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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일관성에 대하여
[문화비평] 일관성에 대하여
  • 교수신문
  • 승인 2008.08.2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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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토론 프로그램을 보니 필자의 고등학교 선배 한분이 나오셨다. 반가운 마음에 토론을 지켜보았지만 처음의 반가움만큼이나 그 끝은 썩 상쾌하지 않았다. 수많은 고교 선배들 중에서 그 분을 기억하는 것은 대학신입생 환영회에서 필자가 겪은 작은 에피소드 때문이다. 1980년 신입생 환영회로기억된다. 암울한 시기의 신입생 환영회란 억압된 정치적 욕구와 청춘의 치기가 마구버무려진 일종의 사육제라고나 할까,
분위기는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나 그렇게 요란스런 분위기는 뒤늦게 나타난 그 선배의 등장으로 급전됐다. 여하간 우리는 그 선배의 엄청난 꾸중을 10여분 이상 들어야 했다.

 

그 요지는 “지금 너희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은 똥 밖에 없다”였는데, 필자를 비롯한 모든 후배들을 머리를 들지 못했다. 더불어 똥만 들어있는 우리들의 머리를 위해서 서너 권의 책을 소개해주었다. 돌이켜보면 그 책은 독성이 강한 불온서적은 아니었지만, 우리들에게는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선배는 다른 헐렁헐렁한 선배들과 비교돼 오랫동안 후배들의 입에 회자됐다. 그러나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지 그렇게 처절하게 설파했든 그 분이 지난 토론에서 보여준 세계관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대학시절 이야기하니 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대학 1학년 문무대 입소 전 우리를 정문 앞에 모아두고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어린 후배를 양키 용병으로 보내는 선배들의 찢어지는 마음을” 하고 조사를 읽은 분이다. 이 분을 필자가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는 그 ‘양키의 용병’이라는 불경스런 단어를 처음으로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달 전 전해진 이 분의 말씀에 따르면 자신은 한미동맹을 방해하는 좌경분자를 척결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필자는 일관성이라는 단어를 떠 올린다. 물론  대학생 때의 가치관을 평생 가지고 가야할 필요는 없겠지만, 자장면에서 짬뽕으로 이동이 아닌, 서로 배반되는 두 개의 가치관을 어떻게 하나의 시간 축 위로 엮을 수 있는지 그 신묘한 재주가 궁금하면서 부럽기 짝이 없다.

가끔 보는 옛 친구들을 만나서 그들이 주는 핀잔, “너는 예나 지금이나 생각에 별 발전이 없는 놈이다”라는 말이 나는 그렇게 듣기 싫지만은 않다. 선악을 떠나서 기본적으로는 사람이나 음식이나 그 어떤 것에도 일관성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일관성이 없는 것에 대한 변론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변화발전론이고 다른 하나는 메타-일관성론이다. 변화발전론적 변명이란 이렇게 시작된다. “일관성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이전의 상태에서 새로운 상태로 변화발전한 것이다”. 변화발전이 무작위적인 랜덤 프로세스가 아닐진대 역사가 보여주는 명백한 퇴행적 변태를 어떤 기준으로 발전이라고 우기는지 갑갑할 때가 많다.

한편, 메타-일관성은 좀 더 높은 수준의 설명인데, 일관성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어떤 올바른(?) 일에 대한 상위단계의 일관성을 유지하다보니, 하위단계의 일관성에 있어서는 시시각각 다르게 보인다는 절묘한 설명이 바로 그것이다. 괴델의 불완전성 공리나 러셀의 타입이론이 잘 설명하듯 메타이론은 그 자체로 진위를 판별할 수 없기 때문에 메타일관성론은 안전하기 이를 데 없는 변명이 될 것이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보면
사상의 일관성에 대해 좋은 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일관성의 문제를 좀 다른 각도로 보면 이는 기회주의의 문제로 귀납되지 않을까

싶다. 친일파인지 아닌지 박 터지는 의미론적 논쟁을 기회주의자인지 아닌지의 행태론적 관점으로 본다면 좀 더 분명해지지 않을까.
우리사회의 다양한 문화에서 일관성에 대한 가치 기준은 매우 낮다. 동시에 기회주의자에  너무 관대하다. 작금의 정치권과 언론계에서 펼쳐지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몇 절정고수들의 둔갑술은 감탄을 자아내

게한다. 얼마 전 인터넷에 올려진 댓글을 보고 한참 웃었다. “이것이 구속수사감이라면, 지난 번의 그것은 종신형 감이다”. 그렇다.

일관성은 법의 영혼이 돼야 한다.

조환규 / 부산대·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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