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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의한 규정 … 항의·반박 절차 제도화 필요
무성의한 규정 … 항의·반박 절차 제도화 필요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8.11.17 12:1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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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 논문, 심사 위원들의 식견과 양심을 의심한다면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는 일은 언제나 연구자들이 가장 신경을 쓰는 일이다. 연구업적의 상당 부분이 학술지 논문 투고건수를 보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교수 신분이 불안한 상황에서, 학술지 논문 투고는 이래저래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 학술지와 논문 게재 가능 편수도 늘 한정돼 있어서, 학술지 논문 심사를 둘러싸고 긴장이 형성됐던 것도 사실이다. 연구자의 풀이 많지 않은 순수 인문학 분야 같은 경우엔, 객관적 지표의 제시가 어렵기 때문에 특히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심사의 투명성이 강하게 요구돼온 측면이 있다.

현재 인문과학의 경우 학진에 등재된 학술지는 272 편이고, 등재후보지는 138 편이다. 사회계의 경우에는 각각 331, 178 편이므로, 인문 사회계 모두 919편의 학술지를 등재 내지는 등재 후보지로 올린 상태다. 이는 전체 등재 및 등재 후보지 1582 편의 절반이 훨씬 넘는 숫자로 인문 사회계의 경우 학술지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하게 한다.

우선 규모가 있는 학회의 경우를 살펴보자. 한국철학회(회장 손동현·성균관대)는 회원수가 700 여명인 학회이다. 학회 홈페이지에는 학회지 <哲學>의 심사 및 게재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주요 사항은 △ 각 논문 편집위원회에서 위촉한 심사위원 2-3인이 심사, △ 각 심사위원은 투고논문들의 창의성, 완성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등급으로 평가, △ 논문게재 순서는 편집위원회가 분야나 주제 등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정함 등이다. 간소하기는 하지만 심사의 기준을 명시했다는 점이 특기할만하다.

대한철학회(회장 위상복·전남대)의 학술지 <철학연구>는 논문심사원칙으로 △편집위원회에서 위촉한 심사위원 3인이 심사, △ 독창성, 일관성, 표현의 적절성, 연구 주제의 명확성, 학문적 기여도, 기존 국내 연구 활용도, 인용의 정확성, 투고규정 준수 여부 등으로 등급 평가 등을 적시하고 있다.

한국사회학회(회장 홍두승·서울대)는 3명의 심사위원이 심사를 보도록 하고 있는데, 게재, 수정게재, 수정재심, 게재부적합의 판정을 할 수 있도록 돼있다. 학회는 각각의 경우에 대해서 게재, 수정 후 게재, 수정 후 재심, 부적합 등의 판정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논문 심사 기준에 대해서는 명시를 하고 있지 않다. 한국영어영문학회(회장 정영선·육사)의 경우에는 △ 원고는 접수 순서에 의해서 심사 통과 후 게재하되, 심사는 3인의 해당 분야 편집위원에게 위촉, △ 편집위원의 위촉은 편집 이사회에서 의논하여 결정 △ 3인의 편집위원 가운데 2인 이상이 게재를 동의할 경우에 심사에 통과한 것으로 간주, △ 원고는 제출일로부터 60일 이내에 필자에게 게재여부를 통지 등을 규정하고 있다.

대형 학회는 대체로 분명한 심사 절차를 규정하고 있지만, 학회에 따라선 구체적인 심사기준이나 심사위원의 윤리규정에는 소홀한 경우가 있다.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의 학술지인 <철학사상>의 경우, 우선 절차 규정은 △ 투고자의 인적 사항에 대한 삭제, △ 해당 분야 전문가 2인의 심사, △ 심사 결과는 ‘게재’, ‘수정 후 게재’, ‘수정 후 재심사’, ‘게재 불가’로 판정 등의 사항을 두고 있다. 한편 심사기준에 대해서는 △ 학술논문이 갖춰야 할 일반적인 형식적 요건, △ 논문의 창의성, △ 논지의 일관성 및 논거의 타당성, △ 표현의 명료성 및 논의의 완결성, △ 국내의 선행 연구에 대한 참조 및 생산적 논의 여부 등을 두고 있다.

심사 기준을 명시하지 않은 곳도 많다. 2005년에 학진에 학술지가 등재된 새한영어영문학회(회장 손홍기·신라대)도 절차상의 규정은 두고 있지만, 따로 심사 기준을 정하고 있지는 않다. 총무이사를 맡고 있는 송원문 신라대 교수(영문학)는 “논문 심사의 기준은 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규정화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면서 “대신에 절차를 엄격하게 규정하여, 공정성을 확보하려 한다”고 해명했다. 송 교수는 “해당 논문 분야 전문가 3인에게 심사를 의뢰하고, 의견이 엇갈린 경우에는 다시 편집 위원회에서 판정을 하게끔 해 의견을 조율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결국 심사 기준의 공정성을 심사위원들 혹은 편집위원회에 일임하는 것이다.

한국현대문학회(회장 장사선·홍익대)의 장사선 회장도 “심사위원의 재량에 맡긴다”고 하는 등, 생각보다 많은 학회들이 명시적인 논문 심사 기준을 규정화하고 있지 않았다. 한국과학기술학회(회장 김문조·고려대)는 연구윤리규정을 통해 논문을 게재하는 연구자의 “위조·변조·표절” 여부를 ‘연구윤리위원회’를 통해 심의하고, 조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에 대한 윤리 규정이나 책임은 명시해두고 있지 않다.

독창성이나 논리적 적합성 등의 항목을 규정한다고 해서, 심사가 저절로 객관성을 갖출 수는 없다. 그런 항목들에 논문이 부합하는지 판단하는 주체는 결국 심사위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심사기준도 명시해 놓지 않고, 심사위원의 재량과 양심에만 심사를 맡기는 일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법하다. 더구나 심사위원들의 공정한 심사를 강제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점은 큰 우려를 낳는다.

논문 투고 경험이 있는 많은 연구자들은 논문 심사 규정의 이러한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있다. 특히 심사자가 해당 논문을 심사할 역량이 안 되거나, 전문적 식견이 없다는 점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고려대 남종현 교수(경제학)는 “오해가 있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 이럴 때면 서로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라면서 “이는 학술지 편집자가 해당 논문을 평가할 적절한 심사위원을 선정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남 교수는 “적절한 심사위원의 선정이야말로 편집위원회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고 강조했다. 이현복 한양대 교수(철학)도 심사평을 받아보면 억울한 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이 교수는 “심사위원이 과연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있다”면서 “전반적인 논문의 취지와 논자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안을 묻는 질문에 이 교수는 “가급적이면 같은 분야의 전문가를 심사위원으로 선정하는 것이 해법”이라면서도 “워낙에 전문화되는 추세에, 새로운 분야도 출현하고 있어 만족스러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에 이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심사의 가이드라인 내지는 유의사항을 만들어 심사에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 그나마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교수들은 심사자가 해당 분야의 전문가냐 아니냐를 떠나서, 논문 투고자와 주장이나 관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공정하지 못한 심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입을 모은다. 정병걸 동양대 교수(행정경찰복지)는 “설사 논문의 주장이 심사자와 의견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논리와 합리성을 기준으로 논문을 판정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심사자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게재 불가를 내리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또 “게재 불가 판정을 내린다면, 어떤 이유에서, 왜 게재 불가인지를 소상하게 밝혀 연구자의 향후 연구에 도움을 줘야 하는데, 그냥 ‘게재 불가’라는 판정만 불친절하게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면서, 학계의 관행을 꼬집었다. 그는 “항의 절차를 규정화하면 공정하지 못한 심사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문제를 삼을 근거가 생긴다”고 언급했다.

이경무 서원대 교수(윤리교육)도 “논문에 대해서 관점이 다를 수가 있고, 의문점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관점의 상이함을 부정적 판정으로 끌고 가는 경우는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이 교수는 또 “해당 분야에 대한 수준과 깊이가 다른데, 논문의 저자보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공정한 심사를 볼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또 “날로 전문화, 세분화되고 있는 학계 추세로 말미암아 세분화된 분야의 논문을 심사할 인력이 감소하는 경향”이라고 진단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적 관점에서 세부 분야의 논문을 판정하는 인력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나치게 가혹하고 논문을 낙점시키기 위한 심사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박경숙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지나치게 가혹하게 심사를 하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경험담을 말했다. 박 교수는 “학문적 동료로서 코멘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도를 넘어서고, 어찌 보면 논문의 정치함에 대한 요구와는 다른 방향에서 심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의 이런 지적은 논문에 대한 심사가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흐르는 경우를 지적한 것으로 귀담아 들을만하다. 박 교수는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 “학자 커뮤니티의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절실하다. 오만한 주장과 독선으로 심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동현 성균관대 교수(철학)는 “학진의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거부율을 일부러 높이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며 실태를 꼬집었다. 그는 “이런 문제는 지금의 학진 체제가 학술지에 대한 양적인 평가 기준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질적인 기준으로 전환을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기회를 갖게 하는 등 고마운 경우도 많았다”는 서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사학)의 말처럼 학술지 논문 게재와 심사는 분명히 연구 업적이라는 측면만이 아니라, 연구자의 실질적인 역량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명시적인 심사 기준 하나 마련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심사위원들의 양심과 식견에 기대는 대다수 학회의 현실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심사 기준을 적시하고, 심사위원에 대한 윤리 규정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또 말 많은 심사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는 학술지의 편집위원회가 논문 심사에 적합한 세부 전공자를 좀 더 발굴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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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2008-11-18 00:16:18
전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기준이 있으면 또 그 기준만을 맞추어 논문을 쓰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 저널의 심사를 해보니 심사자가 그 저널에 적합한지를 자의적으로 심사하게 하지 구체적인 지침이나 뭐 이런 거 별로 안주더군요.

부작용이 나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면이 많아요. 외국 저널에 논문 내어도 심사평도 없이 1-2년 질질 끌다 걍 리젝먹는 경우도 수도 없이 많구요. (국내 저널들은 이 점에선 참 앞서갑니다. 늦어도 2-3달이면 결과가 나오니까요.) 심사평도 국내 저널에 제출해서 받는 심사평보다 크게 나은 건지 모르겠다, 순 오해며 적절하지 않은 사람이 자기 스트레스 쌓인 거 분풀이했나보다.. 이런 적 많습니다.

일단 국내 인문사회계열에 저널 수가 너무 많습니다. 이제 웬만하면 다 등재지예요.
그렇다 보니 웬만한 학자는 매 분기마다 여러 편씩 심사를 하게 됩니다.
자기가 모르는 분야도 떠맡게 되구요.
그러니 질이 담보가 될까요?
뻔한 학계에 별 이유도 없이 동네에 따라 이 학회 저 학회 나뉘고...
그 동네서 실적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너도나도 저널 만들어서
우리는 왜 안해주냐니까 등재지로는 해줘야죠.
저도 여기 저기 심사 의뢰 받아 해주다 보면 저널 수준에 따라 심사 기준이 크게 달라집니다.
이런 그 존재 이유가 불명확한 저널일 수록 심사 기준은 나름대로 더 구체적이고 그럴듯 할 수도 있습니다. 2인이어도 충분한 걸 꼭 3인으로 한다든지... 그러니 심사위원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죠.
아마도 각 저널의 편집위원장들이 매 시즌마다 정말 골머리 싸맬 겁니다.
뻔한 국내 학계... 논문 심사에 적합한 세부 전공자를 더 발굴하고 싶어도 어디 쉽나요.
편집장과의 친분에 의해... 또는 내 논문도 누가 심사해주니까 의무감에 분기마다 몇개씩 떠맡다 보니... 그렇다고 돈이 제법 나오는 것도 아니구요. 국내 저널의 권위가 있고 심사를 맡는 것도 영광이라면 모를까 (CV에 한 줄 올려서 도움이라도 되는 거라면 모를까)... 순전히 편집장과 심사자의 선의에만 기대하기엔 어려운 점이 많죠.
전 그래도 비교적 그런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마지막으로 항의 반박 절차가 더해지면...
소송 가고 난리 날 겁니다.
아마 편집위원장 하겠다는 교수 절대 안나올 겁니다.
외국저널이라고 자의성이 없는 거 아닙니다. 항의/반박 모두가 하면 peer review 시스템 자체가 유지될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