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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이여, 가면을 벗고 내면의 적에 맞서라
아버지들이여, 가면을 벗고 내면의 적에 맞서라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7.12.03 1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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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_우리시대의 남자]남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남자, 그 잃어버린 진실』 스티브 디덜프 지음 ┃  박미낭 옮김 ┃ 젠북┃  2007

“남성들 대다수는 말 없는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헨리 소로우, 『월든』)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의 모습은 ‘아버지’상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기러기 아빠’라는 세태를 반영한 용어에도 아버지인 남자의 곤핍한 이미지가 스며들어 있다. 가정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아버지 남자는 이제 혼자서 고독과 마주하며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텅 빈 집을 지켜야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는 홀로 외로움에 지쳐 어느 날 이웃에 의해 세상을 등진 모습으로 발견되기고 하고, 또 어느 날 다리에서 강물로 뛰어내리기도 한다. 더 극단적인 형태로는, 사업 실패와 빚에 쪼들려 사랑하는 막내딸의 목을 졸라 버리는 비극도 빚어낸다. 놀랍게도 한국의 남성 자살률은 여성 자살률보다 훨씬 높다. 올해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자살자 가운데 남성 비중이 67.8%였다. 여성보다 두 배쯤 높은 수치다.
왜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 이르는 아버지 남자들이 많은 걸까. 아버지 남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여기 눈여겨 볼만한 책이 있다. 호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정심리학 전문가 스티브 비덜프의 『남자, 그 잃어버린 진실(원제 Manhood)』(박미낭 옮김, 젠북)은 아버지 남자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새로운 갱생에 관한 치유법을 제시한다.

저자의 진단은 매우 단순하다. 남자들에게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이유는 남자들이 ‘남성됨’이라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아버지가 되기 때문이다. 남자가 되는 훈련 없이 소년들의 몸은 남자의 몸으로 변해간다. 문제는 몸이 자라는 것만큼의 내적인 지식과 기술이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 데 있다. 이런 현상은 국지적인 것이 아니다. 산업화 이후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진정한 남자들의 내면세계에 대해 알 기회가 없기 때문에, 개개의 소년들은 TV나 영화 혹은 또래 친구들 같은 외부로부터 이것저것 주워 모은 천박한 이미지를 자신의 자아를 형성하는 기초로 삼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자아를 가지고 자신이 남자임을 증명하고 싶어하며 행동에 나선다.”

이것이 비극의 발단이다. 어린 시절에 나이 든 남자 어른들과의 관계가 부족했던 남자들은 상실감 속에서 홀로 악전고투하는 상황에 던져진다. 이들은 세련된 남자 혹은 강인한 남자가 되려고 애를 쓰지만, 어떤 것도 자신과 맞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혼생활은 실패하고, 자녀들은 아버지를 미워하고, 남자들은 스트레스로 죽어간다. 그런 와중에 남자들은 세상을 파괴시킨다.” 이들 실패한 남자들은 결국 자기 파괴에까지 이르고 만다. 이 파멸을 피할 수 있는 길은 남자의 내면에 있는, 남자를 위협하는 ‘적’의 실체에 정정당당하게 맞서는 것이다. 외로움, 치열한 경쟁, 평생 지속되는 감정적인 羞恥가 남자를 안에서부터 옥죄는 적이다. 남자의 내부에 있는 이 적과 맞설 때, 남자들은 성숙으로 가는 걸음을 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성숙한 남성으로 가는 일곱 단계’를 제시한다. 이것의 핵심은 아버지, 배우자, 性, 자녀, 친구, 직업, 내면의 야성 등과의 올바른 관계 맺기다.

저자가 이 책에서 내내 강조하는 것은 ‘아버지 되기’이다. 아마도 저자는 그것이야말로 ‘남성됨’의 요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4장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 7장 ‘참된 아버지가 된다는 것’, 11장 ‘남자의 야성’은 일맥상통한다. 근육질의 우락부락한, 체구 건장한 아버지가 아니다. 저자가 그려내는 아버지 모습은 지혜롭고, 부드러우며, 온화하고, 시간을 내어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소프트’한 이미지다. 그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족 특히 아이들에게 헌신한다.
우리시대의 아버지 남자는 제대로 된 ‘아버지 됨’, ‘남성됨’이라는 성인식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채 아버지가 됐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이제 도움의 손을 내밀어야 하는 찰나에 서 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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