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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성’과 ‘문화적 정체성’ 제고가 관건이다
‘공익성’과 ‘문화적 정체성’ 제고가 관건이다
  • 교수신문
  • 승인 2007.12.03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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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_ 미술관의 사명, 큐레이터의 역할

어느 날 우리는 미처 알고 있지 못했던 뜻밖의 사건과 마주한다. 그리고 경악했다. 잠시 누구에게 돌을 던져야할 지를 고민하며 집었던 돌을 놓고 만다. 청와대, 성곡미술관, 동국대, 광주비엔날레 등 조준해야 할 대상이 한 두 곳이 아니라는 사실과 인간의 심성, 윤리, 사랑 등 심리적, 도덕적 문제까지 건드려야 하는 정신분석적 과제에 직면해서는 커먼센스(Common Sense)의 영역 너머를 바라보며 심히 당황했던 것이다.
신정아 사건은 그렇게 한 큐레이터가 저지른 미술관에서의 비양심적, 도덕적 일탈행위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것은 적어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권력지향성 인간들이 함유한 총체적 문제들을 一人劇으로 우려낸 간장독 항아리였다. 학력위조, 부당한 권력남용, 부적절한 애정관계, 기업이 설립한 미술관의 비자금 조성, 그리고 내선 연루자와의 결탁과 필연적 밀고, 큐레이터의 전문성과 도덕성 마비 등이 매케한 맛과 냄새를 자아내며 우리의 비선진적 문화 사각지대 속에서 심의필을 얻고 유통됐다. 그것이 만약 이브 클랭(Eve Klein)이 하루 신문으로 발간했던 ‘오쥬르디(Aujourd’hui)’ 같은 예술적 이벤트였다면, 미술사에 긍정적으로 남을 사건일 수 있었다. 우리 사회가 신정아로 인해 얻은 것이 있다면 거짓말의 대담성이 가진 권력적 파괴력, 여성의 학력위조를 통한 유혹이 얼마나 강렬할 수 있는가를 공공의 표면위로 떠오르게 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허위의 껍질들, 신정아를 비호했던 세력의 실체들을 양파의 최루자극 속에서 눈물을 머금고 바라봐야 했다.

미술관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런데 우리는 신정아 사건 속에서 하나의 장소성으로 떠오른 특별한 곳에 대해 그다지 객관적이고도 냉정한 성찰을 하지 못했다. 그곳은 바로 신정아 사건의 본향으로 자리매김된 금호미술관이었고, 또 다른 한 곳은 이번 사건의 하일라이트로 부각된 성곡미술관이었다. 이 두 미술관의 공통점은 굴지의 대기업이 설립한 사립미술관으로서 대중의 관심을 끄는 기획전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곳이라는 데 있다. 또한 미술이론 전문가가 아닌 회장의 부인이 관장으로 있다는 사실, 규모나 시설 면에서도 여타의 미술관들 보다 탁월한 환경을 지니고 있다는 점 역시 비슷하다.
미술관은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공적장소이자 시민사회의 성전으로 출발했다. 프랑스대혁명의 여파로, 1793년 루브르궁전을 개조해 미술관으로 개관하면서 궁정컬렉션 미술품의 향유를 시민들에게 돌려 준 것이 서구 미술관 역사의 발원이었다. 이후 미술관은 공공성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내세우며 시민민주주의의 전개와 함께 복지사회의 한 중심위치를 점유해 왔다. 한마디로 미술관은 선조들이 남긴 문화유산 혹은 당대의 예술적 대상들을 수집, 연구, 조사, 수복하면서 대중을 위해 전시하는 교육적 기관인 것이다. 따라서 국·공·사립을 막론하고 미술관의 설립과 운영은 예술향유권의 공익적 신장이자 부의 사회적 환원이며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내외적으로 제고하는 항구적 제도에 다름 아니다. 이 지점에서 갤러리가 가진 상업성과 미술관의 공익성이 명확하게 경계 지워진다.
갤러리나 옥션 등에서 일하는 전문 인력들을 갤러리스트(Gallerist), 엑스퍼트(Expert)라 부르고 미술관에서 일하는 전문 인력들을 큐레이터(Curator)라 구분해 부른다. 큐레이터의 가장 중요한 덕목과 사명은 공익적 바탕위에서 미술관 문화의 신장을 위해 연구, 수집, 조사, 수복, 교육하는 미술관 고유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큐레이터는 미술사와 미학, 미술이론에 기초해 큐레이터십을 구현하는 직종으로서 학예연구원이라 부르기도 한다. 신정아 사건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큐레이터로서의 공익성, 윤리성, 전문성에 배치되는 사욕추구와 권력지향성에 함몰된 이단적 큐레이터십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러한 이단적 큐레이터가 몸담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 앞의 두 미술관, 동국대, 광주비엔날레의 인력채용과 검증방식은 우리 사회의 왜곡되고 일그러진 전근대적 잔재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현 단계에서 우리가 되짚어 봐야 할 국내 미술관의 가장 큰 문제는 핵심 중추인력인 큐레이터의 채용과 운용방식이 계약직 혹은 비정규직화돼 있어서 중장기적 미술관 전시기획, 수집정책 추진, 연구업무를 수행하는데 적지 않은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국공립의 경우 공무원의 신분으로 채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공사립미술관 대부분이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것이 관례화되고 있어서 그야말로 큐레이터들은 2~5년마다 다른 미술관 혹은 연관 직종으로 옮겨 다녀야 하는 철새같은 신분으로 전락한 상태다. 바로 이러한 신분불안정은 자연스럽게 큐레이터들로 하여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스타 큐레이터’가 되기 위한 인기영합적인 전시기획, 박사학위 취득을 통한 교수로의 전향, 비엔날레와 같은 대규모 국제전에서 인정받기 등을 모색하는 유력한 동인이 됐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미술관 문화가 안고 있는 문제점
문화선진국들이 미술관 큐레이터들을 전문연구직으로 대우하며 ‘미술관의 꽃’으로 키워나가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계속해 오고 있는 것을 상기하면 우리의 미술관 시스템은 참으로 전근대적이기 짝이 없다. 더구나 대부분의 미술관들이 관장의 취향이나 관심에 따라 기획전의 향방, 작품수집의 정책 등이 수시로 흔들리는 것을 보면 우리 미술관의 갈 길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선진국과 후진국이 다른 것은 시간개념이다. 선진국은 예측 가능한 시간표와 좌표들 속에서 적어도 2~3년 앞을 내다본 전시기획, 작품수집, 교육프로그램 등을 제시한다. 이러한 점에서 미술관의 전문 인력 운용도 장기적이고 집중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곳에서 큐레이터의 공익성, 윤리성, 전문성이 관장 개인의 취향이나 성향에 따라 수시로 바뀌거나 변칙적인 궤도이탈을 감행할 수 없다. 미술관의 사명과 역할에 대한 인식의 부재, 전문 인력인 큐레이터에 대한 단기적 채용과 인적교체가 반복되는 한 미술관의 국제경쟁력은 나날이 퇴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감시기구로서나 의사결정체로서 이사회나 위원회의 전문적인  정착 역시 관장의 전횡이나 권력남용으로부터 미술관의 공익적 역할과 중장기적 비전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길이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선진국형 미술관 문화이자, 신정아와 같은 이단적 큐레이터가 발을 붙일 수 없게 하는 제도적 통제장치인 것이다.

큐레이터의 역할과 개념 재정립해야
현대적 의미의 미술관은 전시가치와 유물가치에 치우쳐 왔던 지난 세기의 유물의 神殿 혹은 수집창고로서 역할하던 시대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 미술관은 상호 교섭적이고, 혼성적이고, 중층적이고, 탈장르적인 모호성이 종횡으로 횡단하는 정신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대중문화와 순수문화가 서로 섞이고, 전시적 가치보다는 미학적 가치가 우선되고, 나열식 오브제 진열이 아니라 재해석이 가해진 주제전시가 우선되는 그런 가치전도의 시대를 호흡하고 있다. 큐레이터들 역시 자신의 전공영역을 횡적으로, 종적으로 확장해야 하는 심리적 부담감 속에서 미술관의 문을 드나들고 있다. 사회와의 적극적인 소통의 문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어야 하고, 전지구화의 시대적 조류 속에서 존재의미를 발현해 나가야 할 형편에 처해 있다. 미디어 매체와 사이버스페이스 역시 중요한 연구과제로 등장한 지 오래이고, 미술품 연구는 물론 사회현상이나 관람객 중심의 경영기법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 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제 한국 미술관 문화, 그 내재적 운영방식의 측면에서 한 차원 다른 지평으로 전환돼야 할 시점이 됐다. 그것은 바로 미술관의 핵심 전문 인력인 큐레이터에 대한 장기적 채용 및 운용시스템의 선진적 도입으로 국제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유능한 큐레이터 한사람이 만든 기획전시가 몇 만명, 몇 십만명의 관람객을 감화시키고 문화적 심성을 고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행정직원들과는 그 역할모델이 다르다. 그리고 미술관마다 전문가로 구성된 이사회나 위원회에서 모든 정책결정과 의사결정을 통어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금호와 성곡미술관, 동국대, 광주비엔날레 재단이사회 등에서 벌어졌던 그간의 행적을 돌이켜 보면 신정아라는 이단적 인물이 활약할 수 있었던 근본배경이 자명하게 그려진다. 좋은 미술관 시스템은 훌륭한 큐레이터를 만들고 그 큐레이터는 우리 시대 예술문화를 지금보다는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한국 미술관의 미래는 바로 그런 유능한 큐레이터를 키워내려는 문화적 토양 속에서 새로운 지평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장동광 / 한국큐레이터협회 부회장

필자는 홍익대에서 미술비평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저서로는 『생명의 강에서 역사의 노래를 듣다』가 있으며, 일민미술관 학예연구팀장, 숙명여대 겸임교수, 서울대 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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