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9:00 (금)
추상적 기독교화는 어떻게 사실주의 회화로 변했을까
추상적 기독교화는 어떻게 사실주의 회화로 변했을까
  •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미술비평
  • 승인 2008.09.08 16: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뷰]『플랑드르 사실주의 회화-15세기 제단화를 중심으로』

『플랑드르 사실주의 회화-15세기 제단화를 중심으로』 박성은 지음│이화여대출판부|2008

15세기 플랑드르는 지금의 벨기에 북부와 남부 네덜란드 지역에 해당하는 지명이다. 15세기 플랑드르 지방은 13세기 이래 교역과 산업이 발달하고 인구와 자본이 집중되면서 물질적인 부를 축적하고, 14세기 말부터 부르고뉴공국과의 정치적인 합병을 통해 국제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15세기 서구인들은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자연환경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해 기독교의 인간화를 초래했는데, 이러한 사회, 종교적 변화가 특히 플랑드르의 회화 속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15세기 피렌체와 함께 서양 회화를 선도했던 양대 지역인 플랑드르 회화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가 30여년 가까이 관심을 가져왔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15세기 플랑드르 사실주의 회화에 관한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눠져 있다. 1부에서는 양식사적 관점에서 얀 판 에이크의 ‘롤랑수상이 있는 성모상’과 ‘예수세례’의 형식을 분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었던 중세 기독교 회화가 15세기 플랑드르에서 어떻게 사실주의 회화로 변해 가는지, 또 이러한 회화적 현상이 어떻게 기독교의 세속화를 초래하는지를 사실주의 풍경화의 범주 속에서 살펴봤다. 2부에서는 도상학과 도상해석학적 관점에서 당시 플랑드르 회화를 대표하는 매체인 제단화를 통해 기독교 교리 즉 성서의 의미가 어떻게 시각화됐는지를 분석했다. 분석의 대상이 된 작품은 얀 판 에이크의 ‘헨트 제단화’와 로히르판 데르 베이던의 ‘본 제단화’다. 3부에서는 앞서 다뤘던 작품들과 함께 한스 멤링의 ‘그다인스크 제단화’를 사회사적 관점에서 다뤘다.

당시 부유한 상인 계급이 미술 후원자로 등장한 사회적 상황과 제단화 속에 나타난 봉헌자 초상화를 통해 회화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컨텍스트를 살펴봄으로써, 15세기 플랑드르 회화의 정체성은 교리를 전달하는 종교화의 영역을 넘어서 당시의 풍경과 인물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를 신 중심의 기독교 사회에서 인간 중심의 기독교 사회로의 변이를 드러내는 양상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잠시 우리를 상상불가한 15세기 플랑드르 사회로 인도한다. 저자는 또한 15세기 플랑드르의 사실주의 회화와 동시대 피렌체 회화의 차이를 서로 다른 기후와 그 결과로 나타난 회화 기법
및 매체의 특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에 속한 피렌체에서는 프레스코 기법이 발달했지만, 항상 습기 찬 날씨로 프레스코 기법의 사용이 불가능했던 플랑드르에서는 패널 제단화가 발달하게 됐고, 패널 제단화 매체는 전통적인 템페라 기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유화 기법을 개발해내는데 촉매가 됐음을 지적하고 있다.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미술비평

필자는 서울대에서 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교수와 영남대 교수를 역임했고,<창작과 비평> 발행인과 대표이사를 맡은 바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자, 문화재청 근대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