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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동아시아 문화공동체 포럼 제1차 국제회의 ‘신자유주의하 동아시아의 소통과 상생’
[학술대회] 동아시아 문화공동체 포럼 제1차 국제회의 ‘신자유주의하 동아시아의 소통과 상생’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2.02.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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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18 16:11:57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이, 그것도 진보적 소장학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목을 끌었다. 그 때문일까. 차분하게 논의가 펼쳐지리라는 애초의 기대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다. 소란스러움은 열띤 분위기의 다른 모습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해석이 가능하려면, 규모에 걸맞게 논의가 진행되야 한다. 각국의 지식인들이 대체로 치열한 내적 반성과 과감한 자기 비판을 시도한 것만큼은 이번 행사의 값진 수확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이 모임 자체를 회의하는 논의들도 적지 않았는데, 실제로는 문화공동체가 이미 형성된 듯이 비춰지기도 했다. 바로 이 점이 이번 행사 앞에 도사리고 있던 함정이었을 지도 모른다.

同이 아닌 和를 추구하는 연대 필요성

지난 1일 성공회대 피츠버그홀에서 펼쳐진 ‘동아시아 문화공동체 포럼’(대표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이하 포럼) 제1차 국제회의에 한·중·일 주요 학자들이 참석했다. 국내 47명, 해외 19명 등 모두 56명이 포럼 발기인으로 참가한 것만 보아도 이 행사의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포럼이 처음 추진된 것은 지난 2000년 5월의 일로,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중문학)와 왕샤오밍 중국 상해대 교수가 동아시아 문제로 토론하던 중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문화적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향후 동아시아문화연대를 추진키로 합의한 데서 비롯됐다. 이후 수 차례 서로 방문하는 등 물밑 작업을 거쳐 오늘의 포럼이 발족하게 됐다.

이번 1차 회의에서는 ‘신자유주의하 동아시아의 소통과 상생’을 주제로 다뤘다. 미국 중심의 패권적 국제정세에 대해 비판적 인식을 견지하며,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연대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모색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는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경제학)의 기조발제문 ‘21세기 동아시아의 새로운 관계지향을 위하여’에서 잘 드러난다. 신영복 교수는 ‘和而不同’을 화두로 시작해 다음과 같은 논지를 폈다. “자본주의는 그것이 선진자본주의라 하더라도 근본에 있어서 同의 논리이며 패러다임에 있어서 조금도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 한국이 앞으로의 통일과정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공존과 평화의 구조를 만들어낸다면 이는 진정한 和의 원리이며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和의 논리를 견지하며 동아시아 문화연대를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 전반기까지 아시아의 지식인들은 反帝 半封建이라는 공동의 인식과 연대성을 공유하였습니다. 동아시아 문화연대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에 대응하여 동아시아 국가들이 어떠한 실천적 과제를 공유할 것인가 논의를 진행시켜야 할 것입니다.”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연대 가능성을 과거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사카모토 히로코 일본 일교대 교수의 논의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역사적인 아시아주의에 대하여’라는 발표문에서 1907년 동경의 사례를 예로 든다. “당시 많은 중국인 유학생이 동경에 모여 이 곳이 혁명의 정보센터가 되기도 했었고, 자금면에서 화교의 원조도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도로부터는 봄베이 항로개통으로 인도·일본 간 무역도 시작되었고 在日인도교포가 反英망명 인도인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동경에서 華僑네트워크와 印僑네트워크가 교차하는 곳에 일본의 좌익 아나키스트들 역시 다른 아시아 활동가들과 모여들어 보기 드문 아시아 피압박민족연대가 아주 단기간이나마 성립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의 경험을 잣대로 현재 소통의 필요성을 제기하려는 것이다. 이는 훼손된 기억을 복원하려는 시도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권혁태 성공회대 교수(경제학)는 논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아시아주의가 국제연대라는 추상적 당위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겠는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시아주의는 하나의 독립된 이념으로 자립할 수 없으며, 다른 이념에 의거해서 존립할 수 있는 일종의 보완이념이나 기생이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권혁태 교수의 주장이다. 또 일본만 하더라도 大東亞共’円’圈의 위험을 살펴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주문하기도 했다. 동아시아 연대를 주장하기에 앞서 좀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왕샤오밍 교수가 ‘비주류 민족주의’의 전통을 발굴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눈에 띤다. 그는 발표문 ‘민족주의: 중국과 일본’에서 “미국과 서구가 주도하는 ‘세계화’ 형식이 세계를 석권할 때, 중국 현대의 민족주의 사상 주류 같은 의식은 진정 힘있는 저항력을 구성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동일한 패권형식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조경란 성공회대 연구교수(철학)가 논평문에서 “우리는 중국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행위는 곧 한국과 일본의 그것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동아시아적 시각의 지평은 바로 이러한 뼈를 깎는 자기 반성이 동반될 때 비로소 열리기 시작”할 것이라는 주장도 같은 문제의식의 소산이다. 치열한 내부 비판은 물론, 외부로 향한 비판 또한 내부를 보는 거울이 돼야 연대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

아시아주의의 위험성 지적하기도

따라서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만들고자 하는 문화공동체는 과거의 기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미래 시제일 것이다. 왕후이 중국 사회과학원 교수는 ‘신아시아를 상상하는 역사적 조건’에서 새로운 대안을 담아낼 수 있는 ‘상상’을 강조했다. 그 상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이던가. 이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기도 했다. 먼저 백원담 교수는 이렇게 주장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낼 수 있는 回心의 축을 각각의 역사와 현실의 지평 속에서 모아내고 그 상하 수직적 파동운동의 浮沈을 타고넘을 수 있을 때, 그 때 ‘방법으로서의 동아시아’, 문화적 되감아 보내기는 한낱 낭만적 환상이 아니라 진정한 문명사의 전환을 이룰 수 있는 주체형성의 경로가 될 것이다.” 반면 류준필 서울대 강사(국문학)는 상상이 이미 자기 폐쇄적인 준거틀에 갇힌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의 ‘동아시아’ 상상은 자칫 중국·대만·일본을 ‘한국화’하는 데로 흐를 수 있고 이미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 상이한 반응은 동아시아 문화공동체가 처한 지점을 그대로 일러준다. 단지 모였다는 것만으로, 주장하는 것만으로 미래가 확보되지는 않는다. 현재 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가 이번 포럼의 진행과정 속에서 이미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권희철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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