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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으로의 초대] 재불 지식인 홍세화
[지면으로의 초대] 재불 지식인 홍세화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0.1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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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04 14:22:11
"우리나라 대학생 67%가 이민을 희망한다는 설문조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국 사회는 모든 것이 비교적 절망적입니다".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이하 남민전) 사건으로 망명자가 되었던 홍세화 씨가 작년의 한국 방문 이후 두 번째로 지난 11월 21일에 고국땅을 밟았다. "나무 하나하나는 보지 못했지만 한국 사회라는 숲을 20년 동안 보아왔다"고 말하는 홍씨는 지금 '한겨레신문' 칼럼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숲'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홍세화 씨는 66년 서울대 금속공학과에 입학해서 77년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할 때까지 현장연극을 공연하고 민주수호선언문사건으로 제적당하는 등 70년대 운동권 출신의 이력을 밟았다. 졸업후 무역회사에 취직했고 남민전 활동에도 가담했으며, 해외지사 근무 중 남민전 사건이 발생, 귀국하지 못하고 빠리에 정착했다. 국내에 남아있던 남민전 관련자들은 대부분 10년 가까이 투옥되었으며, 이재문 씨는 고문으로 옥사했다.

한국에 들어올 수 없었던 95년에 출간된 수필집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는 35만 이상의 판매부수를 기록하며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으며,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 '똘레랑스'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후 그는 '르몽드' 기사를 발췌 번역한 '진보는 죽은 사상인가'와 수필집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출간했으며, 지금은 역서 '왜 똘레랑스인가'와 새로운 수필집을 준비중에 있다.

"프랑스에 머리를 두고 살았지만, 가슴은 한국에 있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를 견주며 비애를 느끼는 것은 나에겐 숙명과도 같습니다. 두 나라의 에스프리를 비교하고 우리 사회의 모자람을 지적하는 것은 나의 분열된 삶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실존적 작업입니다". 프랑스 사회의 잣대로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홍세화 씨의 답변이다. 그는 서로 다른 두 사회의 역사적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프랑스 지식인 사회를 한국의 에스프리를 비판하는 '직관적' '체험적'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는 프랑스 지식인의 정치적 진보성을 프랑스의 국제정치경제적 입장으로 환원하는 견해에도 답변을 갖고 있다. "프랑스 군국주의가 제3세계에 대해 오만하게 폭력을 행사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비판정신과 프랑스 전반의 자유로운 에스프리가 그것으로 부정될 수 없습니다". 프랑스의 에스프리를 형성하는 것은 프랑스 지식인을 길러온 레지스땅의 전통이다. 프랑스 언론과 지식인의 사회 비판가 군사적 제국주의의 온실에서 진행되는 무의미한 언어유희로 폄하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더구나, 한국 사회의 언론과 지식인에 대한 그의 '과격한' 비판은 굳이 프랑스와의 비교가 아니라도 신랄하다. "똘레랑스를 말했을 때, 사회운동권으로부터 극우(조선일보)도 '똘레레tolerer' 할거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럴 수는 없겠지요. 똘레랑스가 앵똘레랑스를 허용한다면 자기모순 아닙니까? 조선일보의 판매부수를 근거로 안티조선운동에 반론을 제기할 순 없습니다. 대중의 사회정치적 상황과 그들의 의식은 분리하지 못하면 대중추수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대중의 무지와 오류를 지적할 용기가 필요해요.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지요".

그가 수행하는 '악역'은 우리사회 지식인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강준만 교수가 수행하는 실명비판을 지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식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먼저, 지식은 사회의 변화와 진보를 가능케 합니다. 그러나, 지식은 동시에 개인이 사회에서 유리하게 자리 매겨지게 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지식인에게 지식이 어느 쪽을 의미하는냐는 실명비판에 대한 반응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실명비판'이라는 말 자체가 불필요한 반복입니다. 대상 없이 어떻게 비판을 합니까? 사회의 변화를 지향하는 지식인은 비판을 받았을 때 열린 마음으로 자기를 바꿉니다. 그러나 '자리'를 중시하는 지식인은 자기에 대한 비판을 '당신은 지금 있는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비난으로, 즉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입니다".

홍 씨는 자기가 학자도 아니고 연구자도 아닌 '전사'라고 말한다. "나는 싸움꾼이었고, 택시운'전사'였고, 끝까지 전사로 남아있고 싶습니다". 2년후엔 한국에 영구히 돌아오고 싶다는 홍 씨는 그러기 위해선 또 가족들과 '싸워야' 한다고.

그가 보는 한국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작년보다도 피폐해진 것 같다는 것이 이번 방문에서 그가 받은 인상이다. "99년에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을 사라'는 구호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구호가 만들어졌다는 것에도 놀랐지만, 이런 현상에 사람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도 놀랐습니다. 사람들의 의식 속에 신자유주의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다니요. 지금은 더 한 듯 합니다. 못사는 사람들 경제는 더 피폐하고, 잘사는 사람들 정신에 기름기 낀 모습도 더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한다.

"교육과 언론이 싸우는 수밖에 없다"는 그의 응원은 한국의 전사들에게 적지 않은 힘이 될 듯하다. <김정아 기자 anonio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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