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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빈곤’극복하자는 주장엔 공감 … 설득력 있는 논거 보강해야
‘철학의 빈곤’극복하자는 주장엔 공감 … 설득력 있는 논거 보강해야
  • 김성주 성균관대·정치학
  • 승인 2008.09.2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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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비판: 국제관계의 민주화와 평화』 구갑우 지음│후마니타스│2008│480쪽

구갑우 교수는 이 책 『국제관계학 비판: 국제관계의 민주화와 평화』에서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에서 “‘우리’에게 국제관계의 진보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해답을 구하기 위해, 저자는 총 5부 15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주류 국제관계이론을 비판하고 국제관계의 철학적 기초를 논하고 있다. 저자는 지구화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대안을 공동체주의와 시민국가의 모습에서 찾고자 한다. 또한 세계무역기구를 통해 지구화시대 지역주의 문제를 분석하면서 동아시아의 지역통합의 구체적인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분단의 존재구속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국적 현실에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저자의 학자적 소명을 밝히고 있다.

저자도 지적하듯 탈냉전과 함께 주류 국제정치학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비판적 국제정치이론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으나, 세계화를 견인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21세기 국제질서를 창출하는 숭고한(?) 이념처럼 보인다.
세계화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탈영토화, 시민국가를 통한 지구적 통치의 진보 가능성, 국제기구(유엔)의 개혁과 시민사회의 결합, 자율적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시민사회의 성장을 보장하는 듯하다.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자들은 지구가 하나 되어 경제·핵·환경·인권·페미니즘·마약·질병·기아·테러 등 인류가처한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 나아가는 21세기의 새로운 국제사회를 상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초국가적 자본이 국가의 벽을 허물고 민족경제를 당장이라도 세계경제에 통합시킬 듯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제국주의시대 선진국에 의해 구조화된 왜곡된 자본주의 세계질서는 돌연변이를 거듭하면서 강력한 흡인력과 추동력을 발휘하고 있다. 막강한 자본과 첨단기술을 앞세운 서구 선진국들의 파상적인 공세에 약소국들은 속수무책이다.
‘물신화된 국가’들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글의 법칙’을 터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국제사회에서 역사의 퇴행적 순환논리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적극적인 평화를 위한 성찰적 자세가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반목과 대립에 투여되는 비생산적 에너지를 화해와 협력을 위한 생산적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작업이 인류 공동의 번영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철학적, 이론적, 방법론적으로 기존 국제관계론을 비판하고 이를 해체하고자 한다.
현실주의 국제관계학에서는 역사, 개인, 사회를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사회학적 상상력과 고전적 사회분석을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정치공동체’, 국가 없는 세계, 세계정부, 적극적 평화로 이어지는 저자의 일관된 논지가 책 전반에 녹아 나고 있다.

저자는 지구적 공공선, 민주주의, 국제기구의 민주화, ‘자율적 영역’으로서의 지구시민사회 등의 용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낭만적 변혁주의의 기질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정치경제적 불평등의 원인규명을 위해 자본주의적 생산과 국가간 관계의 연계에 주목하면서 국제세계 분석의 총체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는 생산, 국가, 세계질서의 연관성 탐구를 통한 국제정치이론과 국제경제이론의 총체적 이해를 의미한다.

국제관계의 본질이 저자의 주장대로 자본과 국가관계, 다시말해 국가간 관계, 자본간 관계,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통해 표현된다면 자본주의의 국민국가적 변이(국가의 기업화, 기업의 국가화)를 분석함으로써 새로운 국제관계학의 창출을 타진할 수도 있다.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국제관계학에서의 ‘철학의 빈곤’ 역시 매우 심각한 문제다. 이제 국제관계학도 철학이 부재한 합리주의와 실증주의를 넘어 이론의 역사성과 규범성을 복원하고 탈실증주의, 해석학, 구성주의 등을 결합해 물리적 권력을 중심으로 한 국제정치경제 연구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이는 사회이론과 정치철학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며 국제현실의 변혁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개념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규범적 차원의 설정, 민주적 집합행동, 보편적 주제(평화, 인권, 민주주의)에 기초한 사회운동, 지구적 시민사회, 탈주권적 정치공동체와 민주적 통치, 다양성의 인정과 세계질서의 존재론적 전환 등을 주장하면서 국제사회의 역사적, 구조적 변화의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공허감을 지울 수 없다. 논의의 구체성과 현실성의 중간 중간에 나타나는 논거의 강박성과 모호성이 저자 스스로의 한계성을 인정하는 듯한 자세로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 전반에 걸쳐 전개되는 저자의 반복된 질문과 주장도 독자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

우선 국가주권과 영토성의 문제는 지구화시대에도 계속 논쟁적이다. 지구화가 사적영역을 통해 세계시민사회를 견인해 낼지, 국가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지구화를 추동하고 있는 지에 대한 논쟁, 국가 변태의 본질에 대한 논쟁, 민족/국민국가 용어 사용의 적합성 등 많은 문제들이 학계의 충분한 여과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있다. 많은 부분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좀 더 설득력 있는 논거가 보강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기존 국제관계서들의 비교분석을 통한 결과를 적절히 유기적으로 목차에 배치했더라면 이 분야 연구자들에게 폭넓은 지적 충동을 주었을 것이다.

국제정치학에서 나타난 각 관점들은 오늘의 국제관계에 대한 ‘부분적인’ 설명을 가능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류 국제정치학 이론들의 유용성과 한계, 정치경제적 분석의 유용성과 한계 등의 비교분석은 매우 의미 있는 학문적 고해로 받아 들여 질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대안의 이상성과 현실성의 간극을 극복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인권, 평화, 민주주의, 공동체적 국제사회는 계속 논쟁 중이며 이중성격을 띤  국제/지역 현실 속에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아시아지역주의(경제와 안보의 갈등, 동아시아에서의 미국변수의 의미, 동아시아 시민연합),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한 평화·안보담론, 남한 정치·시민사회의 평화담론 등도 이중성격의 현실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김성주 성균관대·정치학
 
필자는 버팔로 주립대에서 「강대국의 삼각관계와 동남아시아안보(1975-1984)」로 박사학위를 했다. 주요저서로 『동아시아 민족주의적 장벽을 넘어』,『위대한 아시아』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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