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0:00 (목)
[딸깍발이]대통령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딸깍발이]대통령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 전진성 / 편집기획위원·부산교대
  • 승인 2007.12.24 13: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루하게 너무 오랫동안 국민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던 대통령 선거가 마침내 끝났다.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난타전이 오갔으나 이변은 없었다. 예상되던 후보가 예상되던 득표율로 당선됐다. 결과에 대해 별 불만은 없다. 아니, 사실 별 관심이 없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별로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사회가 왔다 갔다 한다면 이는 대통령의 능력이 아니라 단지 사회적 시스템의 결핍을 증명해줄 뿐이다. 물론 대통령 당선자와 측근에 의해 수많은 관직이 들썩거리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왜들 그렇게 난리법석을 떠는 것일까.

흔히들 대통령 한사람의 어깨 위에 국운이 달려있는 것처럼 믿고 또 그렇게들 떠벌리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한국 민주화의 성패는 특정 후보의 정권획득으로 판가름 나지 않는다. 이는 한국 자본주의의 진행이 몇몇 CEO의 손에 달려있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민주화나 경제발전에 지도자의 선택이 촉매제 역할을 할 수도, 역기능을 할 수도 있지만 이는 특정 시기에 국한해서 그러할 뿐이다. 이미 한국 시민사회는 한 지도자의 결단에 따라 좌지우지되기에는 너무도 질적, 양적으로 확장되고 분화돼있다.

 
과연 장사가 잘 안 되고 일자리 부족한 것이 무능한 ‘좌파(?)’ 정부 때문일까. 반대로, 진정으로 ‘진보적인(?)’ 정권이라면 왜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무리한 단속을 그만두지 않는 것일까. 이른바 SKY 대학을 향한 전국 학부모들의 붕 뜬 마음은 과연 어느 정권 책임인가. 이 모든 문제가 정권만 바뀌면 눈 녹듯이 해소될 수 있다는 말인가. 과연 누가 그런 마법을 행할 능력이 있는가.  

한 사람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거나 모든 희망을 거는 것은 지극히 편리한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한국 시민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삼국지의 영웅호걸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 각 분야에서 첨예한 이해관계와 더 나은 가치를 놓고 벌이는 진짜 정치 투쟁-예컨대, 근래에 막 불붙기 시작한 대학의 비정규직 시간강사들의 처우 개선 투쟁-및 그러한 투쟁을 여과시킬 시스템이다. 이러한 의미의 정치가 저질 선거판보다 훨씬 흥미롭지 않은가. 신임 대통령에 대한 칭송이나 매도는 정치‘꾼’들과 특권 언론에 맡겨두자.

전진성 / 편집기획위원·부산교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