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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다시 찾은 광저우
[Cogitamus] 다시 찾은 광저우
  • 강진아 서평위원/경북대·동양사
  • 승인 2008.11.1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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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년 전일 것이다. 중국 광둥성 지방사에 관심이 많은 나는 박사논문을 위해 광저우를 찾은 지 거의 10년 만에 다시 광저우 땅을 밟았다. 중간 중간 외도를 많이 하기는 했지만, 언젠가는 다시 이 중국의 남방 도시 연구로 돌아가고 말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간에 구득하지 못한 관련 도서를 몽땅 사야지 야심만만하게 주머니 가득 위안화를 채우고 서점을 찾았다. 이런 식의 도서 구매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것은 중국 출판시장의 사정도 있다. 워낙 땅이 넓다보니 출판사의 수도 이루 헤아릴 수없이 많고, 출판과 유통이 대체로 省, 縣의 지역 단위로 분할돼 있어 지역에 따라 구할 수 있는 책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유명인사의 책이나 전국적 출판사의 간행물이 아니라면 전국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편리함은 누릴 수 없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무조건 그 자리에서 사야한다. 다른 서점, 다른 지역에는 없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런 사정에다가 중국 책 값은 그래도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많이 저렴하기 때문에, 한국학자나 일본학자들은 현지에 가면 한꺼번에 대량으로 서적을 구입하는 것이 보통이다. 위안화 절상으로 이런 호시절은 이제 곧 옛말이 되겠지만. 여하튼 10년 만에 전공지역에 입성했으니, 어찌 책을 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광저우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圖書城에 가서 커다란 카터를 끌고 와 책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주위의 중국인 손님들이 힐끗힐끗 자꾸만 높아가는 카터에 쌓인 책들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좀 우쭐해진다. 책 내용이 좀 흥미 있으면 몇 페이지 훑어보다가 카터에 던진다.

대형서점의 역사코너에서 그렇게 나는 당당했다. 카터를 끌고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 옆 책장으로 옮겨가던 내 눈에 한 사나이가 비춰졌다. 때가 묻고 검게 탄 마른 얼굴. 머리는 몇 달 간 감지도 않은 듯 뭉치고 헝클어져있다. 꾸부정한 허리에 마른 신체는 별로 튼튼해 보이지 않았지만 20대 초반의 젊은이다.

낡아빠진 캔버스 운동화와 솜을 약간 넣은 물 빠진 쑥색 인민복은 더러웠다. 추운 듯 옷 속에 잔뜩 웅크린 그의 얼굴은 펼쳐들고 있는 한 권의 책에 향해 있었다. 행색을 보면 농촌에서 도시로 일하러 온 전형적인 하급 노동자(따궁짜이, 打工子)이다.
매일같이 마천루가 들어서고 있는 중국 대도시의 최대 서점가에서는 어울리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코너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물평전과 초기 건국사, 군사사를 모아놓은 곳이었다.

사나이의 시선은 주위를 아랑곳 않고 오로지 책에만 고정돼 있었다. 그의 독서풍경은 뭔가 감동적인 것이 있었다. 쇼핑을 멈추고 몰래 숨어서 언제까지 독서를 하나 훔쳐보던 나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사나이는 계속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같은 자세로 독서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나이에게 사랑받고 있는 그 책은 한 없이 행복할 것이다. 나의 책들은 바다를 건너 내 연구실 귀퉁이를 알록달록 장식하고 언젠가는 읽어주겠지 하고 기다림의 세월을 보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서점에는 그 사나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꾀죄죄한 행색의 손님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혹자는 퍼질러 앉아서 혹자는 책장에 기대서 독서삼매경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가는 멀쑥한 복장의 다른 중국인 손님도 그리고 매장의 직원들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장시간의 독서를 방해하지도 않는다. 이런 대형서점은 대체로 國營이 많아서, 책이 많이 팔리나 적게 팔리나 별 상관없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라면 홈리스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똑같이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는 풍경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중국의 하급노동자의 일당은 10위안 정도, 요즘 시세로 우리돈 2400원 가량이다.

책을 살 여유는 없다. 하지만 독서의 즐거움에 귀천이 있고, 학식의 여부가 있겠는가. 춘추시대 공자는 집안 대대로 국가의 제사와 책을 관리해왔기 때문에, 학교를 열고 제자를 거두어 일문을 개창할 수 있었다. 종이라면 멀리 가서 베껴 쓰기라도 하지만 대나무 나발과 목편에 기록한 죽간, 목간의 기록은 무겁고 커서 소장된 곳에 머물면서 공부해야만 했다. 책과 가르침을 따라 고향을 떠나 스승과 만나는 과정은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다. 이제 책은 흔해졌지만 독서의 즐거움과 설렘은 줄었다. 너무 화려해져버린 우리네 책방을 떠올려본다. 책도 사람도 내용에 비해 치장이 지나치게 많은 것이 아닌지.

강진아 서평위원/경북대·동양사

Cogitamus는 ‘생각하다’라는 라틴어 동사인 cogitare의 1인칭 복수형으로 ‘우리는 생각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교수 신문 서평 위원들이 책을 통해 한국 지성의 좌표를 보여주자는 취지로 집필하는 고급 북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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