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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錄이 된 ‘시상 연설’… 추문이 된 ‘受賞’
實錄이 된 ‘시상 연설’… 추문이 된 ‘受賞’
  • 박상주 기자
  • 승인 2007.11.19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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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 _ ‘노벨상’의 맨 얼굴 다룬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전3권)』(바다출판사) · 『노벨상 스캔들』(랜덤하우스)

“전하, 그리고 신사숙녀 여러분.” 내달 10일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흘러나올 연설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100여 년간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전 세계인이 듣게 되는 노벨상 시상식의 첫 문장은 한결같다. 스웨덴 왕족에게 그 해 인류를 위한 과학의 성과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고하고 노벨상의 선정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100여 년간 계속됐다
스웨덴 왕립과학원(물리학상, 화학상)과 왕립 카롤린스카 연구소(생리의학상)는 노벨상 수여직전 수상자의 연구업적을 대중들이 알기 쉽도록 짤막하게 소개한다.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비유를 들어 설명하는가하면 가벼운 농담도 곧잘 섞어 쓴다. ‘노벨상 시상연설’의 대상이 비전문가,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개체를 찾아보기 힘든 기생충 ‘이’는 두 명의 학자에게 노벨상을 선사했다. 프랑스 세균학자 샤를 니콜 파스퇴르 연구소장은 환자들이 몸을 씻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어야 티푸스가 감염되지 않는 점을 알아채고, 이를 전염병의 원인으로 지목해 1928년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어 이를 박멸할 수 있는 강력한 살충제 DDT를 발견한 스위스 화학자 파울 뮐러는 ‘인류를 구원할 살충제’ 개발로 1948년 노벨상의 영예를 얻었다. 뮐러의 시상연설에 나선 G. 피셔 교수는 “영국인 소령 한 명이 파리떼 박멸을 위해 DDT를 창가에 뿌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청소를 하러 들어온 군인은 죽어있는 파리무덤과 함께 DDT를 깨끗하게 치웠습니다. 소령은 ‘나의 DDT여 안녕’이라며 울먹였습니다. DDT를 치운 이후에도 파리가 얼씬하지 않았을 정도로 DDT는 우수한 지속성을 보입니다”라며 화학제품 광고처럼 연구업적을 소개하기도 했다.

지난 1세기 동안 꾸준히 상의 권위를 지켜온 덕에 노벨상은 인류 과학의 지표가 되며, 시상 연설은 과학의 正史로 기록된다. 시상연설을 모으면 인류 과학의 족적을 되새기는 과학실록이 될 만하다. 시상연설은 그러나, 이제까지 책으로 묶여 나온 적이 없다. 매년 새로운 연설문이 쌓이기 때문에 적절하게 편집하기가 쉽지 않다. 노벨재단은 시상직후 시상 연설을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게재한다. 또 노벨상은 수상자가 결정되자마자 격렬한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고, 수년이 지나고 나면 거짓이나 오류로 판명되기도 한다. 모든 시상연설을 수록하려고 할 때마다 제기되는 문제다. 시상연설은 대부분 “이제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로 끝맺는다.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물리·화학·생리의학 전3권, 노벨 재단 엮음, 유영숙 등 옮김, 바다출판사)는 1901년부터 지난해까지 노벨상을 받은 연구의 ‘시상연설’을 유영숙 박사 등 한국과학기술원(KIST) 과학자 6명이 번역한 책이다. 노벨상 100년사 동안 물리·화학·생리의학상을 받은 519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업적을 연대기로 엮었다. 번역자들은 학문분야별 전문가들이 맡았다. 물리학분야는 이광렬·이승철, 화학분야는 우경자·이연희, 생리의학분야는 유영숙·권오승·한선규가 각각 번역했다.
『노벨상 스캔들』(하인리히 찬클 지음, 박규호 옮김, 랜덤하우스)도 번역됐다. 『지식의 사기꾼』, 『지능적 유전자』 등 과학계의 연구비리 등을 파헤쳐온 과학작가 하인리히 찬클의 2005년 저서다. 찬클은 노벨상 각 분야별로 50가지의 논란을 제시하고 노벨상을 둘러싼 학자들 간의 암투와 비리를 까발리고 있다.

오류 밝혀져도 상 철회하지 않아
찬클은 “노벨이 노벨상 수여자를 ‘해당 년도에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을 정하고 있지만 실상 대부분의 수여자들의 연구는 수년 혹은 수십 년 전에 이루어진 업적에 돌아가고 있고 노벨상 후보들의 평균 ‘대기시간’도 15년이나 걸려 상을 받지 못하고 죽은 학자들도 많다”고 밝혔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평화상 후보였던 마흐트마 간디다. 또 분야별 공동수상자를 3명으로 한정해 연구에 기여한 많은 젊은 학자들이 수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완벽하게 틀린’ 오류는 노벨위원회가 1926년 생리의학상을 수여한 덴마크의 병리학자 그리브 피비게르 사건이다. 피비게르는 암을 유발시키는 기생충을 발견했다는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지만 몇 년 뒤 그의 발견이 잘못된 연구방법인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노벨상은 철회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당신에게…』에는 피비게르의 연구업적이 포함돼 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으로 상을 수상하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이 반대한 양자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찬클은 “보수적인 굴스트란트 선정위원장이 상대성이론을 인정하지 않아 아인슈타인의 수상이 미뤄지자 젊은 선정위원 한 명이 광전효과 논문을 제안해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드카펫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수상자들의 모습과 선정위원회의 격한 논쟁, 수상 이후에 이어지는 표절 논쟁은 모두 한 가지의 이야기다. 正史와 野史가 하나의 역사이듯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와 『노벨상 스캔들』을 하나로 엮어 읽는 데 이유가 있다.
박상주 기자 sjpark@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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