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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에 전산언어학 대가들 모인다
부산대에 전산언어학 대가들 모인다
  • 교수신문
  • 승인 2008.07.2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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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공학의 공진화(共進化)하는 현장,
The 2008 PNU International Conference on Language and Knowledge Processing

  전산언어학(Computational Linguistics)의 대가들이 7월 17일과 18일 부산대학교에서 특강과 워크샵을 연다.

  고등학교부터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고 높은 담벼락을 쳐 서로 잘 넘나들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교육편제와 연구현장을 우려한 목소리가 꽤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다. 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반성으로 ‘학제간(Interdisciplinary) 연구, 퓨전(fusion) 학문’ 등 흔히 동떨어진 분야 간 협동연구가 뜻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던 중, 2005년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의 책 Consilience가 옛 용어를 빌어 『통섭(統攝)』(최재천/장대익 역, 사이언스 북스)으로 번역되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비판적 사고가 실천으로 이어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법. 아직도 공학도와 인문학도는 다른 별에서 온 사람 같고,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어울리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서로 대화하겠다는 의지 자체를 갖지 않은 것은 아닐까?

  보아하니 전산언어학은 ‘전산’과 ‘언어’가 결합된 학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IT강국이니 전산은 매우 친숙하고, 매일 쓰는 언어도 공기처럼 자연스러운데, ‘전산언어학’은 여전히 생소하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컴퓨터를 이용하여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데 필요한 현상과 방법론을 연구’하는 분야이고, ‘인간과 동등한 또는 더 뛰어난 언어능력을 가진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터미네이터나 AI같은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로봇처럼 어떤 언어든지 인간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단계다. 하지만 그 초보적인 기술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전자사전, 철자검사, 자동번역, (시각장애우를 위한) 음성합성, ARS대답, 음성인식, 웹검색, 전자도서관 등이 그 부분적인 예다.

  따라서 이 분야는 ‘인간의 언어를 연구하는 인문학’과 이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공학’의 결합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인문학자와 공학자가 상대 학문에 대한 깊은 이해나 전문지식이 없으면 그 결합은 풀로 붙인 쇳덩어리같이 쉽게 깨어진다. 이번 학술대회에 참여하는 국내외 저명 학자들의 면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전산학자지만 언어학에 깊은 조예가 있고, 언어학자로 출발했지만 전산학 분야에서도 대가로 인정받는다.

  촘스키(N. Chomsky, 미 MIT공대)와 대척점에서 ‘의미’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생성어휘론(generative lexicon)’, ‘어휘의미론(lexical semantics)'으로 언어학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푸츠터옙스키(James Pustejovsky, 미 Brandeis U.) 교수는 지능적인 정보검색(intelligent information retrieval)과 지식추론(knowledge reasoning)에서 미래정보기술을 선도하는 대가 반열에 올랐다. 하우써(Roland Hausser, 독 U. of Erlangen-Nurenberg) 교수는 정통적인 의미론에서 출발하여, ’데이터베이스 의미론(Database Semantics)‘이라는 자신의 이론을 제시한다. 이는 복잡한 의미처리를 단순한 선(선)적 구조로 나타내어 정확하고도 매우 속도가 빠른 방법론을 제공하며, 로봇의 정보처리에 적용되고 있다.

  국내 언어학의 거목, 이기용(고려대) 명예교수와 장석진(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미 25년 전에 IBM 지원을 받아 두 학문 분야를 잇는 국내 최초의 가교를 놓았고, 지금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또한 ‘정년퇴임=연구단절’이라는 세간의 통념을 여지없이 깨트렸다. 왕성한 저작과 학술활동은 말할 것도 없고, 현직교수들이 하기 어려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등, 명실상부한 ‘큰 어른’이다. 1년에도 6-7차례나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가하여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언어(처리) 표준안을 주도하여, 한국어와 한글이 국제표준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언어로 대접받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표준안 회의는 하루에도 12-3시간씩 일주일을 꼬박 토론하는 살인적 일정으로 짜인다.

  이 행사를 주최하는 기관도 전산언어학의 학제간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행사의 진행을 맡은 부산대 인문한국(HK)사업단을 중심으로 인문학연구소와 컴퓨터및정보통신연구소가 행사를 준비하고, 인지과학협동과정과 BK21사업단이 후원한다. 행사진행 총괄을 맡은 이은령 HK연구교수는 문사철 중심의 인문학적 전통에 전산언어학의 성과를 접목시켜 ‘제2의 구텐베르그 혁명’을 수행하는 신진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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