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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추진을 ‘좌파정부’라 비난 …적극적인 증세정책 없었다
복지국가 추진을 ‘좌파정부’라 비난 …적극적인 증세정책 없었다
  • 교수신문
  • 승인 2007.12.1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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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_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 과연 ‘좌파적’이었나

87년 민주화 이후 20년, 97년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노동의 경직성, 기업 규제, 반기업 정서가 강화돼 성장이 지체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은, 노무현 정부에 대해 ‘좌파 반시장적 정부’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노무현 정부를 ‘좌파 반시장적 정부’라 칭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만일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좌파라 부른다면, 좌파라는 개념을 잘못 아는 것이다. 좌파를 그렇게 정의한다면 이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미국의 부시행정부도 좌파정부로 불러야 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좌파라는 개념의 핵심은 노동과 자본의 대립에서 노동의 이해를 중시하는 정치적 입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좌파정부가 들어서면 노동권이 신장되고 노동자들의 권익이 보호된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서 파견법을 시행하고 정리해고를 허용했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는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통과되면서 오히려 이랜드 사태와 같이 비정규직 양산의 문제를 낳고 있다. 한편 출자총액제한 제도, 금산분리정책, 행정수도 이전 및 국토균형발전, 수도권규제 등을 두고 반시장적 정책이었다고 규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시장경제를 내세우는 국가들도 시장의 실패를 치유하는 경제 정책들을 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정책들은 성장 동력을 회복하기 위한 정책이다.

성장 동력 사업으로서의 타당성이 문제이지 반시장적 정책이라 하기 어렵다. 그래도 사람들이 노무현 정부가 좌파정부라고 판단한다면 아마도 현 정부 하에서 복지지출이 급증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만큼 복지와 동반성장을 강조한 정부는 없었고 그만큼 성과도 있었다. 특히 김대중 정부시기에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도입됐고 사회보험이 강화됐다.

노무현 정부도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자주 홍보해왔다. 그러나 이 두 정부의 분배정책이 ‘좌파정부’라고 부를 만큼 과도하게 실시됐는지 의문이다. OECD통계에 따르면 1995년 일반정부 총지출의 약 15%에 머물던 보건 및 사회보호 지출이 2001년에는 약 23%로 증가했다. 그 이후 2004년까지 정체된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즉 노무현 정부시기에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일반정부 총지출 대비 23% 정도이면 사회보장 지출이 충분한 상태인가. 2002년 OECD 평균적으로 사회지출이 일반정부의 총지출대비 51.2%였으므로 선진국 평균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재정지출 규모가 작기 때문에 GDP대비 사회지출 비중은 더욱 낮은 수준이다. 즉 원래 저열했던 사회보장 수준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들어 다소 높아졌으나 양극화로 피폐해진 삶을 지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인 것이다. 과도한 분배가 근로의욕을 꺾는다는 걱정은 유럽의 복지선진국들이나 하는 것이다.

우리의 복지수준은 아직 복지후진국이라고 하는 미국 수준에도 이르지 못한 상태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사회가 해체돼 가고 있는데 왜 정부는 과감히 사회안전망 구축에 나서지 못했는가.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감세 기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적극적인 재원마련에 나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세기반을 넓히는 등 현 세제 하에서 세수를 증가시킬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마련할 수 있는 재원이 부족하다.

따라서 복지수준을 충분하게 개선시키려면 다소의 재정적자를 용인하면서 증세정책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정책은 우리 사회에서는 금기시되는 것들이다. 사회안전망 구축에 인색한 것은 여기에 재원을 투입하는 것이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기는 낡은 사고방식에서 기인한다.

길을 닦고 다리를 놓는 것은 눈에 보이므로 아깝게 여기지 않으면서 육아, 보육, 교육, 의료, 취약계층 보호 등에 돈을 쓰는 것은 아깝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업들은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할 뿐 아니라 인적자본 육성, 사회 전체의 생산성 상승과 통합 제고 등을 가져온다. 성장을 뒷받침하는 역동적 복지정책인 것이다.

여기에 대한 투자를 아까워하는 것은 마치 기초학문은 당장에 이익이 나지 않으므로 투자를 꺼리고 실용적 학문에만 투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학문과 나라를 경영한다면 당장은 이득인 것 같지만 그 기반에서부터 학문과 사회는 붕괴하고 말 것이다. 복지를 확충하는 것이 꼭 좌파적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양극화가 성장의 잠재력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지 증세를 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사회안전망 확충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정세은/충남대·경제무역학부

필자는 파리13대학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환율정책 및 균형환율 추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LG경제연구원과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을 거쳤으며 복지국가 Society 및 대안연대 정책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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