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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공화국, 출판등록 불허 … 지방에 본사 두고 서울 ‘지사’ 차려
제 5공화국, 출판등록 불허 … 지방에 본사 두고 서울 ‘지사’ 차려
  • 최성일 / 출판평론가
  • 승인 2007.12.2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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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기의 출판소사_ ⓛ 1980년대의 출판사들(상)

교수신문은 이 나라 출판문화에 중요한 기여를 한 출판사의 지형도를 그려내고 이들이 시대와 어떤 방식으로 교유하면서 문화를 일궈왔는지를 진단하기 위해 1980년대 이후 출판소사를 조망하는 ‘격동기의 출판소사’를 마련, 단기 연재 한다. ‘1980년대의 출판사들’은 시대적 특성상 2회에 걸쳐 나눠 싣고, 이후 시대별로 조망한다.
                           
우연히도 展望社와 光民社는 한 해 출판등록을 했다. 유신체제의 종말을 이태 앞둔 1977년이다. 유신체제는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지만, 출판사등록은 뒤따른 제5공화국보다 오히려 자유스러웠다. 나는 전망사의 책을 좋아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이나 한창 때의 ‘창비시선’과 같은 크기인 ‘전망’ 시리즈의 규격이 마음에 든다.

□  사계절은 지방에 본사를 두고 서울에 ‘지사’를 둬야 했다. 창작과비평사는 1988년에 출판활동을 재가할 수 있었다. 파주출판문화단지의 사계절의 모습과 당시 창비 현판식.

시집판형(125×207㎜)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사이, 단행본의 판형으로 널리 활용됐다. 도서출판 靑史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者의 죽음』(1978), 형성사의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1981), 그리고 시인사의 ‘시인문고’로 나온 백기완의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백낙청의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등이 다 그렇다.


 ‘전망 12’ 『무지개라도 있어야 하는 세상』(1979)은 언론인 송건호의 칼럼집으로 1960년대 초반 <경향신문>에 있을 때 쓴 글을 모았다. 시사문제는 가급적 덜어냈다고 해도 책에서 드러나는 고시열풍, 출판계 불황, ‘배우의 간통’ 따위의 당시 사회상은 요즘과 다를 게 없다. 앞표지 날개에선 “展望社는 現代를 지혜롭게 사는 知性과 良識의 産室입니다”라는 문구 아래 한완상의 『저 낮은 곳을 향하여』와 노명식의 『民衆時代의 論理』를 소개한다. 뒤표지 날개는 E. 프롬의 저서 다섯 권을 담았다. ‘전망 18’ 『巨人과 바보들』(1979)은 이탈리아 언론인 오리아나 팔라치의 인터뷰 모음이다.


광민사는 동녘의 전신이다. 동녘의 스테디셀러 조제 마우로 데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1982)는 1978년 광민사를 통해 먼저 선을 보였다. 광민사 이태복 발행인은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8년간 옥고를 치르고 국민의 정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다. 동녘의 이건복 발행인은 그의 아우다.


1982년 평민사에서 펴낸 이사야 벌린의 『칼 마르크스』는, 표현을 약간 우습게 하자면, 정부당국이 공인한 첫 번째 이념서적이다. 그런데 예나지금이나 정부의 보증 또는 인증은 믿을 게 못된다.

평민사와 이념도서 제1호
1976년 10월 출판등록을 한 평민사는 이데올로기와 거리가 있는 출판사다. ‘평민’을 민중지향적이라고 을러멜 순 있어도 『칼 마르크스』 앞표지 날개의 ‘평민서당’ 목록이 보여주듯 좌경용공과는 멀찍이 떨어져 있다. 발행인이었던 김종찬 시인은 나중에 방송인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정부가 공식인정한 80년대 최초의 이념도서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자유주의 사상사가인 이사야 벌린의 책이라는 점도 아이러니다. 검열관에겐 그저 칼 마르크스를 전권에 걸쳐 통째로 다룬 게 불손하고 불경스러웠으리라. 벌린의 『칼 마르크스』는 2001년 미다스북스를 통해 새로운 한국어판이 나왔다.


1980년대 사회과학출판의 시대를 열어젖힌 출판사들 가운데 두 곳을 살펴보겠다. 광민사를 이어받은 동녘은 1980년 3월 신장개업한다. 동녘은 1982년 재출간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와 『철학에세이』(1983)로 한 시대의 선명한 획을 긋는다. “5공화국 전반기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문공부 관리의 검열의 눈을 피하고 일반인들에게 딱딱한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에세이’라는 꼬리표를 단 이 책은 역시 검열을 피하기 위해 문학서로서 문공부에 납본됐다.” 『철학에세이』는 유물론 철학의 원리를 정감 있게 설득한다. “이 책의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채 납본필증을 내준 문공부는 그 판매부수에 놀라 나중에 필증경신을 통해서 초판에 한해서만 판매를 허용하는 궁색한 조처를 취했다.”(『책이야기』(한겨레신문사)에서)


 도서출판 풀빛은 동녘보다 한해 전인 1979년 3월 문을 열었다. “이 출판사의 출판 ‘운동’은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의 전선이 너무나 명확했던 80년대에 민주진영의 최전위를 파수하고 있었다”는 에세이스트 고종석은, 풀빛의 성가를 드높인 책 두 권은 80년대의 행복과 불행을 대표한다고 썼다. 행복한 책은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1984)이고, 불행한 책은 윤정모의 장편소설 『고삐』(1988)다. 다시 고종석의 글이다. “풀빛 출판사의 도서목록을 읽으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1985)라는 책을 스쳐지나갈 수 없다. 소설가 황석영씨가 기록한 이 책은 80년대의 역사를 숨쉬었던 어느 누구도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고는 되돌아볼 수 없었던 1980년 5월 광주의 기록, 그 야만의 열흘에 대한 최초의 단행본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책읽기 책일기』에서)


1980년대 전반기 서울에선 신규 출판사등록을 할 수 없었다. 하여 출판인들은 지방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당시의 신생 출판사 중에는 지방에 명목상 본사를 두고 서울에 ‘지사’(사무실)를 차린 곳이 꽤 많았는데, 그 시절 출간된 책의 판권면에서 그런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도서출판 아침의 본사는 전북 전주시 풍남동이고, 사계절은 전남 광주시 서구 양림동이며, 도서출판 친구의 소재지는 부산시 동래구 명륜1동이었다. 지방에서 신규 출판사로 등록하는 길마저 막히게 되자 출판사 등록증이 거래되기도 했다고 한다.

사회과학과 총서의 시대
1980년대는 총서의 시대다. 서울 신촌지역 사회과학서점인들이 만든 인문사회과학 도서목록 『책 속의 책』(1986)에는 사회과학출판사들의 책 광고에 포함된 총서목록이 즐비하다. 도서출판 공동체의 ‘공동체’에는 『공동체문화(1-3집)』, 『문화운동론』, 『삶과 멋-우리 시대의 민중예술』, 『민중미술』, 『노래운동론 1, 2』가 들어있다. 실천문학사의 ‘실천신서’는 『문학과 예술의 실천논리』,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친일문학작품선집』 등이 눈에 띈다.


사회과학 전문출판들은 대체로 총서에서 몇 권을 골라서 광고로 내보냈다. 인간사의 광고는 ‘인간신서’ 가운데 『중국 근대경제사 연구서설』과 『마르크스냐 싸르트르냐?』의 책 사진을 게재하며 두 권의 책을 강조했다. 도서출판 녹두는 ‘녹두신서’ 중에서 『레닌』, 『1905년 혁명』, 『러시아노동운동사』, 『레닌의 노동조합운동론』, 『페테르스부르그노동운동』 이렇게 다섯 권을 꼽았다. 백산서당 역시 ‘백산선서’ 30, 40번 대의 『사회구성체기초이론』, 『문화·계급·선전』, 『한국근대민족해방운동사Ⅰ,Ⅱ』『레닌Ⅰ,Ⅱ』, 『정치학입문』, 『철학개설』 등을 選했다.


禾多의 ‘화다신서’ 목록에선 『국가와 현대자본주의』, 『세계노동운동약사』, 『과학기술과 현대자본주의』, 『민중문화운동의 실철론』, 『볼셰비키 혁명사』, 『영화운동론』 같은 책이 추려졌다. ‘기획출판’ 거름의 ‘거름신서’는 1986년 가을 무렵까지 펴낸 26권이 전부 나열돼 있다. 이 중 『파시즘 연구』, 『임금론』, 『구체성의 변증법』, 『철학의 옹호』, 『볼셰비키와 러시아혁명(일명 ‘볼키와 러알’)Ⅰ,Ⅱ,Ⅲ』, 『그람씨의 옥중수고Ⅰ-정치편』, 『역사와 계급의식』 등이 독자의 주목을 받았다.


청년사의 ‘청년문고’는 『암태도 소작쟁의』,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일하는 아이들』, 『농민』, 『산체스네 아이들(상, 하)』 같은 기 출간도서를 정렬하거나 재배치했다. ‘풀빛의 새책들’은 펴낸 책이 벌써 80여 권에 이르렀다. 도서출판 세계의 ‘세계총서’, 미래사의 ‘미래신서’, 일월서각의 ‘일월총서’, ‘두레신서’, ‘동녘선서’, ‘사계절신서’, ‘청사신서’, ‘돌베개 인문사회과학신서’ 등도 꾸준히 목록을 늘였다. 아침은 ‘아침새책’을 통해 87년 6월 항쟁 직후,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맑스 엥겔스의 종교론』, 『엥겔스의 독일혁명사 연구』, 『철학의 빈곤』, 『헤겔 법철학 비판』 같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몰아서 펴낸다.

최성일 /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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