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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다양한 전형이 필요하다
더 다양한 전형이 필요하다
  • 최병기 영등포여고 교사
  • 승인 2008.09.02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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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가 바라보는 대입정책

대입업무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로 이관되고 첫 입시인 ‘2010학년도 대학입학전형 기본사항’이 발표됐다. 발표내용을 보니 업무 이관에 따른 우려가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 같다. 이번 기본사항 준비의 초점이 대입전형의 점진적 개선에 맞춰져 있고, 세간에 논란이 됐던 3불정책이 유지된 것은 큰 다행이라고 본다. 그리고 대학별 입학전형시행계획 제공 시기를 앞당긴 것은 크게 환영할 만하다.

우리나라의 대입제도는 교육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일선학교의 목소리를 담아내기보다는 대학교육에 대한 수요 과다에서 빚어진 과열 경쟁과 그로 인해 야기된 교육 문제와 사회문제를 임시로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졸속으로 변경돼 왔다. 이런 측면에서 새 정부의 첫 전형계획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정권 교체기에 제시된 영어몰입교육 등 방향 논의에 일선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큰 혼란을 겪었다. 고교 현장에서 바라본 대입제도는 여러 가지 모순점들을 갖고 있다.

첫째는 수능 점수지표의 급격한 변경이다. 2007학년도까지의 수능이 모든 수험생을 표준점수와 백분위라는 ‘가는 실선’으로 한 줄 세우기였다면, 2008학년도는 등급제라는 ‘굵은 동아줄’로 바뀌었다.
그리고 다른 전형요소인 학생부와 대학별고사가 강화됐다. 이것은 여러 가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는 했지만, 교실 교육의 정상화라는 측면에서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도입 첫 해에 이를 무력화시키려는세력들에 의해 단점만 집중 부각되다보니 1년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금 고3 학생들은 고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등급제로 대입이 실시된다는 것을 알고, 2학년까지 준비를 해왔다. 그러나 갑자기 점수제로 변경돼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
둘째는 논술문제이다. 2008학년도 대입제도가 발표되면서 많은 대학들이 ‘변별력 확보, 공교육 정상화’의 기치를 내걸고 논술을 비중 있는 전형요소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아직 일선 학교에서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의 일방적 발표였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큰 혼란을 겪었다. 공교육에서는 짧은 시간에 그에 대한 대비를 하느라고 많은 예산과 시간을 투자했다. 학생과 학부모는 논술교육에 대한 공교육의 한계를 지레 짐작하고 앞 다퉈 사교육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른바 ‘논술 광풍’이 불었다.

 
이제는 학교 현장에서도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고, 수업 현장도 주입식 교육에서 토론과 글쓰기가 정착돼 가는 시점에서 수능 점수지표가 바뀌자 일부 상위권 대학들은 변별력이 확보됐다는 명분아래 그들이 내걸었던‘공교육 정상화’는 고려하지 않고 정시모집에서의 논술 폐지를 경쟁하듯 발표했다. 그렇다면 대학에서 요구하는 인재가 단지 수능 성적 우수학생이었다는 말인가. 한 번쯤 돌아봐야 할 문제이다.
셋째는 대입제도 수립 및 시행에 교육수요자의 목소리가 철저하게 외면당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심각한 문제다.
정부당국은 정책 입안 과정에서 학생과 학부모, 일선 교사의 의견 반영은 무시하고, 정치적·정책적 논리만을 고려하고 있다.

대학들은 그들의 공공성과 공익성은 뒤로 한 채, 우수학생 선발이라는 무제한의 선발경쟁에만 몰입했다. 그 결과 일선 학교는 매번 바뀌는 정책에 적응하느라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 일부 학생과 학부모는 공교육을
불신, 입시에서도 사교육에 의존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새 정부는 가장 핵심적 교육정책으로 ‘대입 자율화 3단계 방안’을 발표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입시를 대학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 의도에는 적극 동의한다.

그러나 현재처럼 철저한 한 줄 세우기에 의한 정략적 입시정책이 고착화돼있는 상황에서 그 정책이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대학은 선발에서의 자율성을 내세우기 전에 최고의 지성을 지닌 기관으로서의 공공성과 공익성도 고려해야 한다. 전국의 대학들이 그들만의 특성이 녹아있는 향기나는 전형을 만들어주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

 

최병기 영등포여고 교사

필자는 영등포여고에서 진학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대교협 대입상담교사단 중앙위원, EBS 대학입시가이드 고정 패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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