 전혀 상반된 결과로 나타났다. 오히려 비인기학과를 축소하거나 퇴출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장의 논리가 대학교육을 지배함으로써 대학교육의 본령이 흔들리고 있다.

현택수(이하 현) : 또 한 가지 ‘세계화’ 영향도 들 수 있다. 자본 시장에만 국한됐던 세계화 현상이 문화와 대학의 영역에까지 침투했다. 특히 ‘비판적 이성’의 약화가 두드러졌다. 과거 지식인의 위상은 ‘참여 지식인’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판적 이성을 바탕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요즘은 ‘고용된’ 지식인의 역할이 부각되는 것 같다. 대학의 주된 주체인 교수와 학생이 비판적 이성, 새로운 지식의 창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심지어 교수가 대학의 상업적인 수익사업에 뛰어들게 되고, 학생 취업률을 높이게끔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학생은 취업준비생이 되고 있다. 

임 : 교수평가 항목 중에는 졸업생을 얼마나 취업시켰느냐를 포함시킨 대학도 있다. 지방의 어떤 대학은 학과장이나 지도교수에게 할당한 취업률에 못 미치면 사표도 내야 한다.

최 : 시장논리 자체를 일면적으로 무시하거나 비판할 성질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영역에서는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고 거부할 것은 거부해야 한다. 대학의 현실은 너무 많은 학과와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김 : 대학이 과도하게 팽창한 이유 중에 하나는 대학 자체의 이기주의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장기적 관점은 소홀히 한 채 단기 시스템에만 매달려 있다. 대학의 시스템을 분화시켜 단기적 대응과 함께 단기적으로는 성취할 수 없는 학문은 장기적인 관점으로 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장기적인 대비마저도 시장논리에 적용시키는 것이 문제다.

최 : 지금 대학의 구조에서 잘하는 학과나 영역은 키워 나가고 좀 못하는 학과는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데 과연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어떤 방법이 있을까.

김 : 우선은 대학 내에 합리적인 의사결정구조가 마련돼 있지 않다. 어떤 문제가 생겨 갈등이 일어나면 모든 대안을 모색한 뒤 가장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찾고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이런 방식에 익숙하지 않다. 어떤 학과를 포기한다고 했을 때 그냥 학생들이 모이지 않는 과를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장기적인 수요와 졸업생의 진출분야, 박사과정의 경우에는 교수로 진출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원래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검토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놓고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런 게 잘 안 된다.

임 : 학과 정리가 필요하지만 정리 기준이 인기학과냐 비인기학과냐는 이분법으로 구분 짓는 게 문제다. 정원을 줄이더라도 거시적인 안목에서 추진해야 한다. 시대 유행에 따라 학과를 없앨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지금 인기학과에 속해 있는 ‘중어중문학과’도 예전엔 비인기학과였다.

: 자정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학과이기주의와 대학이기주의에 따라 대학자체의 정원 조정이 안 되고, 사회의 요구에 적절히 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사실 이 사회가 지금처럼 많은 기초학문 전공자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수이기주의와 학과이기주의를 버리고 지식인으로서의 양심도 필요하다. 어떤 기초학문은 교양학부에 남아서 교양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결단도 있어야 한다. 이런 각오와 자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 교육정책의 부재다. 청년실업과 같이 구조적인 문제까지도 대학과 교수, 학생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잘못이다. 대학과 교수의 이기주의만 탓할 게 아니라는 얘기다.

최 : 역시 현재 대학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나 논리는 경쟁 논리가 아닌가 싶다. 경쟁논리를 교수사회와 대학사회에 도입했을 때 어떤 문제가 있을지, 대학의 발전상과 부합할 수 있을지,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대학인 양성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도 논의해 보자.

임 : 경쟁을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 어떤 식으로 경쟁을 유발시키느냐가 근본적인 문제다. 지금 대학의 경쟁은 한 대학 내에서 다른 학과 간에 경쟁하라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이라면 다른 대학 간에 동일한 학과끼리 경쟁이어야 한다.

현 : 대학에서 너무 경쟁만 부추기니까 중복게재다, 표절이다 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난다. ‘돈’ 준다고 하니까 물량주의와 한탕주의가 자주 나타난다. 역시 교수사회에서의 경쟁논리는 전쟁에서의 승자, 패자를 나누는 약육강식의 논리와는 구분해야 한다.

김 : 아주 천박한 논리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도입되고 있는 연봉제는 교수를 몇 등급으로 평가해 하위 등급을 받은 교수들의 돈을 최고 등급 교수에게 주는 방식이다. 경쟁을 유발하는 방식이 너무 조야한 방법을 쓴다. 옆에 있는 사람 것을 뺏어서 주는 것, 그것도 눈에 보이게 말이다. 이렇게 하면 경쟁을 유발해 더 잘 하려고 하는 목적 자체의 성취를 저해하니까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뭐 하는 지도 모르고 경쟁을 하는 거다. 왜 싸우는 줄도 모르고 싸우라고 하니까 싸우는 식이다. 논문만 쓰라고 하니까 논문만 쓰는 거고.

최 : 대학운영자들이 인센티브제도를 시행해도 별 소용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주요 대학 일부에서 ‘누적 연봉제’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누적 연봉제는 전년도 급여를 기본급으로 해서 인상률이 달라지는 거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는 방식이다. 인상률은 전년도 업적으로 나누고 기준도 전년도의 급여로 한다. 이런 방식이 되면 50대 후반에 연구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임금이 동결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임 : 연구업적평가는 연구논문을 통해서 평가를 받게 되는데 각 전공에 따라서 논문을 비교적 많이 쓸 수 있는 전공이 있고, 많이 쓸 수 없는 전공이 있다. 전공 간 특성이 다른데 그걸 일괄적으로 전공 특성 구분 없이 1년에 몇 편 이상 요구하는 것이 문제다. 

현 : 업적을 평가해 개인 연봉을 올려주기 보다 학과차원에서 인센티브가 제공돼야 학과간 단합에도 긍정적이어서 공동체 의식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

최 : 아울러 근본적인 문제 중의 하나는 논문의 양과 질의 문제에 있어서 양을 강조하시는 분들은 논문을 많이 쓰다 보면, 좋은 논문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 하고, 반대하시는 분들은 양을 강조하면 ‘쪼개기’ 논문을 양산해 논문을 양적으로 확대시키는 것은 학문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우려한다.

김 : 논문을 하나도 안 쓰면서 논문의 질을 강조하는 분도 있고, 양적으로도 한 달에 한 번씩 논문을 쓰면서도 매년 책을 내는 교수들도 있다. 대체로 이 양 극단 사이에 교수들이 처해 있는 것 같다. 간혹 비양심적인 교수를 보면, 학생 논문을 지도하면서 자기 이름을 같이 집어넣는 문제도 있다. 이제 질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런데 우리는 인센티브를 얘기하면 꼭 돈 문제만 생각하는데, 실제로 교수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질적인 향상이 될 텐데 교수들이 이렇게 비판을 하면서도 우리 스스로 ‘돈’에 얽매이게 된다. 연구는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

최 : 다른 문제는 없을까. 학문 전체적으로 봤을 때 논문 물량주의가 어떤 결과를 갖고 올지, 학문적인 질의 하락을 가져오지는 않을지, 아니면 나름대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지, 이제는 얘기할 상황이 되지 않았나.

현 : 돈도 필요하지만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지금 시간이 절대적으로 더 필요한데 이런 것을 장려하기 보다는 교수 개인에 대한 업적평가를 강화하고 연봉으로 압력을 주니까 혼자 100% 인정받는 개인 단독논문 쓰기에 더 급급한 현실이 돼버렸다. 교수들이 자율적으로 관심이 있는 쪽으로 연구를 하는 분위기가 없어지고 돈을 받아야 연구가 된다 이런 분위기니까 연구비를 수주하는 데에 바쁘고, 자기 연구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기업이나 각종 단체에서 돈을 주는 단체에 부합할 수 있는 연구주제에 관심이 많다.

김 : 교수들이 모범생이라 요구를 하면 어떻게든 답을 만들어 낸다. 학회지가 많이 생겼는데 기준을 높이면, 질이 문제가 생겨도 어떻게든 맞춘다. 대학들이 새롭게 평가시스템 만들면서 조금씩 기준을 늘리고 있는데 쥐어짜는데도 한계가 있다. 어디까지 갈 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숫자를 늘리는데 집중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본다. 질적인 논문을 쓰는데 집중해야 한다.

현 : 논문 수를 강조하니까 논문 쪼개기 관행이 많아졌다. 우리 학계도 황우석사태 이후 대학에서는 윤리지침을 만들었는데, 학위 논문 중복발표는 제외했다. 이렇다 보니 제자 논문까지 자기 업적에 집어 넣는다. 논문 물량주의 때문이다. 제자를 위한다면 길을 터줘야 하는데, 제자 논문도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학문후속세대 양성에도 문제가 생긴다.

임 : 우리나라에서는 연구업적을 논문만 비중을 두고 평가하는데, 논문뿐 아니라 번역에도 많은 비중을 둬야 하는 것 아닌가.

"세계화 심화 속 '학습 도우미' 전락...자기 삶에 대한 반성적 사유부터"

 최 : 연구업적의 평가기준을 다양화하고 학과 전공 특성에 맞춰 해야 한다. 그런데 교수사회에 불어 닥치고 있는 업적기준의 강화는 어떻게 보면 교수사회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 지금까지 연구가 빈약한 측면도 있었고, 평가기준을 다양화하지 못하는 이유도 다양한 방식의 부정한 방법을 통해서 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 수단이 없었던 것 같다.

현 : 교수의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고용된 지식인’, 지식 노동자로 인식하면서 창의적인 게 아니라 뭔가 물건을 만들어 내야 하니까 제자 논문을 쪼개서 적당히 상품을 만들면 된다는 이런 사고방식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

김 :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대학과 학문의 역사가 엄청 짧다. 해방이후, 엄청나게 열악한 시기부터 시작한 거다. 청계천 헌 책방 뒤져 가면서, 책을 모으는 자체가 중요한 공부의 일부였다. 대학사회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일천한 대학의 역사와 학문의 역사, 한글로 학문을 시작한 지 몇 십 년밖에 안됐다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그래도 짧은 시간 안에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잘해 왔다고 본다. 스스로 너무 비하할 필요는 없다.

최 : 경쟁논리가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과도하게 진행될 때는 학문의 자율성과 대학의 기본적인 목표를 침해할 수 있다. 대학들이 예전과 달리 대학당국이나 혹은 시장이나 정부의 요구와 압력에 직접 대응하지 못하고 휩쓸려 간다. 반대로 오히려 더 앞서 달려가는 양상도 있는 것 같다. 대학사회가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는가.

임 : 역시 신자유주의와 맞물려 있다. 돈이 힘의 바탕에 깔려 있다. 정치권력이나 물신주의 이런 것들이 대학에 굉장히 팽배해 있다.

현 : 지금은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지금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연관된 경제자본이 권력화 돼서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시기다. 과거 교수들이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이었다면, 지금은 경제 권력에 대해 비판적 이성을 발휘해야 한다. 비판적 이성이 많이 사라진 이유가 신자유주의에 동화되고 순응주의자가 됐고 시대적으로 너도 나도 경쟁이 좋다, 선택이 좋다, 집중이 좋다고 하니까 자신도 모르게 세뇌 당했다. 자신도 비판적 이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거기에 휩쓸리다 보니까 자신도 모르게 경쟁체제에 편입돼 노동중독자가 된 것은 아닐까.

김 : 우리가 신자유주의적인 경향에 맞서서 이것은 안 된다고 하려면 왜 안 되는지 논리를 제공해야 한다. 인간의 삶이 그런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과는 달리 어떤 것을 추구하는 것인지, 교육이 상품소개와 달리 어떤 특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현 : 교수도 이제 ‘학습도우미’라고 까지 얘기한다. 학생들은 교수가 더 이상 정보화 인터넷 시대에서 새로운 차별화된 정보가 없고, 학생보다 조금 빨리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냥 방향을 좀 잡아주는 학습도우미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 : 그런 경향이 심화될 수 있는 것이 인터넷 교육의 활성화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이제 우리는 세계의 노벨상 수상자 등 대가의 강의를 직접 볼 수 있다. 그러면 한국과 같은 주변부 교수들은 ‘도우미’의 역할로 전락할 수 있다. 지금도 우리가 하고 있는 역할이 서양이론을 풀어서 설명해 주는 역할인데, 이게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기면 개발도상국이나 지식을 창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지식을 소비하는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서 교수의 위치가 도우미 역할에 전락할 우려가 높다.

현 : 교수들이 창조적인 역할, 학문의 비판적인 사고를 많이 해야 한다. 예전처럼 서구학문을 수입하는 수입오퍼상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고, 이제는 오퍼상이 아닌 재창조 등 지식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이성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최 : 세계화는 대단히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또 우리나라 대학과 교수사회가 이렇게 한국이라는 제한된 틀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와 비교하면서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다른 방식의 사고와 행동이 필요할 것 같다.

김 : 비판정신이 약화된 주된 원인은 이전엔 비판의 대상이 단순했지만 지금은 매우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독재정권이나 심한 빈부차 문제 등으로 지식인이 비판을 구성할 수 있는 게 비교적 명확했다. 지금은 이념에서도 벗어나고 비판해야 할 대상과 권력 작동 방식이 정교해지고 복잡해졌으며 비판하는 가치나 세계관이 대학 안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기 때문에 스스로 비판의 힘을 결집시키기가 어렵게 돼 있는 상황이다.

현 : 대학도 지금 신자유주의 물결속에서 물량주의 연구업적을 강요하는 현실로 질주하다 보면, 세계 경제가 금융공황을 맞았던 것처럼 지적 공황을 초래할 수 있다. 우리도 다시 비판적 이성과 창조적 사고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이 최고의 가치라는 것을 알아야만 대학의 파국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김 : 제 숙제이기도 한데, 우리가 어떤 식으로 이 시대에 비판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 탈이념적인 상황에서 비판적인 성찰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공황상태에 빠지고 만다. 지금 달려가는 방향이 굉장히 황폐화된 지식의 형태가 아닌가 한다. 생각과 삶을 풍부하게 하는 방식이 아니다. 지식인들의 연계를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찾는 게 중요한 화두다. 지식인이라면 떼로 몰려 떼쓰듯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혼자 싸울 수도 있어야 한다.

임 : 요즘 지배자 이데올로기가 지배이데올로기 아닌가.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의 경우 이기주의에 근거한 정치논리나 경제논리에서 벗어나 남을 비판하되 자기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통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최 : 여전히 대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지만, 위기 속에서 기회가 나올 수 있다. 오늘 토론이 이런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작은 불씨가 됐으면 좋겠다. 다른 곳에서도 우리 교수사회, 지성사회가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논의도 있다. 조직화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인식론적인 틀이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서 새롭고 현재 삶에 기반을 둔 그런 사고를 하자는 얘기가 많은 것 같다. 시너지효과가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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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외 2008-11-24 19:35:24
대학과 지성의 위기설에 대해서 무엇이 문제인가? 할 때에 무엇보다 우선하여 교수시회의 <지성(知性)>에 문제가 있다. 라고 말 할 수 있다.

<지성(知性)>의 문제에 대해서 존재론과 가치론을 아우르는 새로운 인식론적 패러다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모든 지식과 정보에 대해서 사고(思考)를 하는 <지성(知性)>이 편파성을 가지는가? 아니면 보편성을 가지는가? 하는 부분이 바람직한 학문 및 삶과 행위를 위한 의사소통의 위기설의 근본적 문제가 된다고 본다.

대학과 지성의 위기설이 왜 생기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보편성의 논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간과해 왔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본인은 보편성의 논거를 <형평성>이라고 주장한다. 인간과 생물과 물질에 있어서 두루 통하는 보편성으로서 <형평성>이 세계질서에 대해서 통섭적 보편성이 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학의 교수사회에서도 지성의 새로운 인식론적 패러다임으로써 <형평성>의 문제에 대해서 함께 괸심을 가지고 그 이론과 실재에 대해서 논의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