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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생태역학 연구를 제안한다
[대학정론] 생태역학 연구를 제안한다
  • 교수신문
  • 승인 2008.04.2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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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또 한 번 전국을 공포로 휩싸고 있다. 김제에서 처음 신고된 이래 위로는 경기도, 아래로는 전라남도까지 순식간에 번지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 문제는 이제 거의 연례행사처럼 돼버렸지만 이번에는 그 발생 시기와 확산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우리 정부는 그 동안 조류 인플루엔자의 책임을 철새들에게 뒤집어씌우기 바빴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철새도래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서 자주 발발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심증’에 청둥오리 등 우리나라를 찾는 대표적인 철새들의 糞便에서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다분히 독립적인 ‘물증’을 한데 묶어 철새들에게 억울한 혐의를 뒤집어씌웠다. 나는 1년여 전 어느 일간지에 말 못하는 동물들을 대신해 ‘철새들을 위한 변명’이라는 글을 실은 바 있다. 겨울 철새들이 모두 떠난 후 이상고온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번 조류 인플루엔자 사건은 철새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에 충분해 보인다.

엉성한 살처분 방법과 허술한 방역 관리가 검토 대상 원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바닥에 비닐을 깔고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닭이나 오리들을 생매장하는 방법은 처음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런 조건에서는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토양이나 지하수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어쩌면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류 인플루엔자는 어느덧 에이즈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삶의 일부가 돼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마다 되풀이해 사후처리만 하는 방식으로는 점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계속 뒤따라가며 문제만 더욱 크게 키울 것이다. 병원균과의 싸움은 쫓고 쫓기는 전형적인 군비경쟁 형태의 공진화 과정을 따른다. 세대가 짧은 병원균은 수시로 새로운 유전자 조합의 무기를 들고 우리를 공격하는데 우리들 중 상당수는 적절한 면역체계를 갖추지 못해 속절없이 당하고 마는 것이다.

조류 인플루엔자 사태를 기후변화라는 좀 더 큰 틀에서 인식해야 한다.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진입경로가 북쪽인지 남쪽인지조차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리의 보건복지는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심각한 도전을 받을 것이다. 무서운 열대 질병인 뎅기열이 대만에 상륙했다. 뎅기 바이러스를 장전한 모기들이 한반도를 공습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이다. 최근 일본에는 천식과 아토피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고 그 원인이 지구온난화에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보도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전염성 질환에 대한 체계적인 생태역학(eco-epidemiology) 연구가 시급하다.

최재천 / 논설위원·이화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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