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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亞際的 연구’가능성을 보여주다
아시아의 ‘亞際的 연구’가능성을 보여주다
  • 교수신문
  • 승인 2008.03.3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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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아시아의 문화 풍경1:1940~1950년대』 성공회대 동아시아 연구소 지음 | 현실문화 | 2008 | 3만원
『글로벌시대의 문화번역』 김현미 지음 | 또하나의 문화 | 2005 | 1만2천원

편집자가 내게 준 서평 과제는 두 권의 신간 『냉전아시아의 문화풍경 1:1940~1950년대』(이하 『냉전아시아』)와 『글로벌시대의 문화번역: 젠더, 인종 계층의 경계를 넘어』(이하 『문화번역』)였다. 이 글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하면 “왜 이 두 책, 제목만으로는 그다지 긴밀한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 책들을 하나의 서평에서 다루도록 했는가?”라는 의문을 우선 가져 보는 것이다. 이 의문에 대한 필자의 답은 이 책들의 문화정치적 입지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세 가지 축으로 이를 설명하고자 한다.

하나는 이 두 책의 주요 저자들이 ‘아시아’를 중요한 이론적 문제 틀로 설정하고 탐문해 온 연구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아시아는 얼마 전까지 그랬듯이 부재하는, 실종된 대상이 아니라 엄연히 실재했고 또 실재하는 권역으로 재규정되고 있다. 『냉전아시아』는 전후 냉전체제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지나온 경험들의 유사성과 차이를 재구성함으로써 아시아를 관념의 권역이 아니라 실재했던 권역으로 부각시키고자 한다. 한편 『문화번역』은 기본적으로는 지구화를 문제 틀로 하고 있지만 지구화가 아시아를 다양한 형태(이주, 노동, 결혼, 한류)로 한국사회에 현존시키는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저자의 문제제기는 아시아가 더 이상 상상되는 권역이 아니라 현존하는 문제적 권역임을 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두 번째 설명축은 저자들에게 아시아를 하나의 문제 틀로 탐문하고 사유할 수 있는 지적인 동력과 실천적인 공간(포럼)을 제공한 Inter-Asia Cultural Studies Society(이후 IACSS로 표기)와의 연관성이다. 이들의 연구관심과 지적 실천을 구성한 요인들은 물론 다양한 갈래의 기원을 지니고 있다. 저자들의 개인사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난 수년간 이들이 한국 사회 내부의 문제를 아시아 역사와 현재 지형과 연결해서 사유하고 분석해 오는 과정에서 IACSS는 의미있는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냉전아시아』가 시도하고 있는 비교사회적 접근, 『문화번역』의 진보적 문제의식은 IACSS가 지향하고 공유하고 있는 문제의식을 통해 숙성되고 발전했다고 보인다. 이들의 연구 성과가 가진 문화정치적 입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IACSS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IACSS는 1990년대 중반 탈식민주의가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연구에 새로운 이론적 활기와 실천의 계기들을 제공하면서 가시화됐다. 대만의 콴싱첸, 싱가포르의 추뱅화를 주축으로 해 일본의 요시미 순야 그리고 인도, 호주, 홍콩, 말레이시아의 문화연구자들(영화, 인류학, 사회학, 문학, 언론학 등), 한국에서는 조한혜정, 조희연, 김소영, 강명구, 김성례, 김은실 등이 아시아의 지적 연대를 구축한 것이다. 이들의 연대는 1998년 <Inter-Asia Cultural Studies> 저널 발행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저널이라는 보다 확실한 구심체를 중심으로 해 아시아학자들의 연대와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확대했다. 그리고 2004년 인도 뱅갈에서 아시아와 아시아 이외 지역에서 활동하는 지식인들의 교류를 보다 증대하기 위해 인터아시아문화연구학회(IACSS)를 조직했다. IACSS는 “지식생산 차원에서 아시아의 통합과 재통합에 기여하기 위해 아시아의 지식인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냉전 아시아』의 저자들인 백원담과 신현준을 포함한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의 주요 연구자들, 그리고 김현미는 이 IACSS에 오랫동안 관여해왔고 ‘아시아’를 자신들의 이론적 및 정치적 지형으로 설정하는 사유구조를 공유해왔다는 점에서 IACSS와 이들의 연구성과를 분리하기 어렵다. 이러한 설명이 가능한 것은 IACSS의 주요 인물인 조희연과 김소영이 각기 『동아시아와 한국:민주화와 민주주의 위기를 넘어』(조희연·박은홍 엮음, 2007), 『트랜스:아시아 영상문화:텔레비전과 스크린을 통해 아시아를 횡단하고 통과하기 그리고 넘어서기』(김소영 엮음, 2006)를 최근 2~3년간 출간했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 말 이래 IACSS가 공유했던 문제의식과 공통의 경험들이 하나씩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한국 인문사회학계의 다양한 학문 갈래들, 역사학·사회학·정치학·문학·여성학·언론학·문화연구가 각자의 영역과 이론적 입지 위에서 아시아를 문제화하고 있고 또 중요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IACSS는 이들의 아시아 인식을 보다 구체화하는 한편 국가 간 비교분석, 다른 말로 亞際的 연구의 동력과 기회-공동연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냉전아시아』와 『문화번역』은 공히 아시아 문화연구자들과의 공동연구, 각 국가의 사례들을 특수한 차이로 드러내면서 비교하는 방식을 통해, 또 아시아와 아시아인들이 신자유주의 지구화 흐름 안에서 이주, 이동, 노동하는 방식과 양태에 대한 분석을 통해 왜 아시아가 현재 시점에서 권역화 돼야 하는 지를 역설한다. 이런 형태의 학문하는 방식이 『냉전아시아』가 추구하는 인터아시아적 관점, 즉 亞際的 관점이다. 아시아를 인터아시아로, 그리고 다시 亞際로 번역하는 것은 함축적 의미가 있다. 아시아는 지리적 권역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역사적 관계의 권역임을 표방하는 것이다. 이 때의 관계는 중심과 주변, 지배와 종속의 관계가 아니라 대등하고 평화적인 관계이다. 이 관계 안에서 한국은 ‘동북아 중심국가’ 또는 아시아 블럭에서의 패권을 야망 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되며 문화연구자들은 시민적 연대를 통해 민주화의 경험을 공유하고 자원을 나누는 아제적 시민으로 규정된다.      

세 번째 설명축은 앞의 것보다 더 중요한 논점인데 이 두 책이 탈식민주의와 문화연구의 이론적 및 인식론적 지향을 공유하면서 아시아를 ‘연대가능한 정치적 문화적 권역’으로 상정하고는 아시아 권역 내 교통과 연대의 필연성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탈식민주의와 문화연구는 엄밀히 말하면 서로 다른 갈래를 형성하고 있으나 문화연구가 탈식민주의를 전유해 이론적 확장을 이루고 문화정치의 실천력을 보강함으로써 문화연구에서 탈식민주의는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됐다. 특히 서구 중심주의와 제국적 지배구도에서 타자화, 주변화된/됐던 지역과 국가들에서 탈식민주의가 가진 저항의 동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원이다. 두 책의 저자들은 문화연구라는 지향을 공유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른 말로 문화연구가 아시아를 사유하는 방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아시아 문화연구자들에게 있어서 아시아는 서구, 제국, 그리고 식민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아시아, 식민지, 그리고 탈식민주의의 권역이다. 문화연구가 탈식민주의를 전유하는 방식은 1990년대 중반 인문사회학계에서 탈식민주의를 전유한 방식과 미묘한 차이가 있다. 문화연구는 계급, 헤게모니 투쟁, 일상의 저항, 실천과 같은 급진적 문화정치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하튼 문화연구자를 포함해 패러다임의 ‘문화적 전환’에 동참했던 인류학·사회학·문학 부문의 일부 연구자들이 더 나아가 탈식민주의도 포섭함으로써 관념으로서건 실재로서건 아시아는 핵심적 ‘문제 틀’로 부각했다.

탈식민주의적 전환이 일국가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아시아 권역 수준에서 도모되고 확장된 것은 이론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필연적이다. 그 이유는 『냉전아시아』에서 언급되고 있다. “우리는 아시아, 아시아역사를 사회화된 공식적 과거로 대면한 적이 없다. 타율적 근대화 이후 아시아는 늘 피해양상으로써 형상됐지만 그 피해 양상은 늘 민족국가 단위에서 분절된 과거로 존재했기 때문이다.”(29쪽) 이때의 피해란 식민지배, 전쟁, 냉전, 반민주 독재, 서구에 대한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종속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이고 누적적인 역사이다. 탈식민주의는 이 ‘피해’의 역사는 끝난 것이 아니라 탈식민, 탈냉전, 민주화이후 시대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현재라고 규정한다. 아시아 문화연구자들은 이 현재를 초국가적 수준에서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이 문화정치면에서 효과적이라고 간주한다. 전전과 전후의 제국들의 지배가 그들끼리의 공모와 타협을 거친 것이기에 이에 저항하는 탈식민주의적 해체 또한 초국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문화연구는 진보적 저항과 대안을 모색하므로 민족국가 내부에서 그리고 심지어 학계에서도 소수화, 주변화돼 있다. 때문에 국제적 연대를 통해 운동의 계기를 찾고 공동 대응할 필요는 더욱 절실해 진다. 이 두 책이  문화연구의 탈식민주의적 계기와 문화정치의 계기를 구현하고 있다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하면서도 평가할 만한 것이다.     

한국의 학계에서 하나의 인식범주로써 아시아를 본격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탈식민주의의 계기와는 별도로 아시아 수준에서 문제적 사태를 이해하는 사유의 확장은 또 다른 두 가지의 현실적인 계기에 의해서 촉발됐다는 것이다. 하나는 1997년 말레이시아에서 시작된 경제위기 그리고 그 결과로서 IMF 구제금융이다. 다른 하나는 ‘한류’이다. IMF는 한국이 아시아라는 권역에 속한 경제단위임을 새삼 일깨웠고 그것은 아시아인들의 생존과 삶의 기반이 서로 긴밀히 연관돼 있음을 자각시켰다. 한류는 아시아가 문화적으로 유사하거나 동질적인 문화적 권역임을 대중적으로 실감시킨 계기다. 여기에 하나의 계기를 더 추가할 수 있다면 지속적으로 식민지배의 역사를 환기시키곤 했던 일본 우익의 역사교과서 문제가 있다. 이것은 아시아가 유사하거나 동질적인 경험과 기억의 권역이며 과거는 이미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집단적 각성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정세의 변전은 자연스럽게 ‘아시아’를 학술 연구의 장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할 필요를 제기했고 학술진흥재단 등 국가기관과 부처를 통한 지원이 있었다. 국가는 대학이 아시아를 새로운 연구 분야로 영역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3가지 현실적 계기들이 가진 보다 중요한 의미는 한국에서 아시아를 상상할 때 흔히 준거가 됐던 동북아시아 또는 동아시아라는 협애화된 아시아가 뒤로 밀려나면서 대신 동남아시아를 포함하는 진정한 아시아라는 개념이 형성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 편향된 동북아시아를 넘어서 비로소 대만, 홍콩,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 태국, 방글라데시 등이 아시아라는 권역적 삶에 연루된 일원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소장 백원담)는 동남아시아를 아시아 권역의 일원으로 적극 개입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고 『냉전아시아』는 이 연구소 연구원들의 집단 연구 그리고 다른 아시아 국가의 유사 연구기관들과의 협력연구의 소산이다.

『냉전 아시아』에서 비교 또는 준거사례로 연구된 지역은 대만, 홍콩, 싱가포르, 일본, 중국이다. 충분하지 않지만 아시아는 확장되고 깊어지고 있고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분석시기로 삼은 시공간이 1940~50년대, 즉 전후 냉전체제하의 아시아라는 점이다. 냉전체제하 아시아에 대한 주목은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구성문제를 탐문하는 과정에서 도출됐다. 즉 “동/아시아가 미국의 지배력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아시아와 한반도의 종횡적 문화구성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고 이는 필연적으로 전후 냉전 구도하에서 미국화의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세 가지 문제영역을 공시적으로 탐문한다. 아시아의 종횡적 문화구성, 냉전체제, 그리고 미국화의 문제 틀이 그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그 3 영역이 가장 구체적으로 그리고 통합적으로 구현된 것은 신현준·허동훙, 도야 마모루의 냉전 초기 남한, 대만, 일본에서 생성된 팝음악과 대중연예의 미국화에 대한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9장과 10장). 당대의 대중음악이야 말로 미국, 민족국가, 식민지배의 효과들이 교차하는 독특한 영역이라는 특성 때문이라도 미국 팝음악 및 연예문화의 이입과 지역화(?) 과정의 분석은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일례로 그 과정의 중심에 미군 기지라는 거점과 접촉지대가 존재했고 그래서 냉전체제하 미국화가 대중문화영역-대중의 일상영역에서 ‘재앙’일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반공주의를 근간으로 한 공식적 민족문화와 충돌하는 계기 또한 함축하고 있는 균열지점이기도 했다. 일본, 대만 그리고 한국의 사례는 그 과정이 어떻게 유사하고 어떻게 다른 지를 보여주면서 냉전체제 미국화의 모순적이고 다층적인 구도를 재현한다.   

미국화라는 문제틀을 냉전체제의 문화정치 안에 개입시킨 것은 새로운 시각은 아니지만 그것을 아시아라는 권역의 문화적 종횡성을 가늠하는 척도로 삽입한 것은 새로운 시도이다. 미국화는 전방위에서 냉전적 양극체제 간의 문화정치가 극렬하게 진행된 시대의 소산이면서 그 전장이었던 아시아 국가들에 깊은 상흔, 즉 냉전을 구조화한 동인이었다. 뤄융성이 ‘홍콩의 탈식민주의 정치와 문화냉전’(5장)에서 콴싱첸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전후 아시아에서 탈식민화의 국면이 냉전체제로 흡수되면서 탈식민화의 성찰적 계기를 상실하고 급속히 ‘脫亞入美’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을 문제 지점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동아시아 주체성이 형성되는 국면에 작용한 미국화’로 인해 탈냉전 이후에도 ‘脫美返亞’의 역진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상기시킨다. 탈냉전은 불가피하게 탈미국화를 이뤄야 완성될 수 있다고 본다(180~81쪽). 즉 냉전의 다중적 문화효과를 해체하기 위해 역사적 문화연구로 선회하면서 전후 고등교육시스템, 반공주의, ‘성’관리정책, 청년주체의 형성, 영화, 아시아문화에 대한 미국의 담론들을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번역』은 지구화/글로벌시대를 “국민국가는 작은 로컬이 되고 로컬의 외부에는 서구가 아닌 다양한 로컬들이 존재할 뿐이다. 위계적이거나 포섭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경계에 대한 개념을 설정해야 할 것 같다”는 언명으로 시작한다. 『문화번역』은 그러므로 ‘이질적인 경험들이 일어나는 작은 로컬들의 경계를 횡단하면서 로컬들 간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의미있는 해석 작업’이다. 문화인류학자로서 저자는 글로벌을 거대한 흐름으로, 즉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운동으로 사고하기 보다 작은 로컬들의 수평적 배치로 사고하는 문화번역자가 될 것을 자임한다. 문화번역자의 역할이 필연적인 이유는 로컬들이 지구화의 운행 속에서 부단히 교류하고 충돌하는 접점, 문화교차 지역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번역은 글로벌 현상을 명료하게 바라보는 실천이고 방법론이다. 그것이 방법론인 이유는 문화번역은 로컬들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번역자의 감성과 지성, 관점이 개입될 수 있는 불완전성을 전제하면서 ‘현상’들이 새롭게 언어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강점이자 저자의 미덕은 “페미니스트 문화인류학자로서 남성중심, 서구중심, 엘리트중심의 문화권력에 정치적으로 개입하면서 한국사회를 ‘번역’한다”는 기획을 천명하는 점이다. 이 말은 문화인류학자가 경계를 넘나들면서 또는 경계 안에서 하게 되는 체험과 수행 또한 의미 있는 것으로 ‘번역’ 돼야 한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으로 읽힌다. 저자는 번역하는 주체인 동시에 그의 체험은 번역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두 개의 교차하면서 뒤섞이는 이중의 시선은 방법론적으로 글로벌을 문화적으로 접근하고 해석하는데 유용하다는데 동의한다. 이럴 때 사회과학적 객관성과 과학성은 오히려 과학적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방법론으로서 번역의 또 다른 미덕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읽고 있는 ‘번역된 현상’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보다 공감의 능력을 활성화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매우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들이 공감활성화의 촉매제로 작용하는데, 만약 다수 독자가 그들의 공감능력을 활성화해 한국사회 내부에 거주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성찰하고 다양한 문화충돌의 지점들을 반성할 수 있다면 이 책은 충분히 문화연구의 문화정치를 수행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됐는데 1부는 ‘글로벌 도시: 서울’에서는 한국 안에 자리잡은 외국인 동네나 이산 동네에 대한 성찰적 해석이다. 그 동네들이 스스로를 경계지우고 드러내는 방식은 저자의 번역을 통해 해독 가능한 것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2부는 저자가 일관되게 천착하고 있는 ‘글로벌 자본, 노동, 이주’를 계급화, 젠더, 인종, 문화의 문제틀로 접근한 글들로 묶여 있다. 글 안에서 인용 형태로 제시된 이주자, 다국적기업의 여성노동자들, 외국 여성 엔터테이너들의 목소리는 다양한 발성을 하지만 한국 사회의 중첩된 모순들이 타문화, 이주 여성, 이주노동자를 어떻게 폭력적으로 타자화 하는 지를 실감나게 재현한다는 점에서 한국인 일반에게도 성찰의 계기를 준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문화인류학자로서 저자의 진정성과 문화연구자로서의 비판의식이 잘 접합돼 있어서 지적인 문화정치의 힘을 엿볼 수도 있다. 3부는 글로벌 시대 경계를 넘는 이미지와 문화소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월드컵, 일본대중문화 팬덤, 한류현상이 번역되는데  취향과 정체성, 여성 섹슈얼리티, 이미지와 욕망이 이 글들을 꿰는 키워드로 관통하고 있다.    

『문화번역』은 오늘의 시점 그리고 우리가 현존하는 거주 공간에서 아시아가 어떻게 삽입되고 한국사회와 충돌하는 지를 참여관찰, 현장조사, 심층인터뷰 등 다양한 질적 방법론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제 연구’의 한 본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냉전 아시아』와 『문화번역』에서 아시아를 전면화하는 문화정치에는 동의하고 공감하지만 여전히 ‘왜 아시아는 정치적, 문화적, 문화지리적으로 권역화 돼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주기에는 미흡하다. 어쩌면 이러한 의문을 갖는 것 자체 또는 그것이 미흡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의문스러운 의문일 수 있다. 하지만 탈식민, 탈미국, 탈냉전, 민주화를 거쳐 평화, 인권, 민주, 상생의 아시아를 상상하는 것은 규범적으로 옳고 정치적으로 도덕적이지만 현실적으로 타당한 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냉전 아시아』와 『문화번역』이 갖는 의미가 더 자명할 수 있다. 아시아가 인식범주로서 탐구된 지가 10년 남짓하며 그 탐구의 결과로서 아제적 연구 성과물이 이제 막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고 앞에 거명한 4권의 저술들이 갖는 의미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유선영 /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필자는 고려대에서 ‘한국대중문화의 근대적 구성과정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美 인디아나 주립대 동아시아 언어문화센터 초빙연구원, 한국언론학회 문화젠더분과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 신문의 대중주의』, 『커뮤니케이션과 문화』 등의 저서가 있다.

>>『냉전 아시아의 문화풍경 1: 1940~1950년대』
이 책은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의 2년여에 걸친 연구 성과물이다. “전후 아시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동아시아연구소의 이번 연구 주제다.
동아시아 연구소는 아시아를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구성체로 파악해 아시아를 ‘문화’로 재구성하려는 의도에서 연구를 시행했다. 전후 아시아를 이해하는 일은 ‘냉전의 아시아화’라는 문제를 관통하지 않고서는 이뤄질 수 없다는 게 이 책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다. 즉 전후 아시아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탈식민의 근대기획을 전개해 나갔다는 것이다.
아시아 연구이기 때문에 연구방법에서도 영미 문화연구의 한계를 벗어나 아시아 역내 학자들 간의 공동연구와 지속적인 학술모임에 중점을 뒀다. 특히 동북아시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교류범위를 확장해 말레이시아, 타이 등 동남아 지역 연구자들과 학술적 만남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왔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는 올해 하반기 『냉전 아시아의 문화 풍경 2: 1960~1970년대』를 출간할 예정이다. 

>>『글로벌 시대의 문화번역』
저자는 일상 언어가 되다시피 한 세계화,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여전히 영토에 기반을 둔 집단주의적 국민 정체성이 혼합돼 있는 양상에 주목했다.
특히 일상의 경험을 글로벌리즘과 연계해 설명할 수 있는 실천적 개념을 ‘문화번역’에서 찾고 있다. 문화번역이란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의미 있는 해석을 만들어내는 행위다. 특히 ‘페미니스트 문화인류학자’로 불리는 저자는 남성 중심, 서구 중심, 엘리트 중심의 문화 권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을 짚었다.
구체적으로 ‘우리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다양한 문화적 타자들의 삶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심화되면서 계급 구조가 양극화하는 현상을 젠더 관점에서 분석하고, 여성들의 준비된 에너지(와 능력이 글로벌이란 기호와 만나는 지점의 모순을 지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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