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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실종된 윤리
[대학정론]실종된 윤리
  • 전성인 / 논설위원·홍익대
  • 승인 2008.03.0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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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교수들의 수난시대다. 새 정부의 수석과 장관 후보 중에 부동산 투기나, 논문표절 문제로 구설에 오르는 사람의 절대 다수가 교수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폴리페서’라는 신조어에 더욱 경멸적인 색깔을 덧입혀 철새 교수들을 조명하는 듯 하다.

교수로서 동료 교수의 치부를 거론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감히 동료 교수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 만큼 ‘죄 없는 사람’이 우리 중에 거의 없기 때문이리라.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필자의 업적 중에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연구업적을 교내 논문집과 외부 학술지에 시차를 두고 출판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부동산 투기는 없다.

‘자아비판’을 했으니 어쩌면 이제 쓴 소리를 할 자격이 생겼을 지도 모른다. 확실히 일부 교수들은 문제가 있다. 그 스펙트럼은 광범위하다. 적나라한 부동산 투기와 극단적인 논문표절부터 자기표절이나 중복게재까지 다양하다. 또 언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지는 않지만 돈을 위해 자신의 양심을 ‘성실하게’ 팔고 있는 교수도 있다. 말하기 쉽지 않지만 권력을 향해 달려가는 불나방 같은 교수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어떤 행위준칙을 정해야 할 때다. 자연과학의 경우 황우석 교수 사태를 거치면서 연구 진실성 확보를 위한 여러 준칙이 제정됐지만, 다른 분야의 경우에는 아직 공통적으로 적용 가능한 기준이 만들어지지는 않은 것 같다. 
가장 시급한 것은 논문표절 시비와 관련된 것이다. 완전히 남의 업적을 아무런 인용도 없이 자신의 것 인양 무작정 베끼는 것은 당연히 금지돼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정도의 극단적인 논문표절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가장 자주 발생하는 경우는 석·박사 학위과정에 있는 제자의 논문과 주제가 겹치는 경우, 자신의 업적을 여러 개로 쪼개어 게재하는 경우, 여러 논문들을 묶어서 저서로 출판하는 경우, 동일한 업적을 교내, 교외, 심지어는 해외에 출판하는 경우 등이다. 개별적 경우마다 구체적인 준칙이 다르겠으나 상식적인 기준은 ‘정확한 인용’일 것이다.

폴리페서의 경우도 행위준칙이 필요하다. 교수의 사회참여 그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지식인의 책무이기도 하다. 문제는 사회참여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서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참여를 원하는 교수는 연구년이나 휴직을 신청해 지식인의 책무와 학생의 학습권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자로서의 양심’이다.  그것을 버리는 순간부터 더 이상 교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성인 / 논설위원·홍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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