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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일본을 直視하자
[대학정론] 일본을 直視하자
  • 박정자 논설위원 /상명대 명예교수
  • 승인 2008.11.03 10:1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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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 논설위원 /상명대 명예교수

일본 학자 서너 명이 가볍게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을 타는 것을 보고 우리는 다시 한 번 묘한 복합심리와 불편한 심기를 느껴야 했다. 우리의 복합 심리는 일본에 대한 우리의 과도한 무시가 번번이 견고한 현실에 의해 배반 당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우리가 학교 교육에서 일관되게 배운 것, 또는 주도적 지식인들로부터 줄기차게 듣는 이야기는, 우리의 문화가 우수하다는 것, 일본에는 아무런 문화가 없다는 것, 일본은 모방만 능하지 창의력은 없다는 것 등이었다. 과연 그럴까.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인상파 화가 모네는 유별나게 일본을 사랑했다. 지베르니의 모네 미술관에는 수련이 가득한 연못 위로 빨간 일본식 다리가 놓여져 있다.

모네가 1890년대에 스스로 설계해 만든 일본 정원이다. 여기서 그는 하루 중에 혹은 계절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물속의 꽃 그림자를 보라색, 황토색, 초록색 등으로 그려냈다. 이 미술관에는 그가 수집했던 일본의 채색 목판화 우키요에(浮世繪)가 250점이나 전시돼 있다. 한국인들은 모네를 매개로 해 일본의 감수성을 사랑하고 있는 셈이다.
19세기 화가들의 일본 사랑은 모네만이 아니다. 반 고흐는 그 중에서도 가장 열렬한 일본 애호가였다. 그의 그림 전체가 일본 미술의 단순하고 다채로운 색채와 대담한 구도의 영향을 받았지만,아예 우키요에를 직접 모사하기도 했다.

마네, 드가, 로트렉, 휘슬러 등 무수한 화가들의 그림에서 우키요에의 영향을 발견하고 한국인들은 깜짝 놀란다. 인상파에 끼친 일본미술의 절대적인 영향력에 대해 학교 미술 시간에는 배워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포니즘(Japonisme)의 열풍은 미술만이 아니라 음악과 문학에서도 강력했다. 드뷔시의 소나타 「바다(La Mer)」와 릴케의 詩 「산(Der Berg)」은 각기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齊)의 「후지산 36경(富嶽三十六景)」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되거나 쓰여진 것이다.
이른바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극도로 절제되고 압축된 시들도 일본의 단가 하이쿠(徘句)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국적인 여행 소설가 피에르 로티는 직접 일본에 다녀온 후 1887년에 소설 「국화 부인」을 썼다.

이 소설은 나중에 존 롱의 단편 소설 「나비 부인」과 함께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원작이 된다.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1904년 밀라노 스칼라 좌에서 초연됐다. 20세기 중반 일본의 인형극 분라쿠(文樂)를 찬양하는 롤랑 바르트의 『감각의 제국』에 이르기까지 일본 문화에 대한 서구인들의 매혹은 끝이 없다.

미술사학자 곰브리치의 말마따나 우키요에는 서구인들의 사물을 보는 방식을 바꿔 놓았다. 사물을 보는 방식이란 미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식의 문제와 직결된다.
인식은 우선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 문화는 이미 19세기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서구 정신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는 이야기다.

일본 미술 덕분에 서양의 정신은 원근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모더니즘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같은 시기에 우리의 선비나 화가들이 당나라 곽분양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郭汾陽行樂圖」, 중국 쓰촨(四川)성 촉잔 길의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펼친 「蜀棧圖」, 중국 옷의 신선 3인이 중국 풍의 기암절벽 아래에서 서로 나이를 묻는 「三人問年」을 그리는 동안 우키요에는 자기 시대의 자기 나라의 경치와 사람들에 대한 지극한 관심으로, 이미 근대 도시의 면모를 갖춘 에도(도쿄)의 상가 거리를 재현했다.
물론 서울 주변의 풍경을 그린 겸재 정선의 「京郊名勝帖」이 있고, 당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수적으로 너무 빈약하고 소재도 다양하지 않다.

19세기 후반기 우리의 종로 통에도 왜 상점 거리가 없었겠는가. 과거에 우리는 분명 일본에 많이 뒤떨어져 있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측이 현재 우리 사회 이념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세력들이다. 그러나 지나간 시대의 우리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패배의식이 아니고, ‘친일’도 아니다. 사실을 사실로 인정할 때 진정 우리는 강해지고, 일본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자 논설위원 /상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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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생 2008-11-06 13:24:27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 내재적 근대화의 기반을 만들어 갔다는 주장이신 것 같은데, 그것과 우리 사회 이념의 헤게모니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요? 이념이 앞선 헤게모니성 글인 것 같아 씁쓸합니다.

윤중선 2008-11-10 22:12:42
'역사=국사'의 국수주의 교육을 시작한 것은 박정희 때부터였지요. 앞 부분에서 그럴듯하다고 느끼다가 마지막 단락에서 "다 된 죽에 코 빠뜨렸군"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글이군요. 대체 이런 내용의 글에서 헤게모니가 왜 언급돼야 하는거죠? 논점일탈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