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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 意志 우려 … 한국언어학의 진면목 세계에 알린다”
“정부 지원 意志 우려 … 한국언어학의 진면목 세계에 알린다”
  • 김혜진 기자
  • 승인 2008.03.04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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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2008 세계언어학자대회 공동조직위원장 홍재성 서울대 교수

▲ 베이징 올림픽을 내세운 중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등이 경합해 유치가 쉽지 않았을 텐데 성공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서울대회 유치를 위해 한국 언어학계가 들인 노력도 노력이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언어학계가 활발히 수행해온 국제교류 역사가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언어학계는 해외학계와의 학술교류를 적극적으로 해오고 있으며, 특히 1981년부터는 독자적으로 서울국제언어학대회(Seoul International Conference on Linguistics, SICOL)를 5년마다 개최해 오고 있습니다. 소련 해체 이후 1992년 대회에서는 국제무대에 소개되지 못했던 동구권의 저명학자들이 대거 참여해 주목을 받은 바 있지요.

그만큼 해외의 언어학자들이 한국 언어학계를 많이 알고 있고, 대규모 학술행사를 수행할 수 있는 근거를 그들에게 인정받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치를 계획한 결정적인 계기도 세계언어학자 상임위원회(Comit International Permanent des Linguistes, CIPL) 키퍼 위원장의 제안이었어요.

이와 더불어 재정능력을 비롯한 대형 국제회의 운영 능력을 확인시킨 것이 대회 유치에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유치위원회는 국제적 교류에 지속적으로 힘을 쏟는 한편 대회 운영에 필요한 재정과 후원을 받기 위해 발품을 팔았고, 결국 교육부·국립국어원 등의 재정지원과 고려대의 장소 지원,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후원약속을 홍보자료에 첨부해 제출했습니다.


▲ 대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보다 재정확보가 가장 어려웠고, 지금도 어렵습니다. 언어학 연구에 관심이 많지 않다보니 지원하려는 조직이 없었습니다. CIPL 차원의 재정 지원도 별도로 없습니다. 오히려 등록비의 20%를 지급해야 합니다. 현재 예상하고 있는 경비가 8억 3천만원 정도인데, 만만치 않은 액수죠. 

다행스럽게도 언어학과 동시에 한국학을 알리는 계기로 이번 대회를 홍보한 결과, 교육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5억원 규모의 지원을 국회 통과로 확정한 상황입니다. 또 선생님들의 노력 덕분에 국립국어원, 고려대의 지원 약속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재정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교육부의 지원이 제대로 실행될 지 걱정입니다. 교육부의 조직개편이 이뤄져 변동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식 절차를 거쳤다고는 하지만 처음 약속이었던 8억원이 5억원으로 줄었고, 또 공무원 조직이 때에 따라 자의적으로 결정을 뒤바꾼 전례들이 있어 굉장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약속된 재정 지원이 늦어진 것도 활동에 어려움을 줬습니다. 활동을 시작한 것이 2004년이었고, 이후 국제대회를 찾아다니면서 홍보 및 초청활동을 벌였는데 실제 지원은 지난해 7월에야 일부 이뤄졌습니다. 적당한 사무실도 없이 공동조직위원장 이익환 연세대 교수의 연구실에 모여서 진행했고, 한국언어학회의 재정으로 겨우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본부와의 협의나 해외 학자들 초청도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런 문제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습니다. CIPL 대표단이 두 차례 방문해 협의과정을 거치고, 각 분과별 조직책임자가 발표 논문을 검토했습니다. 최종적 권한은 CIPL에 있지만 한국이 제시한 프로그램의 밑그림이 크게 수정된 것은 없었습니다.

문제는 유럽권이나 미국을 중심으로 있는 학자들이 다른 대회와 달리 한국을 찾는데 일정이나 비용 상 부담스러워했던 것에 있습니다. 그래도 세계언어학자대회가 가진 위상만큼 적지 않은 수의 학자들이 참여할 예정입니다. 초청 강연자들은 항공료와 체류비, 지정토론자들은 100만원 정도를 지원하고 앞으로 재정 확보에 따라 추가적 지원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고무스러운 것은 동남아 지역 학자들이 대거 참여한다는 거예요. 재정지원이 쉽지 않은 국가들에서 한국 방문이 유리하게 작용한거죠. 대회의 주제인 소수언어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살필 수 있어 기대가 됩니다.

▲ 소수언어 문제를 다루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7천개에 달하는 지구상의 언어 중에 사전이나 문법책이 있는 경우는 1천개 미만입니다. 조명되지 못하는 언어들 대부분은 사용인구가 1천명 미만인 경우가 많아 절멸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번 대회는 한국어의 기원과 계통에 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어 주목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의 기원과 계통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알타이어, 특히 지리적으로 인접한 언어인 퉁구스어를 잘 알아야 하는데, 냉전시대까지 소통의 단절로 연구가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장벽이 없어지고 한국어의 계통을 연구하는 것은 인접한 소수언어의 조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크게는 언어 다양성까지 연결되죠. 이에 더해 제3세계 언어권 학자들 참여 속에서 언어 다양성의 발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인지언어학, 생물언어학 등의 개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도 학제적 연구에 무게를 두고 있는데, 언어학이 갖는 학제적 연구의 가능성은 무엇인지요.

언어는 언어학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과거 언어학계에서는 언어의 기원을 밝히는 것 자체가 금기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언어학의 실증 대상이 문자기록에 한정되다보니 기원을 말하는 것은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겨진 것이죠.

최근 진화 생물학, 분자생물학, 고인류학, 뇌과학의 발전은 이를 극복하는 토대가 되고, 학제적 연구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인간과 다른 자연개체를 구분하는 특징이 바로 언어입니다. 진화 과정에서 동물과 인간이 구별되는 시점을 찾는 것은 언어의 기원을 찾는 것과 동시에 연구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 이번 대회 가운데 ‘언어인권(Languistic Rights)’ 조명 부분도 있던데, 흥미로운 개념입니다.

언어인권은 사람이 공동체 일원으로 태어나서 습득하게 된 언어를 가지고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예컨대 얼마전 한국에서 영어를 공용화하려는 논의는 반인권적인 일입니다. 공동체의 언어가 다른 언어로 대체되는 것은 식민지가 되는 경우나 있을 법합니다. 혹은 제1언어가 정말 수요가 없을 경우 대체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국의 언어는 7천5백만이 사용합니다. 인구수만 보면 세계 12권의 언어입니다. 다른 언어를 쓸 이유가 없는거죠. 이는 언어 다양성 문제에 있어서도 기본적 토대가 되기 때문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이번 언어학 대회 개최를 통해 한국 언어학계가 얻을 수 있는 기대효과랄까, 영향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무엇보다 큰 기대는 한국어와 한국의 언어학이 세계에 알려지는 것입니다. 한국어는 세계 언어학적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민족주의적 시각이 아니라 연구재료로서 흥미 있는 주제입니다. 한국어를 표상하는 기표로서 한글의 우수성도 관심의 대상이며, 언급했던 소수언어의 문제와도 밀접합니다. 한국어에 대한 교육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어와 한국 언어학계의 진면목을 세계의 동료 언어학자들에게 유감없이 알리고 비약적인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빠뜨릴 수 없는 부수적인 효과가 한국문화 이해의 확산입니다.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특히 IT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강하게 부각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대담·정리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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