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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학문의 경계선에 서서
[學而思] 학문의 경계선에 서서
  • 양태순 / 서원대·고전시가
  • 승인 2008.05.13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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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전공분야는 국문학이다. 좀 더 세분화시키자면 고전문학, 그 중에도 고전시가 분야이다. 그런데 고전시가로 한정하기에는 뭔가 분명하지 못한 구석이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음악학과 연관 지은 논문들이 상당수인 까닭이다. 하여 나의 주요 관심 분야는 고전시가와 한국음악학을 넘나드는 경계선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상대가요라고 하는 구지가·공무도하가·황조가에서부터 제망매가니 찬기파랑가니 하는 향가, 청산별곡·서경별곡·한림별곡 등의 고려가요, 용비어천가와 같은 악장, 퇴계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같은 시조, “강호에 병이 깊어”로 시작되는 송강 정철의 가사 등이 모두 가락에 얹어 부르던 노랫말이었으니 음악과 관련지어 연구해야 하는 당위성은 자명하다

하겠지만 학계에서는 그런 당위성이 쉽게 용납되지 않았다. 그 원인은 우선 필자와 같은 입장에 선 사람들의 숫자가 희소한데다 그 학문적 역량도 일천한 데에서 찾을 수 있었지만, 그보다는 학계의 해묵은 관념, 즉 “학문의 경계선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래야 모름지기 순수한 학문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고정관념 탓으로 보였다.

지금은 그런 관점이 유력한 방법론으로 인식되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게다가 학제간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이른바 통섭의 바람이 불고 있으니 더욱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주변 여건이 이렇게 우호적인 쪽으로 바뀌는 게 마냥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런 관점이 소중한 진짜 이유는 뒷전으로 밀려난 채 무슨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아닌가 싶어 내심 걱정되기 때문이다.

우리 고전시가를 음악과 관련지어 보아야만 그 실상이 드러나는 몇 가지 층위가 있다.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이 우리 고전시가의 율격 문제이다. 서양에서 들어온 율격 이론은 우선 낭독을 전제로 하는데 우리 고전시가는 낭독이 아닌 가창을 전제로 하고 있다. 또 저들의 율격 이론은 강음과 약음이라는 변별적 음운 자질을 지닌 음보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우리  말에는 그런 음운 자질이 없다. 그러니 저들의 이론은 처음부터 적용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시가에는 일정한 분할의식, 즉 율격 의식이 없었던가.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낭독상의 율격은 없거나 불완전했지만 낭독이 아닌 다른 층위에서, 그것도 음악적인 율격, 시각적인 율격, 통사적인 율격 등과 같은 세 가지씩이나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용비어천가를 통해 확인됐다.

음악과 관련지어 보는 방법은 갈래의 기원을 확정하는 데에도 긴요하다. 악곡의 분석을 통해 한림별곡이 정과정에서 비롯됐음이 밝혀졌는데 그 노랫말에 있어서도 영향관계가 그대로 드러난다.
전자의 ‘위 ~~경 긔었더 하니잇고’는 후자의 ‘아으 ~~니잇가’와 정확하게 대응되고 있음이 그것이다. 요컨대 한림별곡이라는 노래에서 시작된 경기체가라고 하는 갈래는 정과정의 가락과 노랫말의 영향 아래 형성됐던 것이다.

작품의 형태를 분석함에 있어서도 음악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만전춘’과 같은 노래는 여섯 연으로 짜여진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연이 다른 것들의 삼분의 일 정도에 지나지 않는 기이한 형태이니 그냥 연장체로 처리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선율을 보면 A와 B 두 개가 세 번 교체되는데 다만 맨 끝의 것은 많이 축소됐다.

정리하자면 AB/AB/Ab와 같은 것이다. 유절양식이나 연장체가 아니라 필자가 명명한 이른바 세 토막 양식이라 하겠다. 이러한 형태 분석은 자연스럽게 분류의 차원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하여 필자는 고려가요를 단련체와 연장체 두 가지로만 볼 것이 아니라 세토막 양식·진작양식·유절양식 등 세 가지로 나누어 보자고 제안했던 것이다.

필자가 천착해온 고전시가 연구 방법이 우리 고전시가의 율격, 갈래의 기원, 작품의 형태와 분류 등의 규명에 일정한 몫을 감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외의 방면, 특히 구체적인 작품의 해석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함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경계선에 서면 내가 속한 쪽을 새로운 각도에서 탐색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게다가 인접한 쪽을 부담 없이 관망할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점과 즐거움을 제대로 누리자면 약간의 소외감을 감내하면서 인접 분야에 대한 상당한 내공을 연마해야 할 것이다.
인간관계이건 학제간이건 소통은 참으로 소중한 것임에 틀림없다.
제대로 이루어지가 어렵기는 하지만.

 

양태순 / 서원대·고전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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