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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 “근본주의는 근대화 과정의 비이성적 산물”
하버마스, “근본주의는 근대화 과정의 비이성적 산물”
  • 강진숙 독일통신원
  • 승인 2001.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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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3 13:42:27
지난 가을 세계를 경악시킨 테러와 그에 뒤이은 복수전쟁은 이제까지 철학자들과 사회과학자들이 ‘근대성’이라는 개념으로 통칭해 온 현상들의 목록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두 현상을 그 핵심에 두고 있다. 그것은 바로 ‘종교’와 ‘폭력’이다. 물론 종교와 폭력은 근대성의 이론으로부터 전적으로 추방된 것은 아니었다.

이분화된 체계에 근거하는 이데올로기

그러나, 근대적 종교(‘시민종교’-로버트 벨라)는 문화적 다원주의와 개인적 선택의 자유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으며, 근대적 폭력(‘폭력독점체’-막스 베버)은 내적 질서의 유지를 위한 정당한 국가폭력이어야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정의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슬람 근본주의와 구약성서적 응징논리, 테러와 전쟁 사이의 무한대립의 투쟁이다.

9월 11일 이후 독일에서는 근본주의와 폭력이 근대화 과정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한 토론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하버마스는 ‘신앙과 과학의 상호개방’이라는 연설을 통해 종교적 근본주의를 ‘가속화되고 급진적으로 뿌리뽑힌 근대화’의 결과로 해석하는 테제를 발표했다. 이러한 진단에 기반해서 그는, 근대와 전통의 상호개방과 상호학습만이 이러한 상실에 대한 처방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근본주의를 단지 근대화가 유발한 상실에 대한 비이성적 반응으로만 이해하는 그의 테제는 기본적으로 고전적 근대화 이론의 관점에서 더 나아간 바가 없다. 이러한 ‘상실’의 테제는 이슬람 근본주의와 반이슬람주의의 깊은 문화적 배후에 대해서도, 사적 폭력과 국가폭력의 근본적 근대성에 대해서도 설명을 제시할 수 없다.

한편 독일의 대표적인 갈등연구자인 빌헬름 하이트마이어 교수는 이슬람 근본주의와 아리안·기독교 근본주의를 전지구화 과정에 내포된 급격한 ‘경계해체’의 결과로 해석한다. 경제적·문화적 교류의 확장이 전승되어 온 공동체의 경계를 무너뜨림에 따라, 근본주의적 세계관을 통해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들이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트마이어는 근본주의의 책임을 해체적 근대화에만 묻는 태도에 내재한 위험성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근본주의는 해체에 대한 고통스런 절규만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아와 타자와에 대한 적대적 상을 체계화시킨 이데올로기와 그것을 폭력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조직·자금·정치적 수단들을 축적하고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근본주의적 프로파간다의 이러한 이데올로기적·조직적·정치적 이면이야말로, 왜 근본주의가 갈등의 해결보다는 그것의 영속을 통해서만 재생산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갈등을 ‘생산’하는 종교의 정치화

그러나,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아랍계 문명연구자인 바삼 티비 교수에 따르면 이슬람과 서구 사이의 긴장은 훨씬 깊고도 위험스럽다. 이슬람과 기독교는 오늘날 ‘자신들의 세계관의 보편적 타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유일한 문명’이다. 그러나, 티비는 헌팅턴류의 문명충돌론에서와 같은 본질주의적 문명관에 결단코 반대한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세계관적 대립이 현실적인 갈등이 되는 것은 바로 ‘종교의 정치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지하드’와 ‘십자군’이라는 상징으로 주도되는 테러와 전쟁은 이미 내재하는 갈등의 ‘재현’이 아니라 갈등을 ‘생산’하는 행위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테러와 전쟁에 대한 책임을 그에 외재하는 어떤 유발요인에 떠맡기는 것이 사실상 이러한 갈등생산 행위들의 정당화일 수밖에 없음을 발견한다.

정치적·종교적 근본주의는 단지 상실의 결과가 아니라 이념적·정치적인 ‘근대의 프로젝트’의 핵심이었으며, 폭력과 전쟁은 단지 정치의 연장 혹은 권력의 수단이 아니라 ‘폭력의 자기논리’를 따라 자신과 상대를 동시에 정당화시켜왔다. 근본주의와 국가폭력은 ‘근대의 이면’이 아니라 ‘근대 자체’이며, 상실에서 유래한 멜랑콜리보다는 타자에 대한 공격성으로 특징지워진다. 진정한 위험성은 이 두 정복자들 사이의 유혈적 힘싸움에 대해 인류의 절대다수가 아무런 발언권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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