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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교육환경 개선 없는 ‘경쟁’ 위험하다
연구·교육환경 개선 없는 ‘경쟁’ 위험하다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8.03.10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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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사회에 부는 ‘칼바람’, 어떻게 볼 것인가

교수사회를 향한 개혁 요구가 거세다.
동국대의 강의평가 결과 전면 공개에 이어 카이스트가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6명을 탈락시킨 이후 “무능한 교수를 몰아내고, 교수 ‘철밥통’을 깨야 한다”며 교수사회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교수사회도 교수업적 평가기준을 강화하고 교수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데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교수사회가 처해 있는 열악한 연구·교육 환경이나 불합리한 구조에 대한 개선책 없이 ‘철밥통’으로 낙인찍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한 처사라는 게 교수사회의 중론이다.

카이스트는 이번 재임용 심사에서 각 학과장의 책임아래 기본적인 연구·교육·사회봉사 실적과 함께 교내(4)·국내(4)·국외(4) 교수 12명으로부터의 ‘리뷰 레터’(동료 평가)를 참고해 평가한 뒤 교내 인사위원회에서 최종 투표를 통해 재임용 여부를 결정했다. 카이스트는 SCI논문 게재를 독려하고 점수로 환산해 평가하던 방식에서 지난 2002년부터 질적 평가 기준을 강화해 왔다. 연구중심대학으로서의 특성화 성격이 분명하며, ‘학과장책임제’를 도입해 질적 평가를 뒷받침할 수 있는 행정혁신도 함께 추진했다. 신임교수들에게는 강의시간을 줄이고 정착연구비를 지원해 연구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 환경을 마련해 주고 있다. 서남표 총장의 학문적 카리스마도 한몫을 한다. 이런 전반적인 사정이 카이스트 ‘개혁’을 추진해내고 있다.

교수사회가 “연구·교육환경 개선과 함께 실적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동일 계명대 석좌교수는 지난 4일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에서 “여건이 미비하고 개선의 속도는 느린데 요구 수준은 급격하게 향상돼 파행을 가져오는 것이 전반적인 사태”라며 “여건 개선을 위해 장기적인 전망을 세워 획기적인 투자를 하려고 하지 않고 평가를 더욱 엄격하게 하기만 하면 편법을 써서 이득을 보려고 하는 책동이 늘어날 수 있다”고 대학이 처한 현실을 지적하기도 했다.

SCI 논문수가 10년전과 비교해 2배 이상 증가해 세계 11위 ~ 13위에 올랐지만,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 간 논문 게재 후 한 번도 인용되지 않은 논문이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현실(2007년 9월 17일자 1면 참조)을 감안해 보면, 질적 평가 기준 마련이 절실하다. 마땅한 대안도 없이 업적평가 기준을 강화하는 대세에 따른다면 아무도 보지 않는 ‘쓰레기 논문’만 양산될 공산도 커 보인다.

부산대도 연구업적 미비로 재임용을 거부한 첫 사례가 알려졌다. 해당 교수는 아무런 사후 조치나 일정기간의 유예기간도 없이 지난달 29일자로 재임용 거부 통보를 받았다. 미국처럼 대학 간 이동이 자유롭지도 않고, 한 대학에서 재임용에 탈락 되면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한국 현실을 고려할 때, 평가 기준 강화라는 극적 처방은 미비한 제도 개선책과 함께 제시돼야 형평이 맞다.

최근 또 다시 불거진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의 재임용 탈락 문제를 보더라도 투명하고 합리적인 교수인사제도 마련은 시급한 일이다. 대학자율을 명분으로 대학 경영 논리를 앞세워 교권을 무시하는 세태에서는 학문 발전도 요원하기 때문이다.

전국교수노조 홍성학 교권쟁의실장은 “한국은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교수확보율이 제일 낮고, 시간강사 비율은 가장 높다. 고등교육재정도 열악한 실정에서 대학경쟁력 강화를 지상과제로 내세운 지금, 단기적인 결과에 집착할 때 학술문화가 고사될 것은 뻔하다”고 진단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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