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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멀티미디어 시대 강의법
[딸깍발이]멀티미디어 시대 강의법
  • 배영자 /편집기획위원·건국대
  • 승인 2008.03.2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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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80년대 중반 전후로 출생한 사람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초등학교 때부터 TV는 물론 인터넷과 핸드폰으로 대표되는 멀티미디어 환경속에서 성장했다. 주로 책, 라디오, 기껏해야 TV 등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였던 나의 세대와는 다른 감각과 뇌 구조를 발전시켰을 것이다. 일찍이 맥루언은 미디어가 인간 신체의 확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책은 눈의 확장이고, 바퀴는 다리의 확장이다. 옷은 피부의 확장이고, TV는 시각·청각·촉각의 확장이며, 전자회로는 중추신경 계통의 확장이다. 맥루언에 따르면 이들은 나의 세대보다 시각, 청각, 촉각은 물론 뇌신경까지 훨씬 더 많이 자극을 받고 활용할 수 있는 환경속에서 커 온 것이다.

환경과 대상이 바뀌면 가르치는 방법도 조금 달라져야 할 것 같아 강의실에서 조심스럽게 몇 가지 시도해 보곤 한다. 가장 주된 시도는 강의와 관련된 멀티미디어 자료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강의 주제와 관련되고 학생들에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그림, 음악, 영상물을 찾아 헤매다 보면 어느새 몇 시간이 흘러가곤 한다. 심지어 어떤 때는 이런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런 헤매임이 학생들 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매우 유익한 과정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강의실에서 이야기하는 추상적인 개념과 주장이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표현된 대상물을 찾았을 때의 반가움이란… 머리 속에만 빙빙 맴돌던 개념과 지식이 더욱 더 생생하게 살아나 가깝게 느껴지면서 좀 더 깊은 이해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인터넷은 가장 방대한 멀티미디어 도서관이다. 컨텐츠를 찾느라 여기저기 넘나들면서 항상 아쉬운 것은 한국 인터넷 사이트들의 취약함이다. 인터넷 컨텐츠가 한 나라 지식과 문화 수준의 척도가 되는 시대로 진입하였다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발전된 IT인프라가 제공되었고 2천만명을 훌쩍 넘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넘나들고 있다. 이른바 IT선진국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급 지식이나 정보에 대한 검색으로 들어갈수록 한국에서 만들어진 컨텐츠를 보기가 어렵다. 쉽게 말하면 네이버의 지식검색과 판도라TV에서 걸러지는 컨텐츠와 구글과 유튜브 영어 싸이트에서 걸러지는 컨텐츠는 양과 질에 있어서 비교되기 어려울 정도이다.

변화된 미디어 환경, 발전된 IT기술 자체가 지식이나 문화의 발전으로 자동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중요한 점을 지적해 주는 현실이다. 성공적인 IT인프라 구축만으로는 한국네티즌에 의해 더 많고 좋은 컨텐츠가 생산되고 활용되게 만들 수 없다. 학생들이 멀티미디어 환경에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고급 멀티미디어 컨텐츠들은 희소하다. 강의는 고급 지식과 정보를 다루는 활동이다. 강의 주제와 관련된 좋은 컨텐츠들을 발굴하여 학생들에게 소개하면 결국 이들이 좋은 컨텐츠의 생산자가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멀티미디어 활용의 명분은 분명하지만 실제로는 어려움이 많다. 교수 개인 취향에 따라 강의법이 다르고 교수 자신의 멀티미디어나 이에 대한 친숙도도 다르다.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적지 않다. 실은 이 글을 쓰면서도 이래저래 할 것도 많고 요구되는 것도 많은 교수 수난시대에, 멀티미디어 활용 강의는 또 하나의 짐이 될 수 있다는 걱정도 든다.

배영자 /편집기획위원·건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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