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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강평기] 8개 철학회 공동 ‘한국 철학계 발전을 위한 대토론회
[학술대회 강평기] 8개 철학회 공동 ‘한국 철학계 발전을 위한 대토론회
  • 교수신문
  • 승인 2007.12.1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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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회(회장 이삼열 유네스코 한위 사무총장)를 비롯한 전국의 8개 철학회(대동철학회, 대한철학회, 범한철학회, 새한철학회, 철학연구회, 한국동서철학회, 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지난 11월 30일, 12월 1일 충남대에서 ‘한국철학을 다시 생각한다’는 주제의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국 철학계의 현 상황에 대해 솔직하고 또 냉정하게 토론해 보자는 취지로 열린 이 모임은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제22차 세계철학대회를 앞두고 전국의 철학회가 처음으로 한 데 모인 자리였다. 이 자리에는 그 동안 진보학술단체로서 제도권 학회와 일정한 거리를 두었던 한국철학사상연구회도 참여했다. 양일 간, 150여명의 철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통해 ‘시대와 함께 하지 못한 한국 철학’, ‘절박한 과제들 앞에 무력한 태도로 일관한 한국철학계’의 자화상에 대해 비판과 자성, 새로운 대안 제시의 논의를 이어갔다.

이번 토론회는 1953년 창립 이후 줄곧 한국 철학계의 대표학회임을 자칭해 온 한국철학회가 먼저 자성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마련됐다. 지난 6월 제38대 한국철학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삼열 회장과 차기 회장 손동현 성균관대 교수는 내년 7월 말로 예정된 세계철학대회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철학계로부터 별로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주요 원인의 하나로 한국철학회가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 점을 들어 이 모임을 제안했다. 뒤이어 8개 학회는 한국철학계의 당면 문제, 철학계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를 찾아내고 전국 철학자 대회(년 1회 개최, 작년까지 19회 진행)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로서 대토론회를 열게 되었다.

사진 왼쪽부터 김상봉 전남대 교수, 배석원 경상대 교수, 손동현 성균관대 교수.

학술논문 발표 중심의 기존 학술대회와는 달리, 철학회 발전방안, 한국철학자대회 운영방식 개선안, 비정규직 철학연구자 현황 및 대책, 비제도권 철학 학교의 의미, 학진 인문학 지원 정책, 고교 철학윤리 교육, 논술교육인증제 등이 주요 토론 주제로 선정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대토론회 기조발제를 맡은 소흥렬 교수(전 한국철학회 회장)는 한국 철학 50년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서 철학의 쇠퇴는 환경과 시대 변화의 탓이 아니라 철학 연구 종사자들이 시대와 함께 호흡하지 못하고 또 당대의 절박한 과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철학 자책론을 제기했다.

이어 진행된 다양한 주제의 토론에서 단연 쟁점이 된 것은 한국철학회의 과거 행태에 관한 것이었다. ‘고교 철학 및 윤리 교육의 현황과 과제’를 발표한 홍윤기 동국대 교수는 중등교육에서 철학윤리교육이 차지하는 의미가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은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그 내용과 운영 방식에 과거 박정희 독재의 산물인 국민윤리 교육정책의 잔재가 남아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런 파행적 철학교육의 최초 주도자가 다름 아닌 한국 철학계 원로인 박종홍임을 비판했다.

비정규직 철학연구자의 현황과 대책에 대해 발표한 김원열 교수(한국철학사상연구회)는 비정규직 교수를 양산하고 있는 현 대학교육 환경에 대한 종합적 문제 제기와 함께 이제는 한국철학회도 기존의 고답적 행태를 벗고 인문학, 기초학문 종사자 일반과 연대하여 이들 학문 후속 세대의 연구 환경 개선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함을 주문했다.
학문 후속세대 지원에 대한 논의는 학술진흥재단 성태용 인문학단장의 발표, 그리고 전국대학철학과연합회(회장 배석원 경상대 교수)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논술교육인증제’ 현황 발표와 이어진 토론 등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철학과 졸업생의 현실적 진로 문제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논술교육인증제’는 최근 세간의 관심사인 논술 교육의 파행을 막고 본래 취지인 비판적이고 종합적인 철학 교육으로 자리매김 되도록 철학계가 나서서 자체적으로 논술 교사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의도로 작년부터 대학 철학과에서 시범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날 토론에서 고교철학윤리교육의 정상화, 현실적 요구에 맞는 내용으로의 대학철학과교육과정 개편 노력은 물론, 논술교육 정상화를 위해 전 철학계가 협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류였지만, 반대로 논술 교육이 시장논리에 젖고 있는 현상에 대한 강한 비판도 제기됐다.

한국철학계 전반, 특히 한국철학회의 지나온 행태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는 토론회 내내 이어졌다. ‘시대의 반영’이요, 사회적 가치와 공동선을 탐구해야 하는 철학이 박정희 독재 이래로 시대의 아픔에 대해 늘 침묵해 온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몇몇 대표 인사들이 독재의 이데올로그로서 역할을 해 온 점, 특히 작년 일부 보수 단체 주도의 작전통제권환수반대 운동에 한국철학회 회장 및 역대 회장이 대거 서명하고 주도한 점 등과 함께 한국철학회의 서울(대) 중심 운영에 대한 비판이 도마에 올랐다. ‘전국철학자앙가주망네트워크’(Pen)을 주도하고 있는 김상봉 전남대 교수는 한국철학회는 더 이상 철학계 전반에 피해를 주거나 ‘민폐’를 끼치지 말고 스스로 설정한 소임대로 철학 연구와 교육에만 성실히 복무할 것을 주문하면서, 철학의 사회 참여는 Pen과 같은 새로운 조직이 맡아 역할을 해야 함을 주장했다.

철학계 최초의 공개 토론인 만큼 주제가 산만하기도 했지만, 몇 가지 공통된 분위기는 확인된 자리였다. 철학은 다시금 구름의 자리에서 현실로 내려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 ‘전국대학철학과연합’과 ‘전국철학자참여네트워크’ 등이 철학계의 현안과 시대적 과제에 더욱 절실히 임해야 한다는 결의, 철학회 운영에 있어 서울과 비서울 지역의 괴리가 발전적으로 지양되어야 한다는 목소리, 학계 공통의 과제 해결에는 다양한 의견 수렴과 민주적 논의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이런 자성 노력, 자리매김 노력이 함께 할 때만이 내년 세계철학대회의 성공적 개최는 물론, 한국철학계의 내실과 발전을 기할 수 있으리라는 암묵의 합의가 바로 그것이다. 학회 간에 다소간 이해의 차이가 드러나기도 했지만 각 지역을 기반으로 한 8개 철학회는 ‘다양성과 소통’을 위한 대토론회를 내년에도 계속하기로 했다.

서유석 / 호원대·한국철학회 발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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