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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 옥중수고로 빚어낸 노작…“실크로드의 끝은 한반도”
[책들의 풍경] 옥중수고로 빚어낸 노작…“실크로드의 끝은 한반도”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1.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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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3 13:09:50
“아지랑이 피어나는 한국의 봄은 따사로웠고 높디높은 푸른 하늘 아래 단풍으로 수놓은 한국의 가을은 신기롭기만 했다. 그 속에서 삶을 누리는 사람들은 그토록 의욕적이고 진취적일 수 없다. (…)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학문에 뜻을 같이 한 분들은 이 땅에서 학문의 꽃을 피워갈 것을 간곡히 제의하기도 했다.”
 
지난 1992년 정수일 전 단국대 교수가 무함마드 깐수라는 이름으로 집필했던 ‘신라·서역교류사’ 서문의 일부이다. 그의 바램과는 달리, 이후의 삶은 옥고를 거치고 무국적자로 규정되는 등 고통으로 점철돼 왔으리라.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번역했고 두 권의 역작을 저술한 데서 볼 수 있듯, 학자적 열정과 의지만큼은 더욱 풍성해진 듯하다. 심지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한때 지도교수였던 사람으로서 퍽 가슴 아픈 얘기지만, 대학원생이었던 제자들 가운데서 두 분과만 인간적인 교분을 유지하고 있을 뿐, 공식적인 학문적 소통이 없다. 그들 스스로 이름 지어준 ‘동서문명교류사호’를 그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연구자들과 함께 피안까지 항진시켰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하다.” 학자로서, 스승으로서 그의 넉넉한 마음씀씀이를 짐작케 한다.
 

서구문명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시각 필요

테러와 보복폭격으로 이어지고 있는 오늘날, 한국사회에 ‘문명’이라는 화두가 던져졌다. 문명의 충돌이니 공존이니 하는 논의들은 무성하건만, 정작 그 주장들의 밑바탕 되는 연구 작업은 드물다. 국내로 시선을 돌리면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다. 고작해야 문명은 우리 상식 속에서 이집트문명, 황하문명 등의 얘기로만 존재한다. 심층에서 꿈틀대는 문명의 현재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으려면 먼저 그 미지의 움직임이 걸어온 자취를 찾아야 할 것이다. 쏟아지는 책들 중에서 정수일 교수가 쓴 ‘고대문명교류사’와 ‘씰크로드학’이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문명교류사 시리즈 중 처음으로 나온 ‘고대문명교류사’는 태고의 인류이동시대부터 기원후 5∼6세기까지를 다룬다. 여러 시기를 조감하면서도 ‘문명교류’라는 일관된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자생문명에 대해서도 “근원적으로 보면 교류를 통해 외래문명과 상관된 경우가 많으며, 문명의 성장은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교류를 떠난 문명사 연구는 적어도 역사인식 면에서 편파성이나 불완전성을 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생성과 모방성은 “서로 상보상조적 관계에 있”다. 이는“문명의 생명은 公有性”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문명은 자생성과 모방성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기필코 타문명과의 교류를 수반”하게 된다.

따라서 문명의 교류란 그 자체로 “다원적 교류”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명교류를 대개 동과 서의 그것으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도 동양에 대해 서양이 중심적 위치에 서 있다. 저자는 서구문명중심주의적인 편향을 강하게 문제삼는다. “이러한 편향으로 인해 인류문명의 다원적이고 보편적인 교류 대신에 동양문명과 서양문명간의 교류에만 국한시키는 이원론법이 문명교류사 연구를 지배하게 됐다.”

그런데 그가 보여주는 작업 이전의 문명교류사 연구는 어떤 모습이었나. 정수일 교수는 이렇게 답한다. “문명교류사 연구는 과거부터 있어왔다. 동서양학계는 물론, 유네스코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씰크로드 탐사를 비롯한 문명교류사 연구에 상당한 관심을 돌려 왔으며 적잖은 연구성과도 거뒀다. 국내에서도 고병익 교수와 故 이용범 교수 등 훌륭한 선학들 여러분이 이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왔으며 큰 학문적 업적도 남겨놓았다.” 최근 연구작업은 어떤 것이 있는지 묻자 “지금도 중앙아시아학회의 여러 분들을 위시해서 적잖은 분들이 이 방면의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몇몇 대학에서는 관련 교과목도 개설된 것으로 알고 있다. 수년간 갇혀 있은 데다가 아직은 신분증이 없어 도서관 출입이 불허되니, 안타깝게도 최근의 연구상황은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씰크로드학’은 ‘고대문명교류사’의 문제의식과 동일하지만,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문명교류사를 서술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단지 실크로드를 언급하거나 소재로 다룬 것을 넘어서 문명교류의 통로로서 그 의미를 새롭게 밝히고 있다. 이런 점에서 책제목을 씰크로드‘학’이라 붙인 것에 납득이 간다. 그것은 하나의 그럴싸한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이름이 아니다. 저자는 “씰크로드라는 환지구적 통로를 통해 진행된 문명간의 교류상을 인문·사회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실크로드학이라 말한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실크로드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그것과 사뭇 다른 듯하다. 이미 경계가 한정된 과거의 교통로라는 인식과는 달리 실크로드를 교류라는 개념과 등치시키고 있다. 확장된 실크로드 개념은 과연 정당한 학문적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역사적 실재로서 씰크로드란 한마디로 인류가 문명을 창조한 이래 그 문명이 교류돼온 역사적 통로를 말한다. 근세에 와서 인간이 처음으로 그 통로를 追認한 후 붙여진 雅稱으로서 연구가 심화됨에 따라 그 개념은 부단히 확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개념 확대란 인간의 주관적 인지도의 확대이지 결코 역사적 실재로서의 통로 자체의 인위적 확대는 아니다. 통로로서의 실재가 확인되면 그에 따라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15세기 이후 구대륙과 신대륙간 교류를 이어주는 통로(해로)가 엄존했다는 역사적 실재를 감안할 때, 통념을 넘어 그에 상응하게 씰크로드를 환지구적 문명교류 통로로 개념을 확대하는 것은 결코 경계를 흐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뚜렷하게 하며, 또한 응분의 복원”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근·현세에 와서 문명교류의 통로가 수단과 역할에서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또 다른 역사적 실재를 고려할 때, 그 이전의 전통적 씰크로드에 대비한 ‘신씰크로드’라는 새로운 개념도 도출해 냄직하다.”

실크로드를 환지구적 개념으로 확대해

김원모 단국대 명예교수(역사학)는 이렇게 평가한다. “고대부터 근세까지 동서교류의 문화관계를 총망라한 책이다. 일본학자들은 실크로드의 전파통로가 한반도를 경유하지 않고 일본으로 직접 연결됐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일본학계에서 공공연히 받아들여지고 있는 논리다. 이를 바로잡은 것이 업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실크로드가 한반도를 경유,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것이다. 또 기존의 상식화된 실크로드 개념을 환지구적 개념으로 확대시켰다. 그런데 이는 지리상의 발견 이후 줄곧 확대돼온 것이므로 무리라고 볼 수 없다.”

이메일로 인터뷰가 진행된 것에서도 볼 수 있듯 정수일 교수는 아직 자유롭게 활동할 형편이 못된다. 수감생활은 끝났지만 국적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다. “그는 법률적으로 무국적자다. 행동상의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다. 5년간 옥중생활 중에서도 저술활동을 허용했던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그러나 뛰어난 학자에게 하루빨리 국적을 주는 것이 최상의 해결책이 아니겠는가.” 김원모 교수의 말이다. 권영필 한예종 교수(미술사학) 또한 “옥고로 모든 것이 마무리됐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간의 연구성과도 있고 하니 복권이 돼서 학문활동에 지장이 없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출판관계자는 1년 내에 ‘중세문명교류사’를 간행할 계획이지만 그 결과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연구활동이 보장돼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권희철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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