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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는 ‘僞’… 연극계 ‘活’… 영화계 ‘沈’
미술계는 ‘僞’… 연극계 ‘活’… 영화계 ‘沈’
  • 배원정 기자
  • 승인 2007.12.24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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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되돌아본 문화계

□ 연극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의 한 장면.소설적 재미가 돋보인 작품이다.
‘自欺欺人’.올 한해, 묵은 상처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문화예술계를 대변하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사자성어가 있을까. 신정아씨 사건을 발단으로 연일 발표됐던 학력위조 사건에는 유독 문화계 인사들이 두드러졌다. 이중섭, 박수근 작품 2834점 모두는 위작으로 판정 났다. 사람과 작품 모두 위조로 얼룩진 한 해였다.

전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이자 동국대 교수였던 신정아씨가 광주비엔날레의 공동예술감독으로 선임되며 불거져 나온 신씨의 학력위조 파문은 예술계는 물론 종교, 학계, 대중문화계까지 그 파급력을 미쳤다. 그러나 신씨가 미술계에 가져온 파장은 학력위조 사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변양균 청와대 전 정책실장과의 깊은 친분으로 기업에서 거대 후원금을 유치한 사실이 드러나자 기업들은 미술 후원에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신씨가 미술계 원로들과 교유관계를 과시하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허술한 미술계의 풍토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전근대적인 미술작품의 유통 관행과 미술관 시스템, 큐레이터 자격증 제도의 모순이 부른 학위인플레 현상 등 개선이 시급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큐레이터의 역할과 개념이 재정립되야 한다는 인식에서 한국큐레이터협회(회장:박래경,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가 8월에 출범하기도 했다. 장동광 한국 큐레이터협회 부회장은 “미술관의 핵심 전문 인력인 큐레이터에 대한 장기적 채용 및 운용시스템의 선진적 도입으로 한국미술관 문화의 새로운 전환을 꾀해야 할 시점”이라고 언급했다. 

올해 10월, 2005년 시작된 이중섭, 박수근 위작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되면서 이중섭 화백과 박수근 화백의 작품 2834점 모두가 위작으로 판명났다. 미술품의 유통업체가 늘어나고, 미술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진 외형적인 성장과는 반대로,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도덕 불감증이 다시금 고개를 든 것이다. 박은순 교수(덕성여대 미술사)는 “이번 사건은 법정에까지 가서 진위문제가 가려진 사례에 속한다. 투자대상으로 급부상한 미술품을 제대로 고르기 위해서는 미술작품에 대한 안목을 길러야 할 것”이라며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2007년 미술시장은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서울옥션과 K옥션 등 미술품 경매회사의 실적은 지난해의 2배를 넘어섰다. 2006년  두 회사의 낙찰 총액(564억원)은 올 해 1천260억원으로 치솟았다. 지난 5월 서울 옥션에서 박수근의 ‘빨래터’가 45억2천만원에 낙찰돼 최고가 기록도 경신됐다. 김환기의 ‘꽃과 항아리’도 꾸준한 상승세를 유지하다가 35억원에 낙찰돼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이와 같은 추세에 외국시장에서 한국미술의 선전도 눈에 띄었다. 이우환 작품은 5월 뉴욕 소더비에서 추정가 40만~60만 달러에 책정돼 1백94만4천달러에 낙찰됨으로써 국내시장에서도 인기가 급증했다.

 이런 미술시장을 두고 “호황을 넘어 과열 조짐마저 보인다”는 견해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기도 했다. 최병식 미술평론가(경희대)는 “편중된 재테크 중심의 구입 열기는 이상적인 현상이 아니다. 신진작가를 발탁하고, 중저가 시장을 확산하는 등 보다 다양한 가격대와 작가층을 만날 수 있는 시스템이 확보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전시공간도 매해 꾸준히 늘었다. 김달진미술연구소가 조사한 미술 전시 공간의 증가 추이를 살펴보면 2004년 49곳, 2005년 51곳, 2006년 63곳, 2007년 상반기만 37곳으로 총 200곳이 새롭게 개관했고, 여전히 증가추세에 있다. 또한 해외로 진출하는 국내 화랑도 늘어 갤러리 아트싸이드와 금산갤러리가 베이징에 지점을 냈고, 9월에는 갤러리 현대 계열의 두아트 차이나가 베이징에 대형 전시공간을 열었다.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는 뉴욕에 아라리오 뉴욕을 개관해 올해 해외 전시공간만 13곳이 마련됐다. 박준헌 미술평론가는 “미술시장에 힘입어 상업화와 맞물린 전시공간들의 무조건적인 확충보다 그것을 운영하고 유지하는 시스템과 이를 운용할만한 전문 인력들의 보완이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올 해 예술 각 분야에서는 블록버스터 전시 및 공연의 강세가 두드러졌던 한해였다. 미술전시에서는 국내의 내노라하는 유명 국공립 미술관들이 ‘대관 블록버스터 전시’를 통해 수십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했다. 대표적으로 리움에서는 ‘앤디워홀전’이 마련됐고, 예술의 전당에서는 ‘오르세 미술관전’,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르네 마그리트전’, ‘모네전’과 ‘반고흐전’을 연중 선보였다. 하계훈 미술평론가(단국대)는 “장기적 준비와 철저한 큐레이터십을 바탕으로 관객을 유치해야 한다. 미술관 본래의 사명인 공익성이 상업성에 의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를 요한다”고 말했다.

연극과 뮤지컬 공연에서도 블록버스터급 대형 공연이 대세를 이뤘다. 그러나 미술계와는 달리 창작극과 창작 뮤지컬들의 강세가 두드러졌으며, 이들 작품들은 흥행에 다소 저조한 성과를 보였다. 올 한해 서울에서 공연된 뮤지컬은 총160편으로 작년에 비해 44%가량 증가한 큰 폭의 성장세를 보였으나, 창작 뮤지컬은 소극장 위주, 해외작품은 대극장 위주로 공연되는 양극화 현상을 나타냈다. 창작 뮤지컬인 ‘대장금’의 경우 60억원의 제작비가 지원됐고, 차범석의 희곡 ‘산불’을 원작으로 한 ‘댄싱 섀도우’ 역시 50억원의 제작비와 7년간의 제작기간을 거쳐 만든 대작인 데도 흥행과 평가에서 모두 낮은 점수를 받았다.

연극계에서는 무엇보다 새로운 세대들의 등장이 주목되는데, 신인들이 만든 작품이 무대에 서 좋은 평가를 받아 연극계에 새바람을 몰고 왔다. 김명화 연극평론가는 “윗세대 연극에서 거대담론과 무겁고 진지한 얘기들이 오갔다면, 감각적이고 집단의 명분과 상관없는 개인적인 고민을 논하는 새로운 세대들의 연극이 주목받았던 한해였다”고 설명했다.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린 ‘그 자식 사랑했네’(추민주 작, 이재준 연출)와 예술의 전당에서 선보인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 사람들’(작·연출 성기웅) 모두 젊은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시각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영화계에서는 스크린쿼터 및 일부 독과점 형식의 유통과 배급 시스템으로 한국 영화의 침체와 위기론이 거론됐던 한해였다. 권경우 문화평론가는 “한국 영화가 침체 양상을 띤 데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블록버스터에 과도한 제작비를 투자하면서 영화의 질적인 측면보다 겉으로 화려한 CG에 초점을 맞춰 제작, 홍보에 집중해 한계에 봉착한 점도 간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배원정 기자 wjba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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