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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이론적 성찰 없는 문자적 추종을 경계한다
충분한 이론적 성찰 없는 문자적 추종을 경계한다
  • 홍준기 서울시립대 HK교수·철학
  • 승인 2008.10.2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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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교수신문> 495호 진태원 교수의 글을 읽고

지난호 교수신문은 <진보평론>에 실린 홍준기 서울시립대 HK 교수의 알튀세르-들뢰즈 국내 수용 비판 글에 대한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연구교수(철학)의 반박문을 실은 바 있다. 국내의 알튀세르 및 들뢰즈 수용 문화가 反 헤겔주의를 기치로 지극히 일면적이고 교조적이라는 홍 교수의 비판에, 진 교수는 동료학자를 정치꾼으로 매도하지 말라며 홍 교수가 문제를 호도하고 있다고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번 호에서는 진 교수의 이러한 반박에 대해 홍 교수의 반론을 게재한다.

진태원 교수의 반박문을 읽은 후 필자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진 교수의 글이 인신공격에 가까운 원색적인 글이었을 뿐만 아니라, 마치 필자의 논문이 진 교수의 글을 비판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삼고 있는 양, 필자의 글의 내용과 범위, 문제의식을 완전히 축소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 재반론문의 서두에서 우선 다음 사실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필자는 알튀세르 맑시즘의 모습을 되찾고, 들뢰즈 철학의 反정신분석 및 反헤겔적 입장의 문제점을 지적할 뿐만 아니라 정신분석이 정치적으로도 진보적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 논문을 쓴 것이지 진 교수의 편협한 알튀세르 문헌학을 비판하기 위해 그 논문을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진 교수는 알튀세르, 라캉, 들뢰즈, 스피노자, 헤겔 등에 대해 필자가 전반적으로 제기한 복잡한 논의를 ‘알튀세르 문헌학’의 문제로 축소시켜 버림으로써 필자가 쓴 글의 핵심적 내용을 아전인수 격으로 흐려버렸다.

요컨대, 진 교수는 필자가 전반적으로 제기한 현대철학의 문제에 진지하게 학문적 접근을 하기보다는, 필자가 지나가면서 진 교수에 대해 제기한 몇 가지 비판에 대해 자신을 옹호하기에 급급한 편협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필자가 진 교수를 비판하기 위해 그 글을 썼다는 듯이 말이다.

물론, 필자가 그 논문에서 진 교수의 알튀세르 해석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반론을 제기한 이유는 진 교수가 그 이전에 필자의 다른 글에 대해 비판을 제기한 바 있고 따라서 필자는 그것에 대해 일정 정도 대답을 해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진 교수가 필자의 글에 대해 제기했던 비판은 전혀 새로운 것이 없는 진부한 것이며, 80년대 때부터 ‘당연한’ 것으로 간주돼 오던 입장(알튀세르를 정신분석학으로부터 분리시키기)을 반복한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진 교수는 마치 자신이 알튀세르로부터 정신분석을 분리시키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듯한 ‘사후적’ 제스처를 취한다. 그리고 그는 마슈레를 인용하면서 스피노자와 헤겔과의 관계를 배타적이지 않은 관계로 설명했다는 듯 한 외양을 각인시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마슈레의 책을 실제로 면밀히 읽어보면 헤겔은 사실상 스피노자에 흡수돼야 할 철학자이며, 따라서 기껏해야 모순은 부차적 범주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정확히 이러한 마슈레의 견해가 알튀세르의 입장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필자가 제시한 주장 중 하나이다. 즉 알튀세르는 스피노자적 관점에서는 모순을 사유할 수 없으므로, 스피노자에 대한 헤겔적 해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 교수가 알튀세르와 정신분석학을 분리시키기를 원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진 교수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차용(알튀세르의 정신분석 차용)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적인 것이며, 따라서 실용적인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김상환 · 홍준기 편, 『라깡의 재탄생』, p. 368, 강조는 원문). 하지만 알튀세르는 선택적이고 실용적인 이유가 아니라 ‘필연적이고 본질적인 이유’로 정신분석을 원용했다고 분명하게 말한 바 있지 않은가. 알튀세르는 『맑스를 위하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정신)분석적 개념의 맑스주의 이론으로의 전이는 ‘임의적인’ 차용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두 경우(맑스주의와 정신분석)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같은 이론적 문제이기 때문이다.”(작은 따옴표 첨가는 필자). 알튀세르가 실제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도 왜 ‘알튀세르 문헌’을 열심히 읽는 진교수가 굳이 알튀세르의 의도를 정반대로 왜곡해 전달하는가. 필자가 다른 곳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이러한 식의 오도된 설명은 알튀세르와 같은 ‘기품 있는’ 철학자를 ‘정치꾼’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을 위험이 있다. 

필자의 논문에 대한 진 교수의 왜곡은 계속된다. 그는 필자가 “알튀세르가 스피노자를 포기하고 헤겔의 입장을 대신 택했다”고 주장했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하지만 필자가 주장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알튀세르가 스피노자에 대한 헤겔적 해석으로 나아갔다라는 것, 달리 말하면 알튀세르는 과도한 반헤겔주의로부터 벗어났다는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 정신분석의 혁명성을 완전하게 인정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쓴 바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알튀세르가 스피노자를 완전히 떠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알튀세르가 “나는 스피노자와 결별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또한 알튀세르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나는 내 환상을 거치고, 스피노자와 마키아벨리를 거쳐서 내 첫째가는 관심사가 아니었던 적이 없던 프로이트와 맑스로 힘들게 나아갔다.”

진 교수의 문제의식이 편협하다는 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도 바로 여기다. 필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스피노자와 헤겔, 혹은 스피노자와 정신분석을 대립시켜 사유하는 것이 학문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얼마나 무익하다는 것인가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임에도, 진 교수는 이러한 쟁점에 대해, 즉 알튀세르를 넘어서 들뢰즈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이러한 가장 중요한 쟁점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스피노자의 ‘충만한’ 세계관을 지지하는 사람은 진보적이고, 라깡 혹은 헤겔처럼 결여 혹은 부정성이라는 단어를 행여나 입에 올리는 사람은 무조건 ‘보수적’인가. 필자는 라깡과 헤겔이 단순히 ‘결여’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만족과 결여의 변증법을 얘기했다는 점(들뢰즈는 라깡 이론의 이러한 점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을 상세히 밝힌 바 있으며, 오히려 만족만을 강조하는 들뢰즈적 스피노자주의는 정신병이라는 하나의 실존적 존재형태를 특권화하는 배타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설명해왔다.

요컨대, 들뢰즈는 이러한 많은 쟁점들을 극히 단순화시키고, 스피노자와 정신분석, 즉 선과 악이라는 대립구도를 설정하는 문제 있는 철학자가 아닌가(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들뢰즈의 모든 것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진 교수는 이러한 필자의 주장을 분명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필자가 선악 구도에 사로잡힌 사람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인신공격에 가까운 수준으로 비아냥거린다. 이쯤 되면 진교수의 반론은 학문적 토론이 아니라 ‘대자보’의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는 생각조차 든다. 어쨌든 진 교수는 지면이 부족해서라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으나, 정말로 스피노자와 헤겔, 들뢰즈와 라깡이라는 선악구도를 만들어낸 장본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하고 있지 않으며, 알튀세르는 스피노자를 버리지 않았다는 (이미 필자도 알고 있는) 극히 지엽적인 문제를 설명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보다 열린 마음과 프로페셔널한 학문적 자세가 아쉽다.

 형식적으로 볼 때 이 글은 진 교수에 대한 반박문이므로, 그럴만한 가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그에 대한 대답으로 아까운 지면을 모두 써 버렸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필자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글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 들뢰즈 철학(그리고 알튀세르 철학에 대한 진부한 견해)에 대한, 충분한 이론적 성찰 없는 문자적 추종은 민주주의의 동지를 주적으로 간주할 수 있는 정치적 오류는 물론 생산적인 학문적 토론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학문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홍준기 서울시립대 HK교수·철학

필자는 독일 브레멘대에서 라깡·알튀세르 연구로 박사학위를 했다. 『라캉과 현대철학』 등의 저서와 「라캉의 임상철학과 정신분석의 정치성」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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