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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클라이버에게서는 그의 냄새가 난다
클림트, 클라이버에게서는 그의 냄새가 난다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8.01.29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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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가깝게 보기

한 천재의 생애는 충분히 극적이자 열정적이었다. 베토벤에게서 ‘음악’이라는 키워드를 제외해도 그의 삶을 두고 쓸 이야기 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음악가,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향한 열망 등 음악만큼이나 다양한 얘깃거리를 제공한다. 

천재는 또 다른 천재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는 베토벤 음악에 영감을 받아 ‘베토벤 프리즈’(Beethoven Frieze, 1902)라는 폭 34m 벽화를 제작했다. 베토벤의 창조성을 테마로 해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을 시각적으로 재현한 이 작품은 아르누보 상징주의의 걸작으로 꼽힌다.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이 주도해 21명의 작가가 참가한 당시 전시회에서 클림트 작품은 전시회 하이라이트였다. 베토벤 프리즈는 추상적 디자인, 디자인의 단순성, 응용미술의 극치를 나타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베토벤 번역서, 무엇을 읽을까

현재까지 국내에서 출간된 베토벤 관련 교양·전문 서적은 20여종이다. 번역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박홍규 영남대 교수, 조수철 서울대 교수가 관련 저서를 선보이는 등 향후 베토벤 출판물이 활발히 나올 수 있을지 기대된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메이너드 솔로몬 저, 김병화 역, 한길아트, 2006)은 초판이 발행된 1977년 이후 지금까지 가장 뛰어난 베토벤 전기로 평가받고 있다. 메이너드 솔로몬은 베토벤이 남긴 육필원고를 비롯해 궁정과 교수 기록, 음악출판물, 연주회 프로그램 등 당시 자료와 동시대인들이 쓴 회고록을 파헤쳐 복잡한 내면을 가진 베토벤의 다층적인 초상을 그려냈다.

『베토벤 평전 : 갈등의 삶, 초월의 예술』(박홍규, 가산출판사, 2003)은 한국인 시각에서 바라본 베토벤 평전이다. 저자는 ‘가혹한 운명을 극복해 걸작을 완성하고 환희 속에서 죽는다’는 베토벤 이미지를 탈피했다. 박 교수가 바라본 베토벤은 ‘음악 노동자’다. 천재예술가를 끝없이 갈등을 겪는 반항적 인간인 음악 노동자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해 베토벤 음악이야말로 노동자를 위한, 노동자에게 어울리는 음악이라고 강조했다. 

『전원 교향곡 : 베토벤』(데이비드 W. 존스 저, 김지순 역, 동문선, 2003)은 전원 교향곡에 대한 연구서다. 전원 교향곡은 일반적인 4악장 구성이 아닌 5개 악장으로 구성돼 있고 완성하는 데만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저자는 이 점에 주목해 서양 음악사에서 ‘전원’이라는 주제의 역사를 그려냈다. 전원 교향곡의 독특한 성격을 결정하는 음악적 문법, 구문, 형식 특성에 집중하는 동시에 베토벤의 자필 악보와 스케치 악보에 드러난 특징을 언급해 베토벤 음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을 찾아내고자 했다.

『베토벤의 생애』(로맹 롤랑 저, 이휘영 역, 문예출판사, 1998)에서 프랑스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로맹 롤랑은 “청년시절에 가슴 속에 영원한 삶의 불을 붙여준” 베토벤의 흔적을 더듬어 나간다. 저자는 자료를 수집하면서 한 음악가의 위대성을 한층 깊이 인식했다고 고백한다.
최근 베토벤을 다룬 두 영화가 주목을 받았다. ‘불멸의 연인’(1995)과 ‘카핑 베토벤’(2007)이다. 영화 전체를 파고드는 베토벤 음악과 함께 영화가 더욱 돋보인 이유는 베토벤을 둘러싼 ‘여인’들 때문이다.

 

베토벤의 여인들

천재 음악가가 사랑한 여인은 영화는 물론 책에서도 매력적인 소재로 자주 이용됐다. 베토벤이 월광 소나타를 바친 줄리에타 기차르디, F#장조 소나타와 연가곡 ‘멀리 있는 연인에게’를 바친 테레제 폰 부룬스 빅, 베토벤으로부터 13통의 미공개 편지를 받은 주인공 요제피네 폰 브룬스 빅 백작부인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한 베토벤의 열정 그 자체다.

『베토벤과 그의 여인들』(크리스 슈타트랜드 저, 홍명희 역, 생각의나무, 2002)은 인간적인 베토벤을 다루며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책에 따르면 베토벤은 방황하고 고뇌하는 인물이었다. “일상이 나를 지치게 한다”고 되뇌었고 청각장애는 그를 시련으로 몰고 갔다. 작곡 전 머리에 찬물을 뒤집어쓰는 괴팍한 인물이기도 했다. 저자는 “쉽게 들끓었던 베토벤은 그런 만큼 유일하고 진실한 사랑을 추구했다”며 베토벤의 사생활과 곤경, 그의 여인들, 행복에 대해 다룬다.

음악에 대한 베토벤의 열정은 『베토벤, 불멸의 편지』(루트비히 판 베토벤 저, 김주영 역, 예담, 200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책은 베토벤이 쓴 편지선집을 모은 것으로, 베토벤의 벗과 연인, 동생과 후원자들에게 보낸 편지 123편(일기와 메모 포함)을 선별해 실었다.

천상의 소리가 듣고 싶다면 

이쯤 되면 베토벤의 음악이 듣고 싶어진다. 수천, 수만 가지 작품 중 어느 음반을 선택할 지는 듣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최고의 음악과 최고의 지휘자가 빚어내는 깊은 울림은 감동이 더 오래 남기 마련이다.

영국 BBC 방송은 베토벤 명반으로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 1930~2004)가 지휘하고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교향곡 제5번 1악장, 존 엘리어트 가디너(John Eliot Gardiner)가 지휘하고 잉글리쉬 바로크 솔로이스츠(English Baroque Soloists) 실내악단이 연주, 몬테베르디(Monteverdi) 합창단이 부른 장엄미사곡(크레도)을 꼽았다.

Gustav Klimt, Beethoven Frieze, 1902.

클래식에 일가견이 있다는 최영도 전 국가인권위원장은 최근 펴낸 『참 듣기 좋은 소리』(학고재, 2007)에서 감동을 받은 베토벤 음악을 늘어놓았다. 그가 선택한 최고의 베토벤 음악은 △교향곡 제9번 D단조 《합창》Op. 125 △베토벤 현악4중주곡 제13번 Op. 130과 대푸가 Op. 133 △베토벤 교향곡 제6번 《전원》 F장조 Op.68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5번 E플랫장조 《황제》 Op. 73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D장조 Op. 61 등이다.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박종호, 시공사, 2004)의 저자 박종호는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하고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제7번과 크리스티안 틸레만(Christian Thielemann)이 지휘하고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제7번 등을 명반으로 추천했다. 특히 밤낮없이 클래식 음악에 심취하고픈 이들이 있다면 저자를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신과 전문의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어 음반을 꾸준히 모았다. 마침내 5년 전 서울 강남에 국내 최초 클래식 전문매장 ‘풍월당(風月堂)’을 열어 ‘작정하고’ 클래식 애호가를 불러 모았다.

풍월당은 선조들의 낭만을 상징하는 淸風明月에서 비롯한 이름으로, 2만장이 넘는 희귀음악을 보유하고 있다.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져 백건우와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Dmitri Hvorostovsky) 등 거장을 초대해 사인회를 열기도 했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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