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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성공이 늦어졌을 뿐이야”
[딸깍발이] “성공이 늦어졌을 뿐이야”
  • 박경미 편집기획위원 / 홍익대·수학
  • 승인 2008.11.1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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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미 편집기획위원 / 홍익대·수학
학생들의 시험 답안을 채점하다보면 감격스러울 때가 있다. 필자의 머릿속에 들어있던 생각이 강의를 통해 말로 그들에게 전해지고, 그 생각이 학생의 머릿속에 머무르다가 답안으로 정돈돼 다시금 나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나에게서 출발한 지식과 사고가 학생을 거치면서 한 바퀴 순환해 답안지에 고스란히 적혀있는 것을 확인할 때면 임무를 마치고 귀환한 우주인을 만난 듯 반갑고 대견하다.

언어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변신을 한다. 언어는 세상에 던져지는 순간 유실되거나 변질된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며, 또 여기저기 흩어지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번 입을 떠난 언어는 다양한 변용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런 과정을 무사히 마친 내용을 답안으로 다시금 만나게 되는 것은 참으로 감동스런 일이다. 

언어는 인간의 사고를 반영해 만들어지지만 역으로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인간의 생각이 형성되기도 하므로, 언어와 사고는 양방향 상호작용을 한다. 이처럼 언어는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므로, 언어를 통해 사물과 현상을 공평하고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인생을 성찰하는 태도를 갖는 게 좋다.

한자어를 분석하다 보면 거기에 담긴 지혜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때가 있다. 예를 들어 立+木+見으로 구성된 ‘親’에는 나무 위에 서서 자식이 돌아오는지 바라보는 어버이의 마음이 담겨 있다. ‘休’에는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서 휴식을 취하는 고즈넉함이 배어있다. 바쁘다는 의미의 ‘忙’은 마음과 죽음의 결합으로 돼 있다. 망의 의미를 되새기며 “너무 바빠지면 마음이 다 죽게 되지” 하면서 망의 상태로 가지 말자고 다짐한다. 이처럼 교훈을 주는 단어도 있지만 무시무시한 의미를 담는 경우도 있다. 未亡人은 ‘아직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을 의미하니 그 뜻을 생각하면 다시 사용하고 싶지 않아지는 단어이다.

영어 단어 ‘breakfast’는 단식(fast)을 멈춘다(break)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12시간 이상 지나서 아침을 먹으니 조반은 단식을 깨는 의미를 가질 만하다. 밤참의 유혹을 받을 때면 “fast를 break해서 아침식사의 의미에 맞춰야지” 하면서 참게 된다. 영어 표현 중 ‘관계자외 출입금지’에 해당하는 ‘authorized personnel only’는 특별한 관심을 끈다. 우리식 표현은 금지의 관점에서 명령하는 뉘앙스를 갖는데 반해 영어식은 허용의 범위를 나타내어 더 부드럽다.  

영어에는 장애자, 여성, 사회경제적 약자 등 소수자의 문화와 권리와 감정을 존중하는 PC(Politically correct) 단어가 있다. 이들 단어 중에는 어색하거나 위선적으로 느껴지는 단어도 없지는 않지만, 기발한 조어 방식이 눈길을 끄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육체적인 장애자를 ‘physically challenged’라고 하고, 시각장애자는 ‘visually challenged’, 또 키 작은 사람은 ‘vertically challenged’와 같은 식으로 부른다.

이런 단어를 사용하다 보면 장애란 단지 어떤 측면에서 도전 받고 있을 뿐이며, 모든 인간은 적어도 한 가지 면에서는 챌린지를 받는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장애를 자연스럽게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양성평등의 관점을 반영한 PC 단어도 다양하다. 남성이 좌장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chairman’를 ‘chair person’으로, 승무원을 여성에 고착시킨‘stewardess’ 는 ‘flight attendant’로, 가사노동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housewife’를 ‘domestic engineer’로 표현한다. ‘Homeless’를 대신하는 ‘residentially flexible’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거주지가 유동적이니 자유롭겠구나” 하는 낭만적인 생각이 든다. ‘Failure’ 대신 ‘deferred success’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단지 성공이 늦어졌을 뿐이구나” 하고 좌절감이 희석된다.

요즘 같이 청년 실업은 늘어나고 제자들의 푹 쳐진 어깨가 마음에 그늘을 드리우는  때, 학생들에게 또 스스로에게 ‘deferred success’라고 크게 외쳐보는 것은 어떨까.

박경미 편집기획위원 / 홍익대·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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